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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빛 Nov 04. 2021

책임에 대하여

날아오는 샌드위치를 막을 수 있는 용기

사고가 터졌다. 그렇게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사고'라고 부를 일일까 싶은 사소한 실수도 월급을 받는 사람에게는 용납되지 않는다. 클라이언트가 대행사에 일임한 업무 스콥을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한 단 하나의 행동이 모두 사고 혹은 이슈라고 칭해진다.


대행사의 사고 수습 과정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말로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다독인다지만, 클라이언트에 경위서를 제출하고 각 부문의 임원들이 사과의 말을 고개 숙여 전하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 메시지 같이 느껴졌다.


사원 시절에는 다소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저는 메일상으로나 전화상으로나 분명 실수 없이 명확하게 전달했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협력사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그 사과는 우리 회사의 몫이다. 막내가 실수를 저지른다 한들 사과는 팀장과 임원의 몫이다. 결국 모든 것은 책임의 문제다. 성과나 업무 능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나서주고 뒤로는 감싸주는 상사가 진정한 어른으로 보였다. 아, 어른의 필요조건은 책임감이다. 볼수록 그런 답이 나왔다.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로 넘어가는 동안 C사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직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직영점의 매니저들은 나이로는 이십 대 중반이 될까 말까 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대기업과 계약한 정직원으로 너무나 일찍 책임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버린 사람들이었다.


주말 오픈 멤버로 일하던 나는 쇼핑몰 정문이 열리기도 전 카페와 이어진 영화관의 비상구를 통해 새벽 공기를 맞으며 출근을 하곤 했다. 이른 아침 손님들은 대부분 조조영화를 보러 오면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묶어 파는 모닝세트를 찾곤 했다. 그날도 주방에서 갓 만들어낸 샌드위치를 오븐에 살짝 데워 포장하고, 에스프레소 샷을 쉴 새 없이 내리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기분 좋게 세트를 포장해 갔던 손님이 영화관으로 들어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것이 보였다. 잘 포장된 샌드위치가 A 매니저의 얼굴 쪽을 가까스로 빗겨 날아온 건 순식간이었다.


"이렇게 차가운 샌드위치를 먹으라고 준거예요?"

화의 근원은 오픈과 동시에 전원을 켜 첫 손님의 샌드위치가 나갈 동안 예열이 덜 된 오븐이었다. 토끼눈을 하고 쳐다보고 있는 나와 달리, A 매니저는 자연스러운 사과에 이어 바로 다른 샌드위치를 뜨거울 정도로 데워냈다. 여섯 시에 눈을 떠 출근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샌드위치가 조금 덜 데워졌다는 이유로 직원의 면전에 던져져야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지켜본 사람의 마음조차 이토록 상하게 만들었는데, 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 보이는 매니저의 얼굴이 유달리 반짝여 보였다.


직업과 일터를 막론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의 모습은 오랜 기간 마음에 남는다. 지금 내 나이에서 다섯 살은 모자랐던 B 매니저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하던 말이 아직도 떠오른다.  

“여기는 일하는 곳이 아니라 친구들이랑 먹으러 오는 곳이야.”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들어본 중 가장 어른다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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