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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Dec 17. 2019

지구가 잠시 멈췄던 날

김자까의 오분 글쓰기(사연으로 글쓰기)

48번째 사연: 왜 시간은 앞으로만 흐를까요?


자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옛날에는 시간이 거꾸로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지구에 사람이 살기 이전, 아직 지구와 달이 우주에 막 생겼을 때쯤이다. 달에는 당연히 토끼가 살고 있었다. 토끼들은 지금의 인간들처럼 학교를 다녔는데 한 토끼가 육성회비(지금의 등록금)를 못 내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가 등록금을 가지고 와야만 했다. 그런데 그 날은 주인공 토끼의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이었다. 당시에는 시간이 거꾸로 가기에(행성들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었기에) 토끼들은 우선 할머니 토끼로 태어나 수십 년 후 겨우 어른이 되고 또 시간이 뒤로 흘러 대학에 들어가 진로와 상관없는 전공을 배우다가 고등학교로 돌아가 미분을 배우고 중학교에서 사춘기를 맞은 경우에는 거리에서 침 좀 뱉다가 초등학교로 돌아가면 그동안의 복잡한 세상살이를 잊고 간단한 더하기만 배우면 되는 모든 것이 거꾸로 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태어나자마자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고 나서
지금의 인간으로 치면 황혼기에 접어들 때쯤
 초등학교로 돌아가 1 더하기 1이 2라는
단순한 산수를 배우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려 초등학생이 되어 겨우 더하기를 배우는 날 까먹은 등록금을 가지러  집으로 향하던 토끼는 우연히 신비의 동굴을 발견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는데
그곳에 있는 샘물이 병을 치료해주는 약효가 있었고 특히 간에 좋은 효과를 주었다.  (당시는 토끼들의 간이 약해 다들 간을 배 밖에 빼놓고 살던 시대다)

실제로 토끼 동네의 노인들은 전부 간의 병을 앓고 있었고 그래서 눈이 빨갰다. 그때 샘물을 발견한 토끼가 그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동네의 어른들을 모셔와 병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동굴 속에 있던 토끼의 시간은 멈춘 그대로였기에

토끼가 등록금을 들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는 모든 토끼가 이미 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토끼가 동굴에 있는 동안
시간이 뒤로 돌아가버려 함께 노년을 함께했던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이 모두 어린아이가 되어버려 이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토끼는 동네 어른들의 병을 모두 치료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젖먹이 아이가 되어
그들을 돌보며
홀로 외로움을 견디던 토끼는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달 표면을 혼자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물론 그때는 시계도 없었지만) 움직이고 있는 달.
그런데 만약 달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그럼 시간이 반대로 돌아가 나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더하기를 배울 수 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토끼는 뛰었지만
 역시나 토끼의 걸음으로 달이 움직일 리 만무했다
그때 달동네의 어른 토끼들이 나타났다.

토끼에게 받은 은혜로 병이 나은 어른들이
토끼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합심을 한 것이다. 한 무리로 시작해 어느새 달에 있는 모든 토끼들이

달의 한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고 그 열렬한 발바닥의 마찰로 인해 결국 달은 회전을 멈추게 됐다.

그리고 완전히 정지 후에도 계속 박차를 가하자
달은 점차 시계방향으로 돌아갔고
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지구를 포함한 다른 행성들도 반대로 돌았다.
바야흐로 우주의 시간 흐름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참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결국 토끼는 이로 인해 다시 초등학교에 돌아온
친구들과 함께 더하기 빼기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제는 시간이 앞으로만 흐르기에
순수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때가 묻는 어른이 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또 시름을 안고 태어나 마지막에는 아기가 되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던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빈손으로 태어나 종래에는 짐을 가득 지고 죽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주름도 포함해서)

원래 예전 토끼들은 (지금은 사람이 되었지만)

무덤에서 깨어날 때 엄청나게 많은 돈(당근)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로 가면서 돈에 대한 개념을 잃어 가진 것을 다 나누어주고 100원만 줘도 마냥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시간이 앞으로만 흐르니
처음에는 빈손으로 시작했지만

모든 것이 풍족한 시절을 찾아가려는 본능이 남아있어
지금도 이 영향으로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돈을 아득바득 모으게 됐다고 하니
돈에 눈이 먼 인간을 마냥 욕할 수는 없겠다.
(많이 가진 것을 기본이라고 생각하기에 손에 쥔 것을 좀처럼 놓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여하간 이런 이유로 뒤로 흐르던 시간이 앞으로 흐르게 됐는데 사실 뒤로 가든 앞으로 가든
무슨 상관이랴.(꽃게가 옆으로 가든 무슨 상관)
 토끼들은 모든 토끼들이 합심해 다 같이 행성을 돌린 날을 기념하고자 달에 토끼를 새겼다.
오직 자신들의 후손이 될 지구의 인간들을 위해서.
(언젠가 지구의 인간들이 한 마음이 되기를 바라며 떡방아를 찧는 모습을 새겼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성을 발휘해 자신들이 살던 동네와 닮은 달동네도 지구에 만들었다. 지금은
 가난의 상징이 되었지만 원래는 시간이 앞으로만 흐름으로 인해 훗날 돈이라는 짐을 버거워할 사람들을 예견하고 검소하게 살라는 의미로 달동네를 만들어 지혜로운 토끼들이 미리 정착하여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버리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쳤다고 한다. (한편 삶의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로 토끼와 거북이라는 우화도 만들었는데 토끼가 놀기만 하는 한량으로 변질이 되어버렸다고)

PS. 토끼의 뒷다리가 긴 건 그때 달을 돌리기 위해 힘을 너무 쓴 결과라고 한다.

PS. 불로불사의 상징이었던 용왕과 거북이는 이때부터 늙어 죽게 되었고 영원한 토끼의 원수가 되었다.


●오분 글쓰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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