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거주 10년차의 무지호텔 베이징 경험기
베이징에서 10년 간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지 2년 정도 되었을 무렵
회사에 입사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가, 사회인이 되었다는게 아직은 설레고 낯선 시기에, 나는 마치 귀향하는 느낌으로 베이징 티켓을 끊었다.
겨울이 끝나고 날이 따뜻해지던 4월
같이 입사한 동기들과 회사 선배들 모두 휴양지로 너도나도 해외여행을 계획하던 그 때,
나는 관광지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베이징에서의 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베이징으로 휴가를 떠난다고 하면 모두가 약간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주디는 휴가 계획 있어요?”
“저 베이징으로 떠나요!”
“베이징이요? 중국 베이징? 거기서 뭐해요?”
나에게는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라 항상 그리운 곳이지만,
다른 한국인들에게는 직장인 해외여행지로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런 곳일테지.
하지만, 의아한 그들의 표정을 바꿀 수 있는 대답이 있다.
“새로 생긴 무지호텔 가보고 싶어서요!”
“오! 베이징에 무지호텔이 있어요? 다녀오면 후기 들려줘요!”
업계가 업계인만큼 모두가 새로운 호텔이나 리조트에 대한 관심이 많아,
나의 귀향(?) 여행은 의도치 않게 신입사원의 열정 가득 벤치마킹 여행으로 받아 들여졌다.
실제로는 관광도, 벤치마킹도 아닌 그저 대학교 캠퍼스에서 전기스쿠터 타면서 산책하고,
매일 야식으로 먹던 마라탕과 미씨엔을 먹고 싶어서 가는 터라
4박 5일 중 2박은 학교 숙소와 붙어있는 호텔에서 지내지만, 그럼에도 1박은 무지호텔에서 꼭 지내보고 싶었다.
인트로가 길었으니 거두절미하고 무지호텔에 대해 적어보자면,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의 리빙브랜드, 무인양품에서 만든 호텔이다.
패션이나 리빙 브랜드에서 브랜드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는 호텔을 만드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선택이다.
하지만, 일본의 무인양품 브랜드가 무지호텔 1호점을 중국에 런칭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것도 글로벌 호텔들이 너도나도 화려함으로 치장한 격전지인 중국에 말이다.
무인양품 회장의 인터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호텔을 생각했어요.
중국 출장을 갈 때마다 지나치게 넓은 방에 묵었는데,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직원에게 좀 더 작은 방은 없느냐고 물었지만, 그런 방은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죠.
방이 넓고 고급스러워 부담스럽거나, 면적이 마음에 들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뿐이었어요.
적당하고 담백한 호텔을 떠올리게 됐죠.”
— 무인양품 회장 가나이 마사아키
너도나도 화려한 호텔뿐에서 무인양품 회장은 담백한 호텔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2018년, 1월 중국 션전(심천)에 성공적으로 오픈한 무지호텔은
같은 해 6월에 베이징 중심에 2호점을 오픈했다.
먼저 관광객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위치를 말하자면,
무지호텔 베이징은 베이징 중심인 천안문 광장 근처에 위치해있다.
자세히 말하자면 Beijing Fun 이라는 큰 종합 쇼핑몰 내에 위치해있고
바로 옆에 대책란/따스란 (大栅栏) 라고 불리는 관광명소가 있다.
또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지하철역 치엔먼(前门) 이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는 위치 상으로 아주 좋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호텔과 마찬가지로 로비와 카운터가 반겨준다.
1층 로비는 조용하고 폐쇠적인 분위기를 내는 고급 호텔들과 달리,
오른쪽에는 북라운지, 왼쪽에는 카페겸 식당이 입구 없이 넓게 트여있어 오픈스페이스 느낌을 준다.
이 때문에 첫 인상은 모던한 무지의 이미지에 약간의 활기가 더해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호텔 라운지 속 책은 데코에 불과하지만 이 곳의 북라운지는실제로 많은 양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그 앞 긴 테이블 위에는 작은 예술 전시 같은 것을 진행하는 모양이다.
간략한 설명과 함께 중국 전통 느낌이 물씬 나는 공예품들이 예쁘게 놓여있다.
귀여운 공예품들에 정신이 팔려 사진을 꽤나 찍어댔다.
사실 사진으로 미리 접했을 때 이 북라운지를 제일 기대했었는데
관광객도 꽤나 있고, 차분한 무인양품 분위기 속에서 북라운지를 즐기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였다.
차라리 높은 층에 만들어 투숙객들만 조용히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체크인 데스크 바로 옆 엘레베이터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들어서면
기대했던 차분하고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메인 로비쪽은 오픈스페이스로 활기차고 누구나 이용 가능한 그런 분위기였다면,
투숙객 전용 라운지처럼 보이는 이 공간은, 한 켠에 무인양품 음료와 간식들로 채워진 자판기가 있어 체크인이 길어질 경우 대기하면서 음료나 간식을 먹기에도 좋아 보였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쇼룸을 방불케하는 아늑한 비즈니스룸도 마련되어 있다.
린넨 소재의 하늘하늘한 커튼과 무게감 있어 보이는 원목 테이블, 그리고 PC와 인쇄기 사소한 부분까지도 무인양품의 감성을 놓치지 않고 녹여냈다.
동그란 조명이 참 귀여운 작은 회의실은 비즈니스 투숙객이 아니어도 한번쯤은 들어가 업무를 보고 싶어지는 곳이다.
어느 호텔에서 비즈니스룸에 이렇게 공을 들일까?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인 복도가 나온다.
하고 많은 공간들 중 복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활기차고 오픈된 분위기의 로비와 달리 조용하고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인 객실로 이어지는 부분이자 무인양품의 색깔이 가장 잘 들어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복도는 로비와 다르게 세상 고요하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나의 발소리와 캐리어 끄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는데, 지금껏 밟아봤던 것들 중 가장 두껍고 푹신했던 카펫 때문인 것 같다.
복도의 카펫이 꽤나 두껍고 푹신해서 여행지 호텔에서 종종 거슬리는 부분인 캐리어 끄는 소리, 발소리를 줄여준다.
복도는 흔히 간과하기 쉽지만, 무지호텔은 복도의 분위기와 방음 부분까지 아주 세심하게 신경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완전한 쉼이라는 가치를 전하기 위해 무지호텔의 이 복도에 얼만큼 공을 들였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무의 결이 느껴지는 복도의 벽과 문들도 따뜻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내는 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객실로 가는 복도 한켠에는 독특한 공간이 있는데
지하의 무인양품 리테일 매장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부분이 보이도록 모든 층의 복도를 터 놓았다.
덕분에 복도는 조용하면서도 답답한 느낌이 없었고,
높은 벽이 전부 무인양품의 제품들로 가득 차 있어 멋진 인테리어 효과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복도 중간에 작지만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세탁실이 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리미와 세제 유연제 등 필요한 것들이 다 구비되어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작은 쇼파도 있어서 투숙객의 동선과 경험을 위해 이런 작은 공간에도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원목 질감이 살아있는 객실 문이 객실로 들어서기 전 그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깔끔하고 단정한 베딩이 아늑한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호텔 객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베딩이다.
객실에 들어설 때 가장 처음 보여지는, 객실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베딩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져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실망부터 하게 된다.
무지호텔 베딩은 과하지 않고 단정한 느낌을 주는데, 특히나 바스락거리는 소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함께 간 남자친구는 바로 밑 무인양품 매장에서 베개를 구매했다.
이 것이야 말로 무인양품이 원하는 브랜드 경험의 확장과 매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아닐까? 싶었던 순간
B Type 객실의 특징은 길고 얇은 구조인데, 이 부분이 약간 불편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좁은 객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니 불만족스럽진 않았다.
복도 오른쪽에는 건식 세면대가 나와있고, 맞은 편에는 화장실이 아주 작게 들어서있다.
화장실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딱 이만큼이 전부다.
변기 맞은 편에 샤워부스가 있는데, 크기 자체는 정말 좁긴 했지만
샤워부스와 샤워기, 어메니티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샤워기 수압이 지금까지 본 것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는데, 강도가 세지만 부드럽게 딱 좋은? 느낌이였다.
가끔 수압이 너무 세서 조절하기 힘들거나 아픈 샤워기가 있는데 내 몸에 맞춘 것처럼 완벽한 샤워기랄까…
어매니티도 물론 모두 무인양품 제품들로 이뤄져있는데 향기가 너무 좋았다.
면적이 작은데도 어매니티, 샤워기, 대리석 색감 모든 것이 어우러져 꼭 동남아 휴양지에서 샤워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매니티 뿐 아니라 객실 내 모든 것들이 전부 무인양품 제품들로 이루어져있다.
무인양품의 베스트셀러인 CD플레이어, 냉장고 안에 있는 음료, 침구, 커트러리까지 모두 무인양품 제품이다.
특히 CD플레이어는 조용하고 아늑한 객실과 환상의 조합이었는데, CD 음악은 랜덤으로 선정된다고 한다.
원하면 프런트에서 다른 음악 CD로 바꿀 수 있다고 들었다.
가습기 겸 무드등도 프런트에서 오일 제품을 추가로 받아서 사용해볼 수도 있다.
객실 내 무인양품 제품들을 하나씩 사용해보는 즐거움이 있었고,
이런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지호텔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객실은 좁은 면적이긴 하지만 공간을 아주 잘 활용해서 답답하기 보다는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큰 창과 전체적으로 화이트톤과 우드톤의 간결한 인테리어 덕분인 것 같다.
객실 외에도 복도와, 리테일, 공용공간, 레스토랑 모두가 무인양품이라는 하나의 컨셉 아래 잘 연결되어 굉장히 조화롭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 하나 눈에 띄거나 컨셉에 어긋난다는 느낌이 없었다.
다음날 조식을 먹었던 레스토랑 이름은 MUJI Diner,
인테리어, 분위기와 메뉴구성, 서비스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건물 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테라스가 환히 보이는 통창으로 되어 있어 개방감이 있으면서도 모던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테라스에서는 천안문 광장이 보이는데, 천안문이 보이는 곳이 생각보다 잘 없어서 관광객들에게는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내가 방문한 날은 바람이 꽤 불어 테라스에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날씨가 좋은날 방문한다면 테라스에 오래 머물며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이 곳은 아침에는 조식 레스토랑으로, 그 외에는 일반 레스토랑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조식 메뉴는 조금은 특이하게도 일식과 중식 2가지를 제공한다.
완전 뷔페식은 아니고, 세미뷔페로 마련된 코너에서 샐러드, 과일, 간단한 디저트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일식과 중식 중 하나를 골라 정식으로 즐길 수 있다.
세미뷔페와 알라카르테를 모두 제공하는 이런 방식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일식과 중식을 둘 다 맛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일식이 더 나았다.
혹시 중식 아침을 맛 보고 싶다면 아침 일찍 거리로 나가보기를 권한다.
거리 곳곳에 이동식 점포를 만날 수 있는데, 중국인들은 보통 만두, 요우티아오나 요우빙, 찌엔빙 등을 아침으로 주로 먹는다.
만두는 찐만두와 훈뚠이라고 불리는 만두국이 있고,
요우티아오나 요우빙은 밀가루를 기름에 튀긴 음식으로 또우지앙으로 불리는 콩국물과 함께 곁들여 먹는다.
찌엔빙은 얇은 반죽에 바삭한 튀김과 계란을 넣어 먹는 음식으로 다양한 토핑을 추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학교 기숙사 근처에서 먹던 찌엔빙이 먹고 싶어 베이징행을 결심한 것도 있는데,
찌엔빙 맛은 요리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서 매일 다른 곳에서 먹어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보기를 추천!
어쨌든 조식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니 비로소 고대했던 무지호텔에서의 완벽한 숙박경험이 끝이 났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숙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주머니가 여의치 않던 대학생때도 여행할 때 숙소는 정말 고심해서 골랐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예산에서 가장 좋은, 가장 매력적인 숙소를 고르고 싶어서 일주일 넘게 숙소만 고르곤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무지호텔 베이징은 기대했던 것 만큼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무지호텔은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와 색깔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총체적인 브랜드 경험 공간이자,
호텔이라는 본질적인 가치에도 충실한 곳으로 내게는 너무나 마음에 쏙 드는 곳이다.
일반적인 호텔들과 달리 OTA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없고, 홈페이지에서만 예약이 가능한데 시즌/요일에 관계없이 동일한 가격인 것도 큰 장점이다.
시즌, 하물며 평일과 주말 간 가격 차도 심한 호텔 업계에서 홈페이지 예약과 정찰제를 고수하는 무지호텔의 행보가 매우 뚝심 있어 보인다.
평소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양질의 제품 퀄리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브랜드 가치가 명확한 무인양품을 브랜드의 좋은 한 사례로 생각했지,
실제 고객으로서 무인양품을 소비해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무지호텔을 통해 브랜드 자체와 제품, 그들의 행보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온갖 글로벌 호텔, 리조트 브랜드들이 저마다 가장 화려하게 치장하는 곳이 중국에서, 편안하고 미니멀한 느낌을 주는 스테이를 원한다면, 무지호텔은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