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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춘 Jan 21. 2022

개백취 | 과학 소설, 그리고 과학 영화 (1)

가슴이 웅장해지는 미래의 모습들

안녕하세요, 영춘입니다.

개발자의 백만가지 취미 시리즈의 이번 주제는 “과학 소설, 그리고 과학 영화” 입니다. 과학 소설과 과학 영화에는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많아 이미 보셨을 것 같은 작품은 제외하고, 다소 주관적인 기준으로 소개해보려 합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과학 소설/영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며 이 직업에 대해 그려보는 모습이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이 있겠지만, 제 마음 속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아래와 같은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사물의 원리에 관심이 많고, 문제 해결에 열정적이다

열린 시각을 갖고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구한다

왜 이런걸 만드냐고?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든다

기술 발전의 궤적을 그려 보고 다가올 미래의 모습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들은 새로운 제품과 기술에 열광하고, 누구보다도 앞서 세상을 바꾸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과학 소설과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현실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실현된 현실은 또 다시 과학 소설과 영화의 재료가 됩니다.


과학 소설과 과학 영화

과학 소설과 과학 영화를 주제로 잡은 후, 어떤 작품들을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설과 영화를 따로 나누거나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방법을 떠올렸는데 단순한 나열에 그치게 될 것 같아, 여러 주제를 따라가며 작품들을 소개하고, 흥미로웠던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주제 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샛길로 빠지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생동감 있게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간혹 새로운 SF 영화가 나왔는지, 아직 못 본 영화는 뭐가 있는지 검색해보곤 하는데, 추천 목록에서 다루는 영화의 개수가 충분치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기보다는 — 줄거리는 영화 소개 페이지를 검색하면 금방 나오니까요 — 영화에서 다루는 “상상”의 종류에 집중하며 지루하도록 긴 목록으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이버 펑크

가장 먼저 소개할 작품은 “사이버 펑크”로 분류되는 작품입니다. 사이버 펑크는 SF의 하위 장르로, 밑바닥 삶과 첨단기술이 같이 등장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제가 처음 읽었던 사이버 펑크 소설은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 입니다.

사이버 펑크 소설이라고 하면 빠짐없이 언급되는데요. 특히 가상세계와 해커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이 소설에서 처음 사용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단어는 지금은 가상공간을 칭하는 일반적인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해커들은 “카우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아이스(ICE, Intrusion Countermeasures Electronics)라 칭하는 방화벽을 무력화시켜 데이터를 훔칩니다. 등장인물들은 음모에 휘말리며 인공지능을 공격하는 작전을 수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단어와 풍경들이 생소하지 않습니다. 처음 소설이 등장했을 땐 생경했을 설정들이 지금은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해킹, 인공지능, 두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가상공간, 인격 시뮬레이션, 사이보그, 우주여행 등 이제는 나름대로 이름 붙여진 주제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깁슨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코드명 J​”는 두뇌를 일종의 데이터 저장장치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직업이 나옵니다.


짧은 덧말로, 최근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에서 한국 SF 드라마 “시지프스”를 보다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하는 부분이 나와 반가웠습니다.

“미래는 이미 여기에 있다. 다만 고르게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evenly distributed." ―William Gibson

가상현실

뉴로맨서를 재밌게 읽고, 비슷한 작품을 찾다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를 발견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도 소설을 빠져나와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아바타”는 가상현실의 분신을, “메타버스”는 가상현실을 의미하는데 현재는 단어의 뜻을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노 크래시의 가상현실은 VR과 닮았습니다. VR(Virtual Reality)은 사실 가상현실의 영어 표현이지만, 여기에선 고글 같은 장치를 이용해 시각적으로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VR 기기를 말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가상현실과 현실이 혼재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이는 증강현실 (AR, Augmented Reality)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증강현실의 경우, 사람의 감각 정보에 추가 정보를 덧대어 현실을 현실 그 이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합니다. 구글 글래스,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등 AR 기기들과 AR 기술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모습을 영화 “Her​”와 애니메이션 “전뇌코일​”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과 인간의 감각이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는지는 작품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데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경우, 특별한 수트를 착용하면 가상현실의 아바타가 느끼는 촉감을 똑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디스토피아 같은 현실을 그리고 있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무질서한 거주공간이 등장합니다. 이 공간은 “구룡성채​” (Kowloon Walled City)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구룡성채(Kowloon Walled City)는 모호한 법질서의 경계 아래에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유기적으로 공간을 개조하고 보수하면서 생긴 거대 건축물입니다. 바깥에서 보면 하나의 요새 같고, 내부 공간은 미로 같이 얽혀있는 구룡성채는 다른 문학과 영화, 게임 등의 배경 설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포그래픽​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두뇌 속 신경 신호로 가상현실을 감각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프로그램으로 작성된 가상 인격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가상 인격이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로는 “13층​”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SF 주제를 다루는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시리즈에선 “USS 칼리스터​” “베타테스터​” 편이 가상현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렇게 신경 신호로 가상현실을 감각하기 위해선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일론 머스크의 회사 “뉴럴링크​”를 보면 미래는 정말 이미 이곳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두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공각기동대​”가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두뇌를 제외한 신체를 기계화 한 사이보그 입니다. 남아있는 두뇌엔 "전뇌"라 불리는 두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 적용되어 직접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영화 “업그레이드”의 경우에도 컴퓨터 칩과 두뇌가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영화 “트랜센던스”에선 인간 의식의 형태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인공지능

과학 소설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은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작업이라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일반 지능을 말합니다.

사실 영화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초월하는 지성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소설 중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재밌게 봤는데요. 미래의 달은 지구의 식민지가 되어, 지구에서 쫓겨난 범죄자 같은 사람들이 모여 식민지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달의 사람들은 반란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죠. 한편, 달의 사회기반구조는 슈퍼컴퓨터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데, 주인공은 이 슈퍼컴퓨터를 수리하는 엔지니어입니다. 주인공만이 슈퍼컴퓨터를 수리할 수 있고 어느날 이 컴퓨터가 자아를 갖게 되었음을 홀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던 중, 주인공은 우연히 반란을 꿈꾸는 무리들과 관계를 갖게 되고, 슈퍼컴퓨터의 도움으로 혁명을 진행해가는 과정을 소설에서는 속도감 있게 그립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의 편에서 함께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영화 “나의 마더​”와 고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인간과 대척점에 선 인공지능을 그리는 작품도 있습니다.


아마 사람을 뛰어넘는 연산 능력과 지성을 가진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투영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필립 K. 딕 (Philip K. Dick)

이쯤에서 특별한 SF 작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작가 필립 K 딕​(Philip K. Dick) 의 많은 소설들이 영화화되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영화 “블레이드러너​” 는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영화 “토탈 리콜​”은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가 원작이고, 영화 “페이첵​”과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동명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블레이드러너”에서는 생명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등장합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찾아가는 내용이 나오며, 혹자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소설로, 매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로는 블레이드러너의 감독 리들리 스콧의 또 다른 영화 “프로메테우스​”가 있습니다.


“페이첵”에서는 타임머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펼쳐지며, “토탈 리콜”에선 기억 조작 기술이 등장하는 화성을 배경으로 모험이 펼쳐집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예지력을 가진 초능력 자매의 능력으로 미리 범죄자를 가려내어 구속하는 사회가 등장합니다. 이 영화는 톰 크루즈가 허공에 떠 있는 홀로그램을 조작하는 장면으로 유명합니다.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들은 과학/기술적으로 이해하기도 쉽고, 사회와 고정관념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처음 과학소설을 접하는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로봇 에세이"라는 이름의 전시에서 노재윤 작가의 미술 작품을 본 일이 있는데, 필립 K 딕의 단편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여, “사기꾼 로봇(Impostor)​”이라는 단편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어느 날 비행 물체가 불시착하고, 그 후 등장인물들과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나타나 사람들을 헷갈리게 합니다. 서로가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지만 한쪽이 거짓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순간, 자신을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로봇은 고장 난 듯 이상 동작을 보이다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지고, 그 폭발은 지구를 완전히 날려버렸습니다.


노재윤 작가는 이 폭발을 해탈의 순간에 비유했습니다. “자아”라는 허상에 대해 경고하는 불교의 교리와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단편에서 놀라웠던 건, 폭발의 규모였습니다. 필립 K 딕은 대담하게 한 번의 폭발로 지구를 날려버렸습니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아무나 그려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불교와 해탈이라는 단어를 보니 한국 SF 영화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인류멸망보고서​”는 세 편의 이야기가 모여있는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그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깨달음을 얻은 로봇이 나옵니다. 박성환 작가의 “레디메이드 보살”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로봇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설법을 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오늘은 과학소설, 그리고 과학영화 중에서 “사이버펑크”, “가상현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작품들을 소개하고, SF 작가 필립 K.딕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과학영화와 소설에 대한 애정으로 글을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 2편에 걸쳐 또 다른 작품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우주”, “시간 여행”, “디스토피아/호러”, “그리고 분류하기 다소 어려웠던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추천한 많은 작품이 누군가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고, 누군가에게는 엔지니어의 꿈을 키우게 하는 촉매제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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