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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ch and Biz Jun 01. 2019

취업 깡패 '전화기' 전공을 버리다

전화기: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

Prologue

나는 지방대학을 졸업했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인정(?)해주는 학교이지만,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강소 학교라 생각한다. 나는 전(全)학생 자유전공이라는 학교의 교육이념에 이끌려 지원했고, 다니게 되었다. 일 년에 약 900명 정도가 입학하는 작은 학교지만, 900명 모두가 성적과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할 수 있으며 변경도 가능하다. 나는 군대 가기 전 룸메이트 형이 밤새 과제하고 열심히 공부하던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 학교에서 소위 가장 '빡세다'는 학부인 '기계제어공학부'를 선택하고 군대를 갔다.




내 대학전공은 일명 취업깡패 1위인 기계공학과 전자제어공학이다. 그렇다, 복수전공을 했다. 경영학 부전공도 했었지만, 두 과목을 남겨놓고 마지막 학기에 쉬고 싶어서 취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다.)

군 복학 후, 전공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1학년 때 일반물리학 수업과 공학 수학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입학할 땐 생명과학부로 진학하고 싶었다가, 또 경영학 수업을 듣고 경영 전공을 하고 싶다가도.... 내가 기계제어공학부로 갈 줄 몰랐다.) 처음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따라가려고 했지만, 수업 진도가 너무 빨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양도 너무 많았다. 다행히도 교수님들이 전공에 필요한 수학을 간단히 짚어주셔서 따라갈 수가 있었고, 전공 첫 학기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첫 학기 수업을 놓치면 이후 연관된 과목들도 듣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예습을 하진 못했지만, 복습은 철저히 했고,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전공 A+는 10% 내외로 주어졌었다)  소소한 자랑이다.


Figure 1. 전공 첫 학기 성적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나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1등이란 걸 처음 해본 터라 욕심이 났다. 2학기에는 같은 과에 알게 된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직전학기 1등이라는 소문이 났고, 어떤 스터디에서 같이 공부하자는 제안도 받아 같이 공부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2학년 2학기도 2등이라는 성적으로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이 전공이 맞나? (성적이 다가 아니기 시작했다. 시험을 몇 번 잘 봤을 뿐.)

당시 내가 다닌 학부가 현대자동차와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2학년들 중 매년 10명씩 장학생으로 선발하는데,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전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인지 지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지원을 해도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교수님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2학년이 끝났다.
(나는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고, 현대자동차는 선망하는 기업 중 하나이다.)


이때부터 이미 나는 '순수' 기계공학 이외의 선택지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다닌 학교가 지금은 언제든 전공 변경이 가능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3학년 1학기 때까지만 가능했으므로 학기가 시작할 즈음 많은 고민을 하였다. 전과를 할 것인가.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용기가 없었고, 학기는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서로 어울릴만한 직업이나 전공을 서로 말하면, 나한테 기계공학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매번 나오는 직업이 몇 개 있다. 금융공학자 또는 퀀트, 데이터 분석가, 의사 등... 내 전공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분야 때문인건지, 내가 체격이 왜소한 편이라 그런지, 또는 그냥 그런건지.... 갑자기 궁금하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생각보다 다양한 활동들을 했었다.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면,


* 오케스트라 단원(Flute)

* 교내 학회활동(로봇비전학회)

* 사회봉사(교육봉사 위주)

* 하계 단기 연구(칼스루에 공과대학(KIT)와 원자력 분야 연구)

* 학부연구생(IoT기반 스마트팜 구현, 스마트팩토리 POP시스템 설계)

* 미적분학(Calculus), 선형대수학 TA(조교) 업무수행

* 제조업 인턴경험

* 대학 새내기 전공소개 대표

* 그 외 다수 대외활동 들....


전공 관련된 활동도 많다. 하지만 뭔가 이 전공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의 멘토인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나는 전과에 대한 부모님의 조언을 얻고자 전화를 하였고, 나의 상황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공부가 재미없다는 것부터 그동안 쌓였던 것들까지 전부.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성적이 잘 나올때는 그 나름대로 재밌긴 했는데...

부모님 두 분은 번갈아 가면서 나에게 같은 말씀을 하신 걸로 기억된다. "네가 전과를 하고 싶다면 하도록 해라.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전과를 해도 똑같이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네가 또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이와 같은 문제에 또 부딪힐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맞다. 내가 지금 당장 전과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단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나는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주어진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나중에 어떤 문제가 주어져도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도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계가 안쓰이는 곳은 없으니까. 그리고 전공과 다른 일도 많으니까.

 

기계공학과 전자제어공학 전공으로 졸업하고자 하였고, 나는 내가 공부하고 있는 전공의 현장에서 실무도 배워보고자 3학년을 마치고 대기업에서 (체험형)인턴경험을 쌓았다. 인턴경험을 바탕으로 졸업과제 및 논문도 산학연계를 통해 마무리하고 졸업을 하였다.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다. 차석 졸업을 하였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기계공학과 전자공학 복수전공, 두 전공 모두 공부내용도 어렵고 양도 매우 방대했다.....정말 힘들었다.)


이후, 기계공학이 아닌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평소에 '공부'하는 것도 좋아했고 제조업에서 만든 상품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생산하고 완전 자율주행이 상용화되게 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을 해보았다. 자동차는 움직이고, 결국 출발지로부터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이때 우리는 목적지를 정할때 의사결정을 하게되는데, 이 의사결정 방법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많아지는 선택지에 의사결정 장애(요즘 표현으로는 선택장애)를 겪기도 하고, 개인의 의사표현이 약해지기도 한다. 이에 다양한 추천서비스들이 등장하지만, 이 또한 너무 많은 선택지를 준다.
이동은 장소와 장소의 연결이고, 나는 장소, 공간, 위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Figure 2. 우리의 삶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최근 MaaS(Mobility as a Service)가 모빌리티 서비스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으며, 이와 융합하여 제공 가능한 서비스가 어떤 것들이 있을지도 종종 생각해본다.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는데..)
(최근 현대자동차도 '자동차-집-주변공간-스마트기기-도시'를 연결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연결의 초월성'을 강조하며 커넥티드카 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조업에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원에서 공간정보(Spatial Informatics) 분야를 공부하고 있으며, 위치기반 서비스(Location-based Service, LBS),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여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분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전과를 하지 않음에 후회는 없다. 나는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었고, 지금 대학원에서 공부하는데 충분히 밑바탕이 되고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기업과 학교에서 강조하는 '융합'의 측면에서 보면, 전혀 다른 공부도 아니다. 결국 서로 다른 전공도 올라가면 다 만나고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있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렇다, 재미있다!


나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고등학생 때 점수에 맞춰 정한 전공으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나는 자유전공이었기 때문에...)  물론 기업에서도 특정 전공을 우대하는 경우가 있지만, 전공 간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참여한 해커톤에서 5명의 팀원 모두 전공이 달랐다.) 따라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전공이 다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광적으로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전공과 배경이 무슨 걸림돌이 됬겠는가!


지금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전공 또는 하고 있는 일에 모두 '만족' 하십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더라도, 한 분야에 대해 최선을 다해봤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자기 자신에게 (선택 또는 변화의) 기회를 한번 더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지 않는가.

(또한 이제는 평생직장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4~5개의 직장을 갖게 될 미래를 대비해보는건 어떤가.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우리는 강화학습으로 훈련된 알파고가 아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미래의 보상을 알 수 없다. 인간의 한계.....)

Figure 3. 수 많은 경우의 수를 경험한, 강화학습으로 훈련된 알파고


전공 뿐 아니라 모든 선택에 있어서 우리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최적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한 번의 선택으로 그 이후의 삶에 순응하기보다,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 도전적인 선택으로 인생에 전환점(Turning Point)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꼭 무엇을 포기하기보단 변화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대학원 생활을 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어제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내가 될 것임을 알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내 믿음대로 나아간다.


처음에 제목에서 '버리다'라는 표현이 좀 강했는데, 해당 전공을 밑바탕으로 커리어 전환을 위해 도전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보며, 값진 경험들을 통해 미래를 그리는 중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기계공학, 전자공학 전공을 버리지 않았다. 위에 새로운 것을 얹고 있는 중이다.)


글을 쓰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든 것은,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 요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 대화를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응원해주시고 이해해주시는 부모님께 글을 통해 감사드린다.


글을 다 쓰고 보니, 내가 아직 (정신적으로) 어리고 사회에 나가보지 못해서 하는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믿어주시는 부모님, 그리고 응원해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감사하다.


* 제게 해주시는 조언, 공감 등 모두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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