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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키온니 Nov 02. 2022

승무원의 사치

승무원이란 직업의 장, 단점

승무원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수도 없이 많다.

사치라고 해서 혹시 명품을 마구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과시하는 글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이나 가치관은 달라서 물질적인 풍요를 최고로 꼽을 수 도 있겠지 한때는 나도 그랬고 아직도 어느 정도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무엇이 나쁘다고는 할 수없다. 단지 다를 뿐,

지적 사치, 잘 모를 땐 가끔 부릴 수 있는 지적 허영심이라 하는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승무원의 혜택 중 가장 좋은 부분인 것 같다.


밍키, 뉴욕에서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다


2016.5.10 뉴욕 타임 스퀘어

뉴욕으로 비행이 나왔을 때다. 누구나 알만큼 뉴욕은 매력적이면서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전 직장에서는 승무원들 사이에서 기피하는 곳이기도 했는데 이유는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은 승객들을 응대하느라 13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걸어간다고 할 만큼 노동의 강도가 높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뉴욕의 스테이는 겨우 24시간, 그러니 그 좋은 곳을 가더라도 도착하면 쉬기 바쁘다.


여유가 좀 있어 다음날 센트럴파크라도 잠시 밟아보면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힘든 비행이라고 소문나 있는 곳이 내 스케줄표에 나올 때면 일부로라도 그곳에 꼭 가고 싶은 이유를 찾았다. 가장 많이 세우는 목표는 맛집 찾아가기였고 두 번째로는 뉴욕이나 런던 같은 문화의 도시를 갈 때 공연이나 미술관을 다녀오는 목표를 세운다. 그러면 승무원으로서 악명 높은 걸어서 뉴욕까지 비행은 온데간데없고 즐겁고 신나는 여정이 시작된다.


그러나 딜레이나 갑작스러운 변수로 아예 날려버리는 경우가 있어 티켓을 미리 예매해 둘 수는 없다. 뉴욕비행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라이온 킹 뮤지컬"을 보려는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변수는 발생하지 않았고 공연 시작 전 아슬아슬하게 극장 앞에 도착했다.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갖긴 했지만 이미 너무 피곤했고 온몸은 너덜너덜해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공연을 보고자 하는 내 의지는 불타올랐고 이용 가능한 티켓을 물었을 때는 오케스트라석의 가장 비싼 자리만 남아 있었다.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나는 2~300불에 상당한 티켓을 구매했고 반정신이 나갔다 싶을 만큼 너무나 피로한 상태였지만 얼마인지 신경 쓰지 않고 이 순간을 지불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다.


학생의 신분이거나 여행자였더라면 상황에 맞게 지출해야 하니 이리 두 번 생각 없이 사치를 부릴 수 있을까, 그 순간 승무원인 내가 참 자랑스럽고 좋았다. 피로로 인해 뻗뻗하게 굳은 뒷목을 마사지해가며 관람한 그날의 라이온 킹 뮤지컬은 감동 그 자체였다.


밍키, 반 고흐의 나라 네덜란드에 가다(크뢸러 뮐러 뮤지엄)


2022.7.15 반 고흐 미술관

KLM 네덜란드항공에 합격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있는 미술관에 관한 책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이전 항공사에 근무했을 때 승무원으로서 좋았던 점은 공연과 미술관 관람 등 한국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문화생활의 혜택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에 관한 책과 영화를 보면서 네덜란드에 가게 되면 하고 싶은 일 1순위가 반 고흐 미술관 가기였을 만큼 고흐의 삶은 슬프고도 외롭게 느껴졌으며 또한 많은 호기심을 자아냈다.


반 고흐 미술관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것이 꿈일까 작품을 보기 전부터 많은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있는 사실에 뭉클했다. 전문적이게 객관적으로 판단할 만큼 미술작품에 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전무하다. 보이고 들리며 아는 만큼 사고하고 느끼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나는 단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을 즐기는 사람이다.


2022.10.20 크뢸러 뮐러 미술관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암스트레담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국립공원을 끼고 있고 세계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2번째로 많이 소장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미술관은 책으로 알게 되었는데 암스트레담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지만 대중교통편으로 가기 쉽지 않은 곳이라 차를 빌리게 되었다. 한국에서 무사고 15년 운전경력이지만 해외에서 차를 빌려 운전한다는 것은 은근 쫄보인 나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기도 했다. 고작 12유로의 입장료를 지불하는 미술관을 가기 위해 고유가 시기인 지금 네덜란드에서 차를 빌려 다녀오는 것이 합리적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도착하는 순간 그 염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많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 포함 잘 알려지지 않은 반 고흐의 그림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었는데 특히 좋았던 것은 어떤 물감을 덧칠해 표현했는지 자세히 볼 수 있을 만큼 작품과 관람객의 거리 제한은 없었다는 점이다. 미술관 자체가 국립공원이었기에 가끔씩 쉬어갈 때마다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대자연의 관경은 또 다른 자연의 갤러리를 연상시켰다. 미술관 야외 정원 조각 작품만 해도 100여 점이 넘는다고 한다. 나와 동행한 미술학도 출신의 친구도 연신 감탄을 자아냈고 미술을 잘 모르는 나조차도 감동을 불러일으킬 만큼 멋진 장소였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도 모자랄 만큼 많은 볼거리를 주었던 미술관을 아쉬운 마음으로 빠져나왔다.


공원 입구에서 미술관 입구까지 15분가량 아무 곳에나 놓인 무료 대여 자전거를 타고 올 수 있는데 초록이 우거지는 시원하면서도 무더운 여름이 오면 꼭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 그때는 사슴, 노루, 야생 양 같은 동물들도 꼭 봐야지. 생애 첫 해외 렌터카도 성공했고 내가 생각하는 승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지적 사치도 마음껏 누린 하루, 행복했고 감사했다.


네덜란드는 문화의 도시로 반 고흐 미술관 외에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이 전시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세계적으로 음향이 좋기로 유명한 콘서트헤보우 등을 포함한 많은 미술관, 박물관등이 있는데 이미 교육기간 동안 짬짬이 방문한 곳들이지만 KLM에서 보내는 2년 동안 열심히 더 다녀올 생각이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단점이라고 말한다면 제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근본적인 결핍? 그래서 예전에는 비행이 끝난 다음 나도 모르게 늙어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하면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젊음을 파는 대가로 남들보다 더 많은 세상과 경험을 가진다는 이야기들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 보다 미성숙한 시절이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스스로를 가엽게 여겨 위안을 얻고자 했던 것 같다. 모든 일에는 나름의 고충과 수고스러움이 있는 법, 나처럼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해내면 조금은 유연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인생 선배님들께서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조언을 해주신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누구든 무조건 원하는 것에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다.


사소한 것으로 시작되는 목표 세우기와 목표 달성의 소소한 성취감이 더 많은 목표로 스스로를 이끄는 묘한 중독성을 준다.

그 중독성을 즐기는 순간 삶은 즐거운 "어른의 놀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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