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흉가

by 민매미

우리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일은 없었다. 집이 창피해서는 아니었고, 엄마가 우리 식구 외에 누구도 집에 오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행여나 친구를 집에 데려와도 되는지 물으면 바로 눈을 흘기는 엄마 표정만 봐도 그럴 맘이 싹 가셨다.


엄마의 일상은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여는 것부터 시작됐다. 밤새 집안을 가득 채운 지독한 술 냄새를 빼고, 매일 똑같은 해장국을 끓여다 아빠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허구한 날 돈 없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빠는 대체 어디서 난 돈인지 밤새 술을 퍼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집에 오면 제발 바로 잠이 들면 좋겠는데 코가 비뚤어진 술꾼은 허투루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밤새 우리를 붙들고 신세한탄을 하거나, 이젠 죽고 싶으니 집에 불을 내고 다 같이 죽자며 화를 내거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거나, 오래전 섭섭했던 얘길 다시 끄집어내 달달 볶거나. 뭐가 됐든 이 중 하나를 해야만 그날이 끝이 났다.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울 수 있을까.


IMF의 풍파에서 살아남지 못한 우리 집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됐다. 수행비서를 고용할 정도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던 아빠의 건설회사는 거래처 수금이 막혀 폐업이라는 직격탄을 맞았고, 개인신용마저 정지됐다는 법원 우편물이 하나둘씩 날아왔다.

결국 패전을 알리는 법원의 빨간색 압류 딱지들이 여기저기 세간살이에 붙게었고, 자동차까지 압류를 당한 아빠는 큰 실연을 겪은 사람처럼 술독에 빠져 허우적댔다.


문제는 집안 공기였다. 우리 집 공기는 흉가처럼 싸했다.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질식할 것 같은 찌든 술냄새는 회생불가였다. 종일 백색소음처럼 틀어놓은 안방 TV소리는 귀신소리처럼 스산했고, 신발을 벗을 때마다 코 끝을 스치는 미움과 원망의 냉기가 두 눈을 질끈 감게 했다. 아, 오늘도 이 숨 막히는 공기를 견뎌내야 한다니. 빨간 종이 하나가 가져다준 삶의 무게가 이토록 잔인하게 무거울 수 있는지 그저 암담할 뿐이었다.


혼재된 생각들이 만들어 낸 공기는 사람 사는 흉가 같았다.


사람은 살지만 사람의 생기가 전혀 없는 집. 화분마저 숨 막히는 공기에 말라비틀어져 버리는 흉가 같았기에 누구도 집에 데려올 수 없었고,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던 것이다.


그 무거운 종이 한 장은 나의 소중한 고동색 업라이트 피아노에도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세 살 때부터 쳤던 낡은 피아노인데 그것도 돈이 되었던 건지 피아노 왼쪽 하단에 빨간딱지를 붙여놓았다. 개인적으로 그때가 제일 충격이 컸는데, 압류 딱지가 붙으면 아예 건들지도 말아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건반 뚜껑을 열어 볼 생각조차 못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우리가 살고있는 건물 전체를 관리하던 집주인이 지하에 피아노 학원도 운영하고 있어서 피아노 연주소리를 집에서도 종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피아노 학원 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보니 광나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와 집주인 원장님, 예술고 지망생이 레슨을 받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문 밖에서 그 연주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눌러보는 건반들의 빠른 움직임. 내 손으로 직접 연주할 순 없어도 건반소리를 들으면 연주자의 감정, 섬세한 기교, 떨리는 호흡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심장을 진동시켰다. 그 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흘러나와 내 방에까지 들리는 날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죽여 연주를 감상하곤 했다.

가난이 창피하진 않았다. 배고픈 날이 더러 있었지만 불편하지 않았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일찍 철든 탓에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고, 누구든 살다 보면 가난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 일 마음먹기에 달렸고, 힘을 내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긍정회로를 무한반복 돌리면서.


언젠가부터는 빨간딱지를 보는 일이 아침 해를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원래부터 빨간딱지가 붙어있던 걸 샀나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자줏빛 빨간딱지를 매만지며 색지가 참 예쁘다고, 빚을 다 갚으면 금방 떼어내면 될 일이라고 위로했다.


그래도 전혀 위로되지 않는 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유명 피아니스트는 아니어도 전공자는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기에.

그렇지만 우린 너무 가난했고, 그저 월세가 밀려도 참을성 좋은 집주인 덕에, 여태 이 집에서 다른 이의 연주소리라도 들으며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신기루 같은 꿈을 붙잡고 극심한 갈증으로 꿈속을 헤매는 날들이 많아졌다. 살아있어도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의 상실에 사로잡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