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이자 내담자인 내가 잃은 것

작가 전민교

by 전민교

나는 심리상담사다.
그리고 동시에, 내담자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맡기기도 한다.


지금까지 총 세 명의 상담사를 만났다.
모두 짧은 만남이었고,

지금은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이유는 조금 슬픈데,

상담을 받을 때조차

상담을 해 주는 사람처럼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상담사는

50대 중반, 중국계 미국인 조이스였다.


미국으로 유학을 와 정착한,

나와 비슷한 경로를 걸은 사람이었다.


유학생이자 이민자로서 겪는 힘듦,
장유유서 같은 동양문화가 주는 압박감,
그녀는 그것들을 너무도 잘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심리상담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조이스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꺼내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나도 있었는데 말이야…”
“내가 예전에 했던 실수는 말이지…”


내가 말을 꺼낼수록,

그녀는 더 깊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건가 보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

그녀가 그녀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와의 관계와 시간이

부담스러워졌다.


결국 나는,

상담 목표를 ‘다 달성한 것’으로

대충 처리하고 급히 상담을 종료했다.


두 번째는,

40대 중반, 히스패닉계 미국인 베니따였다.


그녀는 평점이 매우 좋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상담사였다.


첫날부터 그녀가 풍기는

편안한 분위기 덕에 나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녀에겐 나의 직업을 밝히지 않았다.
조이스와의 일이 다시 일어날까 봐.


베니따는 정말 잘 들어줬다.

그녀와의 상담이 진심으로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언어와 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

한인 상담사를 만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갑작스러웠지만, 그녀는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지 않는 나를 배려하고자

한인 상담사를 소개해줬다.

“만나보고 별로면 다시 나에게 와도 돼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혹시 내가… 별로인 내담자였나?’


베니따에게 말하고 싶었다.
“저는 당신에게 계속 상담받고 싶어요.”


그런데 그 말을 하지 못했다.
혹시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렇게 연결된 세 번째 상담사가

40대 초반, 한국계 미국인 그레이스였다.


그녀는 첫 상담 때,

정확히 12분 늦게 등장했다.

상담이 자동으로 취소되기 3분 전에

헐레벌떡 등장한 그녀는

어딘가 어수선해 보였다.

불안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편했다.
언어적으로는 가장 편한 상담사였다.


그러나 그녀는 상담 때마다

늘 5분, 10분씩 늦었고,
상담이 끝날 즈음엔 정신없이

늘 허겁지겁 마무리했다.


불안을 다스리려 상담을 받는 건데,

그녀와의 상담이 끝날 때마다 나는,

오히려 더 불안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시작 두 시간 전에 그녀는 물었다.
“혹시 상담을 내일로 옮길 수 있을까요?”


그녀의 시간 약속 문제에 지친 나는

일 핑계를 대며 그녀와의 상담을

조용히 정리했다.


세 명의 상담사하고의 관계를 통해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바로,

나는 나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나는,

나 자신보다 상대를 더 신경 썼다.


상담사로 있을 때처럼 할 말을 꾹 삼키며

상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조이스에게 “제 얘기를 좀 더 들어주세요,”

라고 말하지 못했고,

베니따에게 “계속 당신에게 상담받고 싶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고,
그레이스에게는 “다른 상담사를 찾아볼게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미안해서.

그들이 혹시라도 나를 미워할까 봐.

그들이 혹시라도 상처를 받을까 봐.


상담사로 일할 때도

나는 자주 그런 식이었다.


‘시간이 다 됐어요’라는 말을 못 해
상담이 1시간 반씩 길어진 적도 있었고,


나를 감정 쓰레기통 삼은 내담자에게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끙끙거리며 참기만 한 적도 있다.


그렇게 나는 관계 안에서 '을'을 자처했다.

갑보단 을이 더 착한 거니까,

그게 더 좋은 거라며 자위했다.


내가 아닌 그들을 더 배려하며,
정작 나는 점점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나를 희생했고,

나를 지키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나를 지키지 못한 채

유지하는 관계는,

결국 나를 소모시킨다는 것을.


세 명의 상담사들과의 만남들은

나를 속상하게 했지만,
'무작정 이해와 공감' 대신

'건강한 경계'가 더 중요하다는 걸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도와주는 사람일 때도,

도움을 받는 사람일 때도
내 자리를 지키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상담사로서도, 내담자로서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너무 쉽게

친절함을 베풀지 않는다.


상대를 배려하느라 나를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따뜻한 선택이 아닌 걸 아니까.


앞으로 나는,

상담실 안팎 어디에서든

조금은 이기적이게,

먼저 나를 지킬 거다.






*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실제 만난 상담사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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