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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Feb 10. 2023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천만 가지 고민들

"지금 행복한가요?"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난 무슨 대답을 할까. 아무래도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행복하죠. 딱히 불행하진 않으니까요."


지금의 나는 그렇다.

24살, 대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하고 운이 좋게 취업도 바로 성공하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27살엔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해서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한 집 한 채도 마련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예고도 없이 찾아왔던 작은 생명의 씨앗은 내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이듬해 9월 태어났고 첫 돌을 넘긴 지금까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남들 해보고 싶어 하는 건 다 해봤고, 남들 가지고 싶어 하는 건 다 가졌으니 이만하면 나름 성공한 삶이 아닐까?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친다.


'그래서 내 딸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소중한 내  딸이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건?'


방금 전까지 '나 정도면 행복하지' 했던 자신만만함은 온데간데없이 어쩐지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여차저차 대학까지 졸업을 했지만  나는 늘 엄마 아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운 자식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나는 마치, 인형들을 아슬아슬하게 잡았다 입구 근처서 놓쳐버리는 야속한 집게 같았다.


게다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월급쟁이다.

들어오는 수입원이 죄다 근로소득 밖에 없으니 몸이 닳도록 일해야  살 수 있는 팔자인 것이다. 타고나길 도전을 두려워해서, 그 흔한 주식도 손실이 무서워 손 한번 대본적이 없다. 때문에 크게 잃지도 않지만 크게 벌지도 못하고 산다.


그리고 최근엔 새로운 타이틀을 얻었다.

엄마는 강한데 나는 그 엄마보다 더 강하다는 워킹맘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도 버거운데 아이까지 둘러업고 간단한 식사까지 챙기고 어린이집에 바래다준다. 등원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출근을 하고, 모두가 염원하는 퇴근은 나에겐 곧 새로운  출근이다.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정신없이 하루를 살고 저녁 9시에 아이를 재우다 그만 같이 곯아떨어진다.




나는 분명 행복하다고 했지만, 내 딸이 나처럼 사는 건 뭔가 내키지가 않다.


본능적으로 나는 원하고 있었다.


'부디 우리 아이는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이 바람은 단언컨대 나 혼자만 바라는 게 아닐 것이다. 세상 엄마 아빠들 모두, 우리네 엄마 할머니 조상님들까지.

자식을 낳아 본 부모라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바람 깊숙한 곳에는 아마 본인들이 겪었던 결핍만큼은 느끼지 않도록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 엄마라고 다르지 않았다.


엄마의 결핍은 '가난'에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죄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학교를 보낼 형편이 못 되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을 다녔는데 할아버지는 그것마저도 반대하며 노발대발했다고 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지겹게 들었던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결핍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본인을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없었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결핍은 나를 불행하게 만든 새로운 결핍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나를 본인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못해주었던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준 것이다. 엄마는 나를 한글을 갓 뗀 7살 때부터 영어 학원을 보냈고 10살 무렵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야 하는 학원이 빼곡히 차 있었다. 엄마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학비에 투자했고 나는 그렇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엄마와 아빠의 삶을 갉아먹으며 커 갔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초라한 내 성적표는 엄마가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노력만큼 큰 화를 불러왔다.

서른이 넘은 지금은 그때의 엄마를 좀 더 이해하게 됐지만, 그 당시 어렸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주눅이 들어있었던 나는 내 마음속에 새로운 결핍이 싹 틔는지도 몰랐다.


나는 늘 인정과 칭찬에 목말랐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인정과 수용.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그것들에 대한 내 결핍은 마음속에 깊게 뿌리를 내려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도 내 결핍을 내 딸에게 채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게 의도가 어찌 됐든 내 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수천번 수만 번 고민을 한다.


우리 딸이 나보다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줘야 하는 것일까.

내 안에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맞는 것일까.

우리 엄마가 그랬듯 그것이 또 따른 상처의 대물림이 되진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내 안의 결핍을 채워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이 그렇듯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편을 간직한 채 구멍 난 가슴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구멍 난 가슴을 갖고 사는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나는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고, 그 끝엔 부디 내 딸을 위한 결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민의 기록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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