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에서 굴러온 큰 돌

by 민매미


"저기 산에서 큰 돌이 굴러왔는데,

네 발등 위에 떨어져서 온 거야."


완연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영문을 모르고 서울대병원 침대에 눕게 된 내가 들었던 말이었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어느 기억에도 없는 '산에서 굴러온 큰 돌'. 이게 바로 내가 병원에 오게 된 이유였다.

대체 언제 그 돌이 머리 위로 떨어졌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리 곱씹어도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그렇다 하니 그저 수긍할 뿐.


따뜻한 친절 속에 냉랭한 기운이 퍼지는 다인실 병동에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생각보다 인내심이 좋았다. 두꺼운 링거 바늘이 유약한 손등을 뚫었을 때, 마치 투우 경기장에 내던져진 어린 황소가 생각났지만 끝끝내 눈물을 보이진 않았다. 그저 "우리 딸, 잘 참네!"라는 응원은 나를 수술대까지 오르게 하는 힘이 됐다.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수술 부위가 잘 제거되었다는 의사의 말에 부모님 얼굴엔 오랜만에 활기가 돋았다. 반면에 '나는 왜 수술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제거되지 않아 퍽 답답했다. 부모님은 그 답답함을 병원생활에 대한 갑갑함이라 여겼고, 만화책 한 권에 잡념들은 사라졌다.

난생처음 통깁스 한 오른쪽 다리는 무쇠다리 마징가 Z 만큼 강했다. 이 무쇠다리만 있다면 뭔들 두렵지 않았고, 무게감 있는 다리를 쿵쿵 내딛을 때마다 거인이 된 듯했다.


대신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었다.

'발가락 끝이 땅에 닿으면 안 된다'는 것.


한 달 내내 발꿈치만 사용한 덕에 발꿈치 쪽 석고가 잔뜩 으깨져 AS가 시급했지만, 그 다리로 무더위를 이겨낸 끝에 무사히 깁스를 풀고 어느덧 콧등 서늘한 계절을 맞았다.




그날은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난 추석명절이었다.

기껏해야 어른들이 부쳐놓은 전들을 야금야금 받아먹는 것이 전부였던 나를 누군가 툭툭 치며 조용히 어느 방으로 불렀다.

약속이라도 한 듯 친척 어른 세 명이 일제히 그 방에 모였다. 잠시동안은 서로 눈치만 힐끗 보더니, 누군가 참을 수 없었는지 한마디로 정적을 깼다.


"너, 양말 좀 벗어볼래?"


순간, 입안을 채우고 있던 전들이 돌처럼 빠득빠득 씹힌다. 말 한마디에 웃음기는 사라지고 그저 엄마의 목소리만 쟁쟁히 울려댈 뿐이었다.


"양말 잘 챙겨 신고, 사람들 앞에선 절대 벗지 마."

외출할 때면 엄마로부터 숱하게 들었던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요동쳤다.


제 스스로 양말을 벗길 바라며 기다리는 시선들과 눈이 마주쳤다. 기다림의 시선이 그토록 잔인하고 매정할 수가 있을까. 7살 인생이 마주하기엔 너무나 공포스러운 대화의 시작. 엄격한 집에선 배울 수 없었던 '대화의 거절 방법'은 이때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예기치 못한 당혹함 속에 양말을 내 손으로 벗을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 내 오른쪽 양말을 확 벗겨버렸다.


- 와, 정말 신기하네!

- 진짜 감쪽같다! 수술이 참 잘 됐어.

- 이제 발가락 다섯 개야!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탐험가들 마냥, 요리조리 내 발가락을 들여다보는 시선들. 참으로, 꽤 따가웠다. 발가락이 다섯 개인 것이 이렇게도 신기한 일이던가.


그때, 그제야 잃어버린 모든 기억이 물밀듯 떠올랐다.

산에서 굴러온 돌이 내 발등 위에 떨어지기 전 기억이.




엄마 뱃속에서 나고 자라 숫자를 셀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내 몸에 붙어있는 것들부터 하나 둘 세어본 기억이 난다.

눈이 두 개, 코가 하나, 입도 하나다. 귀는 두 개, 손가락은 열 개다. 그러다 발가락들을 세어봤다. 왼쪽과 오른쪽 발가락들을 번갈아 세어보는데, 양쪽이 묘하게 다르다.


오른쪽 새끼발가락의 왼쪽 편 중간쯤 볼록 자라난 또 다른 발가락의 존재. 발톱이 붙어있으니 필시 발가락이 분명한데, 여느 나무의 나뭇가지 형상을 한 새끼발가락이었다.

아, 특이하게도 오른쪽 새끼발가락만 이렇다. 왼쪽은 보통 사람들처럼 다섯 개의 형상 그대로였다.

나 역시 오른발을 볼 때마다 신기하여서 그 보너스 발가락을 콕콕 한 번씩 눌러보곤 했다. 그러다 이게 왜 이런지 궁금해질 때면 엄마아빠 입에서 그 이유를 들어야 했을 거다.


애당초 처음부터 그 이유는 아니었겠지. 정말 저 산에서 돌이 굴러 떨어져서 우리 집에 그 돌이 데구르르 들어와서 하필이면 내 오른발을 짓이겼기 때문에 발가락이 삐용! 하고 생겨난 것은 아니었을 거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어린아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고자 노력에 노력을 했을지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다. 적당한 이유를 찾기 전에는 뼈를 깎는듯한 눈물을 수차례 흘렸을 거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다 갖고 있는 손가락, 발가락 10개가 내심 부러웠을 거고, 아무도 알지 않길 바라고 바라는 소중한 내 자식의 비밀이었겠지.

무엇보다 자신이 다지증(多指症)으로 태어난 것을 알고서 그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매우 걱정했을 것이다. 수많은 밤들을 이 어린것이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부모님은 자책하는 눈물로 베갯잇을 적셔왔을 거다.


어느 단어에서 파생되어 생긴 신종어처럼 생긴 나뭇가지 발가락. 생긴 건 좀 그랬어도 나름 신경세포들이 그 안에까지 자리 잡고 있었는지, 색도화지를 자르다 서툰 가위질로 그 나뭇가지 발가락을 찔렀을 때 철철 피가 났던 어렴풋한 기억이 난다. 비록 발가락 크기는 작아도 피가 나오기에 충분한 아픔이었다.

그런데 그 아픈 기억을 애써 들춰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대화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를 어쩐담. 호기심만 그득한 대화는 누군가에게 평생 생채기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나 했을까. 인생 첫 번째로 맞게 된 무례한 대화에서 어린 나는 적당한 답을 못했고, 한참 동안 원망의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그 일이 있은 후, 엄마는 친척들에게 무지 화가 났었다. 다만 시댁 식구들이라 뭐라 말도 못 하고 그 상황에 자식을 보호하지 못한 것에 화가 잔뜩 난 채 스스로 가슴팍을 여러 번 쳤을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엄마에게 양말을 꼭 챙겨 신으라는 잔소리를 성인이 될 때까지 들어야 했고, 무더운 여름에 샌들을 신을 때면 그때 그 일이 자주 생각나곤 했다.


엄마는 그 나뭇가지 발가락을 수술로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두 다리를 뻗고 잤을 것이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자책감을 조금 털어내고 나서야 한결 마음이 편해졌을 거다. 수술이 잘 됐으니 이제는 더 걱정할 일 없고, 사라진 발가락으로 벌어져 있는 틈만 짱짱한 양말로 잘 메꾸고 정상적인 발처럼 자리를 잡으면 된다고 안심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엄마가 더 큰 아픔을 느꼈을 그 발가락.

이따금 그 발가락이 있었던 자리가 아려온다.




"넌 좀 이상한 애인 것 같아."

이상하게 나는 이 말이 참 듣기 좋았다.


오른쪽 발가락이 여섯 개로 태어난 내가

왠지 모르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로 느껴져서.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별안간 굴러들어 온 돌처럼,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

인생이 훌훌 잘 구르고 굴러가서

결국 어디엔가 터를 잘 잡을 것만 같아서.


저 산에서 굴러온 큰 돌은

어쩜 내 발등 위에 딱 떨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