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스포츠란 (1)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 류현진, 강정호, 이상화, 장미란······. 이름만 들어도 어떤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인지 알 수 있는, 세계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뛰었던 선수들이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새기고 국제대회에 나가 엄청난 성적을 내어우리를 자랑스럽게 한 이 선수들은 어떻게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재능 덕분이었을까 우리나라의 선수 육성 시스템 덕분이었을까.
모든 선수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서 매일 피나는 노력을 한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말이지만 그들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피땀을 흘려가면서 세계 정상에 서기 위해 노력한다.
7살의 나이에 처음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하여 12살 때 처음으로 국제대회 노비스 부문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하고 14살 때 최연소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김연아라는 어린 피겨 스케이트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후에 주니어는 물론 시니어 대회에서도 대한민국 최초로 우승을 했다. 피겨스케이트는 그저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들이 하는 스포츠로 여겼던 우리나라에서 재능 있는 선수가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선수의 훈련 스케줄은 선수로써 대우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루에 한 곳에서만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빙상장을 옮겨 다니면서 훈련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에는 태릉선수촌을 제외하고 선수만을 위한 빙상장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빙상장에 있는 시간에는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은 빙상장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는 시간을 피한 새벽이나 밤늦게에만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만 개방되는 태릉선수촌의 피겨 전용 빙상장은 발암물질이 나오고 물이 새는 등의 잦은 보수공사를 하였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는 종합 스케이트장에서 훈련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선수를 위한 빙상장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난방의 기능이 하나도 갖추어 있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모든 빙상장에 난방기능이 없고, 선수들은 몸이 풀리지 않은 새벽이나 밤에 주로 훈련을 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얼음판에 착지하고 넘어질 때마다 몸에 작용하는 충격은 배가 되고 이는 잦은 부상으로 이어지게 했다.
훈련할 빙상장이 부족하여 롯데월드 아이스링크나 태릉선수촌 종합 링크장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채로 훈련을 할 때면 항상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선수들에게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식의 외침은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또한 연맹에서든 기업에서든 선수에 대한 후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선수를 보호해야 할 빙상연맹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으며 개인종목이라는 종목의 특성상 훈련이 나 경기 일정 등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게 하였다. 후에 많은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김연아 선수는 해외의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하게 되었다. 좋은 훈련 환경 속에서 김연아 선수는 그랑프리 시리즈, 세계선수권 우승을 하였고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이에 따라 김연아 선수는 국내에서 훈련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을 후원해주기 시작하였고, 꿈나무 선수들을 위해 선수 전용 훈련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 개선만 있었을 뿐 국내의 훈련 환경은 예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에 반해 어린 시절부터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이라 불렸던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는 나라는 물론이고 많은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선수로서의 온전한 대우를 받아왔다. 아사다 마오만을 위한 개인 빙상장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는 선수들만을 위한 빙상장도 많이 제공하였다. 또한 선수들을 위해서 대부분의 빙상장은 난방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빙상장뿐만이 아닌 체력훈련을 위한 시설도 따로 마련해 주었다. 다수의 좋은 훈련장의 제공 덕분에 이 선수에게서 부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밤이나 새벽에 훈련을 하는 피곤한 일정도 있을 리가 없었다.
같은 빙상 종목임에도 개인으로서 훈련하는 피겨선수들과 달리 팀으로서 단체로 훈련을 받는 쇼트트랙의 예를 들어보자. 세계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발전 전까지 각 지역 팀에 속해 있어서 국내 대회에 출전하다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남녀 국가대표로 선발이 되면 함께 합숙을 하면서 훈련에 돌입한다. 거의 매일 하루 종일을 훈련에만 매진하는 것이다. 청소년인 선수들은 당연히 학교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학생으로서의 생활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또한,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 중에 쇼트트랙 파벌 이야기가 있다. 쇼트트랙에서는 출신 대학별로 파벌이 나뉘어 폭력을 행하는 사건도 있었고 경기 담합이나 짬짜미 등의 많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쩌다 한 번 표면 위로 드러나는 것일 뿐 대부분의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드러내면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많은 어린 선수들은 쇼트트랙에만 매진해 올림픽 메달이라는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온다. 쇼트트랙을 중간에 그만 두면 그동안 쇼트트랙 말고는 해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낙오자가 될 것이며 우리나라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되기만 하면 국제대회 메달은 100% 획득이라는 생각은 선수 모두를 국가대표라는 한 길을 바라보고 달려오게 만든다.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훈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종목의 예시만 들었음에도 우리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얼마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훈련을 해 오는지 알 수 있다. 세계 최정상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참고 희생하는지 말이다. 여전히 선수들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국가 대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음에도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한다. 이중에는 훈련 중이나 경기 중의 심한 부상으로 인해 선수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세계적 선수들은 우리나라에서 운동을 전공하고 있는 선수들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세계 최고를 꿈꾸며 학업도 접은 채 운동에만 매진하는 어린 선수들은 너무나도 많다. 반면 스포츠 선진국이라 불리는 외국의 선수들은 어렸을 적부터 특정 종목에 재능을 드러내도 학생으로서의 권리가 우선시되어 학교도 다녀오고 즐겁게 웃으면서 운동을 시작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선수들은 치열하게 운동에만 매진한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왜 그러한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까운 질문이다.
by 말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