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생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우리는 정확히 일곱 대의 자전거를 도난당했다. 내가 살았던 곳은 동네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데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작은 도시였고 양끝은 다른 도시로 이어지지 않고 큰 도로와 아직 마을이 생성되지 않은 허허벌판만 있어 외부인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 우리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눈에 뜨일만한 곳이었다. 그런데 무려 일곱 대나 거짓말처럼, 누군가 우리 자전거만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사라졌었다.
일곱 대의 자전거 중 대부분은 동생이 잃어버렸다. 항상 잠깐 세워났는데 없어졌다는 변명을 했다. 나는 분명 아무렇게나 놔두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거나 자기가 어디에 뒀는지도 모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한 두 번은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 하셨는지 엄마는 자전거를 계속 구입해 주셨다. 그런데 계속 자전거 도난(단순 분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이 일어나자 어느 날 엄마는 화가 나 동생과 함께 자전거를 찾아 꽤 오랜 시간을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성과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자전거를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자전거를 계속 사주셨던 이유는 나와 동생이 자전거 타는 것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자전거를 떠올리면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상기된다. 그 당시 나는 내리막길을 거침없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며 스릴을 즐겼고 심지어 계단을 내려오는 묘기까지 도전하며 뿌듯해하기도 했으며 자전거 뒷자리에 친구를 태우고 다니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구 한 명은 모자라 두 명을 태우고 다니는 괴력까지 소유했었다. 그 시절에는 자전거 타기에 대한 안전 교육이 거의 없었기에 나는 매우 과감히 자전거를 탔었다. 그래도 다친 적이 없었던 것은 타고난 운동신경과 행운이 함께 했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무렵 우리 집에 일곱 번째 자전거가 생겼고 그 자전거는 나에게 특별한 자전거 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한동안 나는 자전거와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주말 이른 아침이면 워크맨에 내가 좋아하는 팝송을 녹음한(당시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마음에 드는 팝송이 나올 때마다 녹음을 하여 나만의 팝송앨범을 만들었었다.) 테이프를 넣고 자전거를 타고 호수가 있는 산책로로 향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으며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이른 아침의 공기를 가르며 달리면 복잡한 마음이 어느새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길거리에 자전거를 세우고 반대편에 무엇인가 볼 것이 있어 뒤돌아섰다 다시 뒤돌아섰는데 자전거가 사라진 것이다.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동생이 했던 말이 변명이 아니었다. 내가 당하고 보니 정말 황당하고 화가 나서 며칠을 자전거를 찾아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일곱 번째 자전거가 사라졌고 우리 집의 자전거 도난기도 끝이 났다. 엄마는 더 이상 자전거를 사주지 않으셨다.
지금 우리 집에는 자전거가 세 대있다. 남편의 좀 비싸 보이는 자전거, 첫째 딸의 두 발 자전거, 둘째 아들의 세발자전거. 내 자전거만 없다. 생각하니 좀 서글프다. 헬스장의 자전거 페달을 굴렸던 것도 꽤 오래전이니 자전거를 제대로 타본 게 언제인지 아득하다. 현관문밖에 놓인 날렵한 형태의 남편의 자전거를 볼 때마다 나는 동그란 두 바퀴가 신나게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자전거에 올라타지는 못한다. 지금은 이런저런 핑계가 나와 자전거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만 조만간 사춘기보다 강력한 갱년기가 찾아올 테니 그때 다시 한번 나의 일곱 번째 자전거를 떠올리며 '호텔 캘리포니아'의 리듬에 맞춰 페달을 밟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