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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키온니 Nov 16. 2022

KLM 네덜란드항공 채용 취소 한국 승무원들,다시 날다

3년 6개월간의 기다림

요즘 사람들(MZ세대)은 관계의 밀도보다 관계의 스펙트럼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세대 차이 일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성향에 따른 다른 관점들, 나는 관계의 밀도가 중요하다. 다수의 사람들과 두루두루 넓고 얕게 아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정을 나누며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한번 좋다고 생각한 인연에 대한 충성도가 높으며 내가 그런 관계를 선호하는 것처럼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만나는 덕에 인복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보통 운동 경기에서 공을 주고받는 이치처럼 정을 주고받는 것으로 인연을 이어가기를 좋아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돌려주지 못할 큰 도움을 준 진짜 귀인이 나타났을 때는 진짜 나의 복이겠지? 하면서도 그 되갚아야 할 감사의 마음은 대체 어디로 다시 전달해야 하는 것인가 알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고 무작정 글이 쓰고 싶어 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귀인들에 대한 감사함"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세상에는 많은 항공사와 승무원들이 있다. 근무환경과 복지 등 각 회사마다 다른 요소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을 대하는 비슷한 업무를 한다고 생각한다.


중동 항공사에서도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사심이 가득했지만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이미 수년 전에 생겨나 나는 이제 겨우 시작하는 후발주자지만 KLM 네덜란드항공 입사 후 알 수 없는 기록의 힘이 생겨났다. 2년이라는 제한된 근무기간을 위해 3년 6개월의 기다림 끝에 입사한 사연도 사연이지만 벌써부터 아쉽고도 소중한 2년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다.


아주 어릴 적 '작가'를 꿈꾸었던 스처지나간 나의 장래희망 또한 이뤄지는 순간의 요즘이다. 소소하고 오래된 작은 꿈을 이루어 준 것만 봐도 글을 쓰게 만든 그들은 이미 나의 '귀인' 들이다. 순탄했었다면 이 순간 나는 이런 글을 적어 내려갈 수 있었을까?

귀인들이 만들어준 드라마틱한 사연이 없었다면 이런 용기는 생겨나지 않았을 거다.


귀인貴人 1


회사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작년(2021년) 11월이다. 재채용을 진행하니 비대면 인터뷰 준비를 하라는 메일, 드디어 올 것이 온 거구나 싶다가 꿈인가 싶었다. 3년 전에 이미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오랜 시간을 애먹였던 듣기도 싫었던 비자발급,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2019년부터 네덜란드 정부는 항공업계 종사자들 대상으로 신원 조회 및 보안을 더 강화하였고 우리나라는 개인정보 보안법(타인에게 개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음)이 있었는데 이 두 정부 간의 정보 교류가 상충되어 그렇게 애를 먹였던 거다.


이제는 중간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줄 우리의 지원군 주 네덜란드 대사관이 있기에 다시 힘을 내어 보기로 했다. 여러 가지 신원 조회에 관련된 자료들 외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나처럼 해외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지원자들에게 근무했던 지난 몇 년간의 스케줄 중 한해를 골라 엑셀로 시간 계산한 후 최대한 그 나라(카타르)에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파일을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중동 국가도 네덜란드와 국가 간 정보교류에 해당하지 않았기에 비행(근무시간), 휴가 또는 휴무일 동안 최대한 카타르에 없었음을 증빙 해라는 취지였다. 엥? 무슨 대체 무슨 소리인가. 퇴사한 지 이미 4년이나 지났는데 나의 지나간 스케줄은 다시 어디서 구하란 말이지.


고민을 하다 전 직장(카타르항공) 동료이자 플랫 메이트였던 친구와 매달마다 스케줄 공유했던 기억이 있어 혹시 카X 메시지 복원이 가능할까? 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혹시나 했던 질문에 무엇이든 버리지 않고 대용량 USB에 저장하던 그녀의 습관이 나를 도울 수 있었다. 그렇다. 나의 친구는 첫 스케줄부터 마지막 스케줄까지 5년 4개월에 달하는 나도 더 이상 소장하지 않는 내 모든 스케줄을 보관하고 있었고 하나도 빠짐없이 보내준 덕에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정리가 귀찮아 그냥 통으로 저장해 두었다 머쓱해하며 말했지만 그리고 그것이 정말 진심이었다 해도 내가 아는 그 친구는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나는 그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언제나처럼 내가 어려움을 겪으면 열일 제처 두고 '짠' 나타나 도와주는 친구,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카타르항공 비행스케줄


귀인貴人 2


K양은 나와 10살 차이가 나는 아홉수 동갑이다. 나는 그녀를 "작은 영웅"이라 생각한다.

입사가 멀어져 가는 시점 합격 대기자들은 모두 지쳐 있었고 나 역시 어쩔 수 없다면 할 수 없는 거지 라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응자였다. 마음은 간절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해본다 하기엔 지식이 전무했고 시간도 없었다는 핑계를 댔는데 우리의 관한 신문 기사가 세상에 나오고 나서야 K양에게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네이버뉴스 https://www.news1.kr/articles/4772832

홀로 30여 명의 합격생을 대신하여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준 그녀의 노고에 기사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이렇다 할 답변 없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는 재채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저 고맙다는 말한디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그러나 나는 말로만 하는 감사는 싫었다. 입사날짜가 정해지고 2달 정도의 준비기간 동안 나는 K양에게 줄 선물과 편지를 준비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 행여나 부담스럽지 않을까 고가이지 않으면서 성의는 표할 수 있는 선물은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 재밌게 읽었던 네덜란드에 관한 책과 크루 레스트(승무원들이 쉬는 공간)에서 쓸 핫팩 등 소소하지만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혹시나 K양이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고민도 하고 또 설레었다. 동그란 눈망울에 웃는 얼굴이 예쁜 K양은 입사 전부터 나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10살 차이가 무색할 만큼 그녀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아주 큰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를 위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영웅"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입사 후 우리는 가끔 서로의 근황을 알리고 모임을 가지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싫어하는 공통점부터 삶을 건설적이고 긍정적이게 끌고 가려는 방향성이 비슷해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풍부한 즐거움을 준다. K양은 우리에게 조금 일찍 온 아홉수가 2939가 되어 풀렸기에 오히려 9가 주는 아홉수의 의미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39세, 아홉수가 달린 나의 나이가 좋다.


귀인貴人 3


네이버뉴스 https://www.news1.kr/articles/4772832

마지막으로 입사의 큰 도움을 주셨던 주 네덜란드 대사관분들의 노고가 담긴 기사 내용이다. 대부분은 K양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어떻게 상황이 진행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는데 입사 후 드디어 함께 모이게 된 자리에서 K양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재임기간 때문에 2분의 영사님들에 거쳐 조금씩 일들이 진행되었고 개인 정보 관련 서류와 각종 회사에 필요한 자료들을 모아 직접 네덜란드 정부와 컨택하여 우리의 입사를 도우셨다. 대사님에 관해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기사처럼 우리의 취업을 마치 본인 자식들의 일처럼 안타까이 여겨 몇 년 동안 개인적인 공을 들여 지원해 주셨다고 했다.


더 자세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보안상 나눌 수 없지만 기사만 보아도 우리는 '기적의 합격생'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채용 취소는 사실상 기정 사실화된 내용이었다. 우리 채용 취소 사실과 더불어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비자발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우리 기수들 이후 KLM 네덜란드항공의 한국인 승무원 채용은 더 이상 없었을 거라고 한다.


그러니 K양과 주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이뤄낸 업적은 최종 입사한 25명의 한국인 승무원들 이외 그 후 계속적으로 채용될 한국인 승무원들 모두에게 아주 커다란 선물인 것이다.


얼마 전 읽고 보았던 '역행자'라는 책과 '한산'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역행자라는 책에서 흥미로웠던 문구는 순응자처럼 살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것을 거슬러 역행하는 역행자만이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화 '한산'을 보면서는 지금 우리가 이 순간을 편히 살아가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커다란 노고와 희생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했었다. 나는 K양과 주 네덜란드 대사관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오버랩되며 떠올랐고 KLM 네덜란드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날까지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살면서 외교부 사이트에 대사관 분들께 올리는 감사의 글을 처음으로 써 보았다. 고작 몇 줄의 글로 대신할 수 없는 감사함이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그것이라면 백번이라도 쓸 수 있다.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이런 것이구나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국격을 느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인연들을 거치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귀인을 만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나의 운일 테지만 그 소중한 인연을 통해 받은 감사했던 마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나는 곧 다가올 2023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탓에 승준생 시절 불필요한 금액을 지불하면서 취업학원에 등록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취준생들에게 나름의 방법들을 언제든지 알려 줄 수 있는 멘토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에 부족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자격을 갖추고 여전히 학식을 통해 더 성장하고픈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다.


오직 2년 동안만 근무할 수 있는 KLM 네덜란드 항공에 입사하기까지 3년 반이라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고진감래라고 하지 않던가. 친구라는 큰 선물과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성장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해 준 회사, 이제 나는 여기서 그렇게 꿈꾸었던 일들을 하며 마음껏 즐기려고 한다. 그것이 다시는 가지지 못할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준 분들에 대한 지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뉴스 https://www.news1.kr/articles/477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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