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를 애도하는, 사진첩
나의 사물들 - 3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세월>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사진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억에도 없는 자신의 아기 사진부터 무릎에 손녀를 앉히고 찍은 사진까지 작가가 지난 온 긴 세월을 사진을 통해 들여다본다. 그 사진 속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세월>을 읽은 후 나도 나의 사진첩을 펼쳐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많은 사진들이 두 개의 사진첩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첫 번째 사진첩은 부모님이 사진을 찍어 인화하여 정리한 것이고 두 번째 사진첩은 대부분 내가 찍거나 친구들이 찍어서 준 학창 시절의 사진들이 정리된 것이었다. 나는 두 번째 사진첩을 좀 더 흥미롭게 보았는데, 아직 내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는 시절을 사진을 통해 확인하며 그리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거의 나를 만나 지금의 내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과거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몇 가지 큰 사건들만이 스냅사진처럼 순간의 이미지로 각인되었지만 그 기억조차 사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지만 현재는 너무나도 순간이고 미래는 잡히지 않아 공허하지만 과거는 내가 경험한 시간으로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준다. 사람들은 과거가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을 자신이 상실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 집착하고 연연하며 과거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기도 한다. 사람들에게는 과거를 보내기 위한, 과거의 사라짐을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애도의 시간. 그것이 사진이 하는 역할 중 하나이다.
나는 며칠 동안 사진첩을 보며 당시의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떠나보냈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이라는 책도 자신의 과거를 다시 불러내 기억하고 애도하는 작업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업으로 자신의 존재를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진이 사진첩에 있는 사진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사진은 찍기 쉽고 지우기도 쉬워졌으며, 저장도 한계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발달된 기술로 과거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수정하고 지워버린다. 이제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기며 사진 한 장을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그 속에 새겨진 시간들을 불러내 상실감을 애도하고 자신의 존재를 다시 세우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의미 없이 찍히고 지워지는 수많은 사진들에 의해 오히려 상실감만 커질 뿐이다.
나는 세 번째 사진첩을 만들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과거들을 사진첩에 하나씩 담아두고 그 과거들과 천천히 작별한다. 지나가버린 나를 애도한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