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불꽃놀이를 해본 적 있나요

by 민매미

그날은 새벽 일찍부터 엄마와 외할머니가 겨울에 덮을 솜이불을 트고 있었다. 괜찮다 하는데도 자식손주가 따습길 바라며 좋은 솜을 멀리서 이고 지고 외조부모님의 정성. 이불을 덮기 전부터 느껴지는 온기 덕분에 가을 공기는 제법 훈훈했다. 그렇게 가내수공업 현장의 생생함이 사그라져 갈 무렵, 외할아버지가 동공이 커질만한 제안을 나에게 했다.


"흰머리 1개에 100원"


이제 막 돈에 대한 개념이 생겨나던 7살 아이 눈동자에 무수한 동전들이 눈앞에 굴러다닌다. 한편엔 문구점에서 만지작거렸던 비싼 필통도 아른거렸다. 그 좋은 제안을 놓칠 순 없었고, 그렇게 나의 자발적 생계활동은 시작되었다.


모녀가 한땀 한땀 솜이불 바느질을 할 때,

손녀는 한올 한올 할부지 흰머리를 뽑아간다.


할아버지 머리카락들을 휘이 저어 본다. 바람이 들판을 가로지르듯 빠르게 스쳤다 멈췄다를 반복하면서.. 흰머리들은 족집게로 잡히는 족족 쏙쏙 뽑혀 한 칸의 휴지조각 위에 차분차분 올려졌다.


100원.. 700원... 2,400원....

점점 쌓여가는 결실에 나의 기쁨은 배가 되고, 머릿속으론 그 필통은 이미 내 것이 되었다.

점점 흰머리보다 검정머리가 많아져가는 외할아버지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얼추 한 시간은 꼬박 흘렀을 거다. 남들보다 1년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집중력은 이제 바닥이 났다. 할아버지 흰머리 뽑다가 되려 내가 노인이 된 형국이다. 눈도 침침, 목도 뻐근, 엄지와 검지도 얼얼해져서는 언제부턴가 일절 대화도 없이 기계적으로 흰머리를 뽑아와서일까.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순간 지루함이 솟구쳐 마음을 가다듬으려 기지개를 켜는데, 어느 두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건 바로 안방 벽의 콘센트.

여기에 족집게를 넣으면 모양이 딱 맞겠는데?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엔 광기만이 흐를 뿐. 판단력이 흐려진 팔이 먼저 뻗쳐 나간다. 프로 농구선수가 덩크슛을 넣는 순간처럼 그 누구도 방어할 재간이 없다. 탄력 받은 손목의 스냅은 족집게를 콘센트에 그대로 내리꽂는다.


골~~인!!!


그때부터는 모든 순간이 아주 천천히, 천천히 흘러갔다. 골대에 슛을 넣는 순간, 집안의 모든 불빛은 꺼지고 안방 콘센트에서는 조금씩 불꽃이 새어 나왔다. 처음엔 피식- 하고 새어 나오더니, 곧바로 밤바다에 쏘아 올린 폭죽들처럼 큰 소리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불꽃들이 뿜어져 나왔다. 어느샌가 불꽃 덩어리는 확 커져버렸고, 불 꽃다발이 안방을 뒤덮었다.


탄다. 뻥뻥 구멍이 뚫리고 타고 있다. 불 꽃다발에서 나온 작은 불덩이는 애지중지 바느질한 솜이불 위로 하나둘씩 떨어지더니 여러 방울이 되어 빗물처럼 떨어졌다. 비단을 씌워 바느질한 고귀한 솜이불에 불꽃 구멍이 송송 뚫린다. 하- 어떻게 보면 콘센트가 내뿜는 침 같기도 하고.. 나는 그 광경이 너무나도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무지 원천을 알 수 없는 승리의 기쁨도 존재했다. 인간이 불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첫 마음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안방에서 펼쳐진 불꽃놀이는

그 어느 불꽃놀이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러한 나와는 달리, 안방 불꽃놀이를 함께 목격한 이들은 너무 놀라 턱이 빠진 상태였다. 콘센트 앞에서 화려한 불꽃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의 몸뚱이를 외할아버지가 발로 확 밀어뜨렸다. 넋을 놓은 채로 불꽃놀이를 감상하는 나를 붙잡고 엄마는 때리기도 했다가, 얼싸안았다가, 매만지기도 하면서 연신 감사를 외쳤다.


누군가는 정신을 차리고 수습을 해야 했다. 이런 일은 도무지 처음 있는 일이라 다들 경험이 없었다. 불 앞에 무기력한 사람들처럼 일단은 콘센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든 불꽃이 사라지길 간절히 기다렸다. 다행히 불꽃은 멈췄고,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안방 전등을 다시 켤 수 있었다.

그다음이 하이라이트 명장면이었는데, 외할아버지는 휴지 한 장을 가져와 콘센트에 꽂혀있는 족집게 위를 가만히 덮었다. 죽어버린 불꽃을 추모하는 것처럼. 그리고선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더니 오른손으로 툭! 하고 족집게 위를 건드렸다.

아, 다행히 괜찮다. 전기가 통하는 느낌은 없었다. 이번엔 더 큰 용기를 내어본다. 날렵한 박자감으로 오른손을 크게 뻗어 순간의 힘으로 족집게를 확! 하고 뽑아냈다. 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연륜의 겁 없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 존경하는 외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구나!

난 생각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서 하늘이 살려둔 것이라고. 전기가 몸을 타고 흐르기도 전에 덩크슛을 하고 손을 바로 빼버린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뒤늦게 솜이불들을 피신시키고선 내 입에 뭔가를 넣어줬다. 음- 생각보다 맛있잖아, 청심환.




이번 불꽃놀이 축제엔 100만 명이 모였단 소식을 보며 그날을 떠올린다. 어느 날은 다이소에 갔더니 있더라. 나 같은 천방지축을 위한 콘센트 덮개가.


아직도 정신이 나간 건지 웃음이 불꽃처럼 새어 나오는데, 다행히 양심은 존재하여 반성과 미안한 마음도 여전하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나의 안방 불꽃놀이 덕분에 우리 가족은 겨울마다 솜이불에 찍힌 작은 불꽃 구멍을 매만지며 그때를 추억했다. 마침 그때 그 불꽃들이 핀 솜이불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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