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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Sep 29. 2018

자연분만도 다 하는 것이 아니구나

자연분만을 꿈꾸다 유도 분만하고 제왕 절개한 사연

   출산이 임박해 오면서 언제 신호가 올지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긴장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몇 번의 소량의 빨간색 혈액이 나왔고, 아랫배가 알싸하게 아픈 진통이 몇 번 있었다. 진통이 오면 어떻게 아플까, 어느 정도 아파야 병원으로 가야 하나, 집에 혼자 있는데 너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출산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기를 양수가 갑자기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몇 번 속옷이 축축하게 젖은 적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었는데 양수가 조금씩 새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출산까지는 2주나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병원에서는 양수가 계속 줄면 아기가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최대한 엄마 뱃속에서 오래 있다가 나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수준이 아니면 진통이 오는지 며칠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제발 양수야 줄지 마라..

  그 후 며칠 동안 더 이상 양수가 줄지 않기를 바랐지만 다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양수가 전보다 더 줄어 있었다. 의사는 유도분만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진통도 없는 상태고 자궁도 전혀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양수가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39주 2일째 되는 날 유도분만을 위해 입원을 하게 되었다.


  언제 나올지 계속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날짜를 잡고 입원을 하니 마음은 오히려 안정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오늘 우리 예쁜 아기를 만나겠구나. 출산의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유도분만을 진행하기 전에 흔히들 이야기하는 굴욕 3종 세트(제모, 관장, 내진)가 진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굴욕3종세트구나!

  제모는 모낭 미생물에 의한 감염방지 목적으로 시행하는데 현대에는 위생적 시술, 소독약, 항생제가 발달하여 크게 중요성을 갖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감염방지를 위해서는 시행하는 편이 원칙적이고 안전하다고 한다.(인용1) 제모 이유를 알고 나니 그 과정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상황이 어색하기는 했다.  

 

  관장은 태아의 감염 및 폐렴을 방지하기 위해서 실시한다고 한다. 산도와 직장은 얇은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어, 만약 직장에 변이 차있으면 태아가 산도를 통해 내려올 때 직장 내의 변도 함께 밀려 나올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분만 시 힘을 줄 때 대부분의 경우 대변이 배출된다고 한다. 이는 상처에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태아의 폐로 들어가는 경우 치명적인 폐렴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인용2) 지인의 경우 외국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관장을 해주지 않아서 출산 내내 대변이 배출될까 봐 그 걱정만 했다고 했다. 관장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고 많이 불편하지도 않으니 더 굴욕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하는 것이 백번 낫다.


  마지막으로 내진은 자궁경부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진찰자의 손가락 감각으로 자궁경부를 촉진하는 진찰 법이다.(인용3) 내진은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출산이 임박했을 때에는 내진을 해도 했는지 안 했는지 느껴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굴욕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지만 출산에 임박했을 때는 굴욕이라고 느낄 새도 없을뿐더러 그다지 굴욕적이지도 않다.


  유도분만을 위해 자궁을 수축시키는 옥시토신이 투여가 시작되면서 수시로 간호사들이 진통이 발생하는지 체크하기 시작했다. 유도분만을 시작하게 되면 길게 잡아도 반나절 이후 출산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반나절이 지나도록 진통도 안 느껴지고 너무나도 평안했다. 간호사도 의사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계속 약물을 투여할 수 없기 때문에 좀 쉬었다가 다시 한번 시도하기로 하였다. 이러다 자연분만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반대로 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출산의 고통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차라리 제왕절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연분만이 아기에게 좋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고 출산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고통을 느껴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 번째 유도분만을 시도했지만 나의 의식이 몸을 지배하는 것인지 이번에도 전혀 진통이 오지 않았다. 결국 의사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제왕절개를 권유했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유도분만으로 아플 것은 다 아프고 제왕절개를 하는 것이라는데 난 최악의 상황은 다행히 면했다. 긍정적인 마인드다. 하하


유도분만 실패로 제왕절개를 하게되다니...


  제왕절개를 할 때 마취에 관해 두 가지 선택 사항이 주어진다. 하나는 처음부터 수술 종료까지 완전 수면마취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출산까지는 하반신 수면마취를 하고 아기가 나오면 아기를 확인한 후 수술 종료까지 다시 완전 수면마취를 하는 것이다. 나는 아기의 탄생 순간을 확인할 수 있는 후자를 선택했다. 막상 수술실에 누워있으니 차가운 수술실에서 태어날 아기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놀랄까... 엄마 뱃속에서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서 유도분만을 해도 꿈쩍하지 않는 아기인데 갑자기 끄집어내니 말이다.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조금 뒤 사람들이 내 배를 마구 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아기를 보여주는데 커다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아기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정말 첫눈에 반해버렸다.


뱃속에 있을 때 제대로 얼굴 한 번 안 보여 줬는데 드디어 너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됐구나! 생각보다 너무나도 작은 아기였다. 그 순간 저 작은 아기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감동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나는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난 모습에 안도하며 수면 상태로 들어갔다.

  당연히 자연분만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했던 10개월이 물거품이 되었지만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임신/출산이란 건 예상대로 진행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아무튼 난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는 출산의 순간이 고통 없이 아주 편안하게 지나갔다.


  물론 제왕절개는 수술 후가 아프긴 하다. 하지만 수술 다음 날이면 일어서서 걸을 수가 있다. 누워있을 때는 전혀 아프지 않지만 앉고, 서고, 걷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힘들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식은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힘든 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약 1주일 정도는 누운 자세에서 배로 일어날 수 없어 옆으로 구르듯이 일어나야 한다. 참, 수술 후 3일 정도 지나면 발이 코끼리 발처럼 부으니 너무 놀라지 마시길! (그런데 수술 후 종아리 부분을 조여주는 레깅스를 착용하면 붓기를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내발이냐, 코끼리 발이냐

   


[인용1,2,3] 양쥬 공식 블로그 맘 앤 대디 정보 2016. 12. 28자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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