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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춘 Jan 21. 2022

개발자의 백만 가지 취미 | 클라이밍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 아니 건강한 코드가 나온다!

안녕하세요, 영춘입니다.

글쓰기의 시작으로 "개발자의 백만 가지 취미" 연재를 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한 내용들이지만 제가 전하는 내용을 보고 누군가는 가슴이 두근거릴 취미를 발견하길 기대합니다.


앞으로 소개할 취미들의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클라이밍

슬기로운 Self-hosted 생활

과학 소설과 과학 영화

하드웨어 프로토타이핑

나도 이제 예술가


클라이밍을 시작한 이유


처음 대기업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며 큐비클 공간에 하루 종일 앉아 컴퓨터를 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 통증이 생겼습니다. 그곳에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보니 알람을 맞춰 때때로 스트레칭을 하곤 했습니다. 허먼밀러 엠바디라는 고가의 의자에 앉아보기도 했는데 큰 효과는 없었고, 스탠딩 데스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허리 통증은 나아져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은 일어선 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밍 역시 허리 건강에 도움이 되었는데, 코어와 전신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앉아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적합한 운동입니다.


+덧말: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건강을 챙기고 싶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분들에겐 다음 책을 추천합니다. (건강한 프로그래머, 조 쿠트너)



클라이밍의 어떤 점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도움을 줄까?


클라이밍은 신체적인 능력 향상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도움을 줍니다.

문제 해결 (Problem Solving and Trouble Shooting) 능력

클라이밍 훈련법을 다루는 한 책에서는 클라이밍을 Move-dependant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자세와 동작을 취하고, 각각의 동작을 얼마나 능숙하게 하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동작들로 이루어지는 달리기, 로잉, 웨이트 리프팅 등의 경우, 해당 동작을 수행하는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 전반적인 퍼포먼스 향상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클라이밍의 경우, 벽에 매달려 문제를 풀 때마다 서로 다른 동작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야외에서 클라이밍을 하는 경우에도 매달리는 바위가 달라지고 등반 루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도전을 마주합니다. 이런 이유로 클라이밍 퍼포먼스는 근력, 지구력, 유연성, 협응력, 자세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힘세 보이는 근육질의 클라이머가 실패한 문제를 호리호리하고 근육이 적은 클라이머가 풀어내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또한 근력이 중요한 스포츠 같은 경우, 여성과 남성의 퍼포먼스 차이가 심하지만 클라이밍의 경우 그 차이가 덜 합니다. 그렇다면 클라이밍 실력 향상을 위한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쉽게 실력 향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근력 향상이 곧장 다음 난이도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고, 손가락 힘도 점점 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체기가 찾아옵니다. 그때 필요한 건, 강도 높은 훈련이 아니라 본인의 약점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근력이 부족한 경우에도, 순간적으로 빠르게 힘을 만들어내는 능력 Power, 낮은 강도의 동작을 오래 반복할 수 있는 국소적인 근육의 지구력 Local Endurance, 문제를 푸는 동안 지속적으로 필요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Power-Endurance 중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해야 합니다.


이렇게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 단련하는 일, 현상을 파악하는 일은 넓게 보면 Trouble Shooting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인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는 것은 업무에서 마주하는 소프트웨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클라이밍에서의 문제, 특히 볼더링 문제는 정해진 홀드만을 사용하여 시작 홀드에서 완등 홀드까지 이동하는 걸 말합니다. 사람마다 키, 체중 등 신체적 조건이 다르고, 근력이나 유연성 등의 신체적인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이르는 동작은 하나의 정답 대신 시도하는 사람만큼 다양한 답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능력을 고려해 어떤 동작과 기술들을 사용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때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동작을 생각해내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 역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리라 생각합니다.


인내력과 성장 마음가짐 (Endurance and Growth Mindset)

본인의 약점을 파악했다고 하더라고 꾸준하고 집중적인 훈련이 없다면 실력 향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때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전완근이 불타는 느낌이 들고 이제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을 버텨내야 합니다.


특히 볼더링 문제를 풀 땐,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추락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때 낙담해선 안됩니다. 추락은 무능력의 증거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불가결하게 수반되는 과정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제로 추락할지 언정 매번의 시도는 근육과 결합조직을 강화하고, 동작을 만드는 신경회로를 강화하며 다음의 성공을 준비합니다.



클라이밍 알아보기


이제 클라이밍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겠습니다. 저는 3년 반 정도 클라이밍을 했는데 대부분은 실내 클라이밍 짐에서 볼더링을 했습니다. 자연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클라이밍도 있지만, 그 부분은 저 역시 아직 더 경험하고 배워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클라이밍의 여러 갈래

리드 클라이밍: 하네스와 로프를 이용, 인공 혹은 자연 암벽에 설치되어 있는 퀵드로라는 장치에 로프를 통과시키며 올라갑니다.

볼더링: 볼더 Boulder는 큰 바위라는 단어인데, 자연에 존재하는 커다란 바위를 맨몸으로 오르는 행위를 즐기는 것에서 유래된 클라이밍 형태입니다. 실내 암장에서 할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그밖에 스피드 클라이밍, 아이스 클라이밍 등이 있습니다.


클라이밍 팁

처음 클라이밍을 경험하는 경우, 곧장 내키는 대로 벽에 붙어보는데 생각보다 힘이 금방 소진되는 경험에 당황하기 십상입니다. 제가 초심자와 함께 볼더링 일일체험을 하는 경우에 알려드리는 팁을 적어봤습니다.


힘을 경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홀드를 지나치게 꽉 쥐지 않습니다.

팔을 굽힌 채 매달리면 힘을 많이 소모하므로 가능한 한 무게중심을 낮추고 팔을 쭉 편 상태를 유지합니다.


다리를 활용합니다. 하체의 근육이 더욱 크고 강하므로 팔로 당기는 동작만으로 오르지 말고, 다리로 풋홀드를 밟고 일어서는 동작을 활용해 힘을 아낍니다.

발로 홀드를 디딜 땐, 발의 앞쪽 끝을 사용합니다

발끝의 안쪽면 (인사이드 에지) 혹은 바깥면 (아웃사이드 에지)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매달릴 땐 (적어도) 삼각형 혹은 역삼각형의 모습을 취해야 안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습니다

삼각형: 양쪽 다리를 벌려 두 개의 풋홀드를 밟고 손은 중간 지점에 위치합니다.

역삼각형: 양팔을 벌려 두 개의 핸드 홀드를 잡고 두 발은 중간 지점에 위치합니다.

피해야 할 자세는 손과 발, 몸통이 일직선 상에 위치하는 형태인데 이 자세에서는 몸이 좌우로 흔들리게 됩니다.


실내 클라이밍 짐에서 할 수 있는 것들

매달리기 자세 연습

앞서 연습한 삼각형/역삼각형 자세를 유지하며 트래버스(횡방향 이동)를 해봅니다.

지구력 문제

평평한 벽에 난이도 스티커로 표시된 홀드들이 30–50여 개 붙어 있습니다. 차례차례 손으로 홀드를 잡고 이동합니다.

이때 보통 손은 번갈아 사용합니다. 핸드 홀드는 정해진 것만 사용해야 하고 풋 홀드는 세팅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정해진 것만 사용합니다.

볼더링 문제

기본적으로 시작 홀드(Start)에 두 손을 모은 채 시작하고, 해당 문제에서 사용하도록 정해진 홀드만 사용하여 오릅니다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딛기). 완등 홀드 (Top)에 두 손을 모아 3초 이상 버텨야 합니다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하면 3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완등 홀드를 제압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완등 홀드를 잠깐 잡았다가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는 게 아닌, 충분히 제어된 상태에서 버텨낼 수 있는지를 봅니다)

클라이밍 문제의 난이도 측정

클라이밍 지구력/볼더링 문제에는 난이도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보통 암장들마다 각자 나름의 색을 이용하여 난이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관적인 구분으로는 난이도 비교가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난이도 체계가 있습니다. 보통 아래 그림에 나타난 세 가지 방법 (V-scale, 퐁텐블로, 요세미티) 들이 널리 쓰입니다.

클라이밍 난이도 체계 (출처: prioclimb.com)
실내 클라이밍 짐 이용 에티켓

본인이 풀고자 하는 문제와 경로가 겹치는 문제를 다른 사람이 풀고 있는 중이라면, 다른 사람의 문제풀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도합니다.

완충 패드 위에 앉는 행위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문제를 풀다가 추락하는 경우, 충돌의 위험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할 때 클라이밍 베타 (=문제 풀이 방법)를 알려줍니다. 혼자서 고민하며 문제 풀이 방법을 떠올려 보는 것도 클라이밍을 즐기는 과정 중의 하나이므로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때 해법을 알려주는 일을 삼갑니다.


클라이밍을 시작할 때 주의해야 할 점

늘 부상을 조심해야 합니다

암벽과 클라이머를 연결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손”입니다. 동시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소스 코드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것 역시 “손”입니다. 클라이밍에서 가장 다치기 쉬운 부위는 손가락입니다.


그 이유는 결합 조직, 곧 인대와 건에 걸리는 부하 때문인데, 작은 홀드를 잡을수록 이런 결합 조직에 무리가 갑니다. 근육이 단련되고 성장하는 시간에 비해 결합 조직은 더디게 단련됩니다. 따라서 신체 능력이 향상되었다 해서 무리를 하게 되면 손가락을 다치기 쉽습니다.


도전을 즐겨야 합니다

승부욕에 불타는 분들은 쉽게 클라이밍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원하는 만큼 실력이 금방 늘지도 않을뿐더러, 근력이나 체형 면에서 본인보다 불리해 보이는 클라이머들이 더욱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모습에 주눅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클라이밍에 빠진 이유는 그런 격차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시작 홀드를 잡고 버티는 것도 못 하는데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완등 할 수 있지?
가장 쉬운 지구력 문제에서도 나는 숨이 차고 겨우 버티는데, 어떻게 훨씬 높은 난이도에서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지?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클라이밍 퍼포먼스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주고 홀드를 잡고 버티는 힘이 길러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언제 나는 더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조급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도전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고, 더 강해질 날들이 남아있어 즐겁습니다.


그럼 언제나 안전한 클라이밍을 하시고, 실내 클라이밍 짐에서 만나 뵙길 기대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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