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헝가리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노래가 있다.
96년 4월 20일에 발매된 노래로 원곡의 가수는 '코나'라는 그룹인데 오히려 피처링을 한 이소라의 첫 소절 "내게 약속해 줘 오늘 이 밤 나를 지켜 줄 수 있다고"가 훨씬 유명하다. <나혼자 산다>의 무지개 모임 4주년 정모에서 이시언이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린 오늘 아무 일도 없겠지만 네가 원한다면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아침을 함께 해달라는 철벽을 넘나드는 고백을 보면 밤이 얼마나 '아무 일이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묘한 시간대인지 생각하게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똑같은 장소라도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곳이 있다. 내게는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그러했다. 2018년 겨울 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 3개국을 가는 꽤 빡빡한 여행의 첫 방문지였다. 친구는 출발 직전까지 너무 바빠 대부분의 일정을 내가 혼자 짠 데다 둘만 함께 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서로 낯설고 예민한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다.
오랜 비행 끝에 마주한 부다페스트는 잿빛의 딱딱한 도시였다. 눈발은 거셌으며 캐리어를 끄는 돌바닥은 거칠고 차가워 올라오는 냉기에 발이 동상에 걸릴 것만 같았다. 헝가리 사람들은 나치 독일과 소련의 지배를 받아서 외국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사람들의 표정도 그 돌바닥만큼이나 딱딱하고 눈 내리는 하늘만큼이나 흐려 보였다. 유럽은 화려하고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줄만 알았는데 헝가리는 요즘 유행하는 카페의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같았다. 회색, 거친, 불친절한.
하지만 해가 지고 완전히 어두워지기 시작한 때부터 마법이 시작되었다.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여느 대도시와는 달리 까맣게 물든 부다페스트의 밤에 곳곳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냥 황금 색도 아니고 마치 <반지의 제왕> 속 운명의 산에서 갓 만들어진 절대반지처럼 불타는 황금빛이 산 위에서, 다리 위에서 피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강변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이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길고 장엄하게 자리 잡은 국회의사당은 말 그대로 까만 밤을 불태웠다.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모두 사용된 이 아름다운 건물은 분명 낮에도 본 것이었음에도 밤에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나를 압도했다. 불을 섬기는 조로아스터 교인이 된 느낌으로 헝가리의 밤에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