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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Dec 18. 2019

미술관이 살아있다

김 자까 의 오분 글쓰기

47번째 사연: 룸메이트가 코를 너무 골아요. 힘드네요
삐질까 봐 말도 못 하겠고, 이미 삐졌고



이 미술관에서 일한 지 곧 1년째다.
그런데 여기는 다른 곳과 달리 좀 특이한 것이 있다.
바로 매일 밤마다 어딘가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술관 폐관 이후에 남아 몰래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 숨어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아무리 확인해도 그 시간에는
 이곳은 나 혼자 뿐이고 다른 출입문도 없다.
강심장인 나는 어느 날 밤 플래시를 켜고 소곤거리는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미술관 복도를 걸었다.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몽크의 절기라는 작품 앞에 섰다.
이 작품의 남자는 절규와 다르게 다리를 저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었는데
이번 시즌의 미술관 주제가 인간의 '장애' 였기 때문이다.

소리는 그림에서 나고 있었다.
'코를 골아'
그림이 말을 했다.
이상해서 그림을 떼고 벽을 확인하고
바닥에 귀를 대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소리는 정확히 그림의 인물에게서 났다.
'밤마다 코를 곤다고'
이번에는 절규하는 외침이었다.
'자네 내 목소리 들리지? 제발 그냥 가지 마, 나를 여기서 떼어주게. 밤마다 다른 그림들이 코를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 특히 저 아줌마'

뒤를 보니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무너리자라는 그림이 보였다.
모나리자의 그림을 퍼즐의 형태로 다시 그린 작품이다.
주제는 성형 부작용이다.
모나리자 얼굴의 피부가 퍼즐처럼 떨어져 나가는 듯한
묘사를 한 것이 특징이다.

'말을 안 한 것도 아니야. 한 달 동안 참다가 제발 코 좀 골지 말라고 한 마디 했다고 그러니까 뭐라는지 알아?'
나는 플래시를 무너리자를 향해 비췄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
'나띵. 아무 말도 안 해. 삐졌다고. 평소에 나한테 온갖 수다란 수다를 다 떨던 아줌마가 며칠 전부터 한 마디도 안 한다고'
절기라는 그림이 서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물감들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자네 이곳 관리 자지? 소장한테 건의해줘 나를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달라고'

물감이 점점 그림을 더 절규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내가 플래시로 방안을 한번 둘렀다.

'... 그런데 왜 다른 그림들은 가만히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럴 것이 이 방에는 절기란 작품 말고도
다른 그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코를 그렇게 곤다면 다른 그림들도 말을 해야 할 텐데요'

'그 사람이 예민한 거예요'
뒤에서 높게 째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곳으로 가보라지. 그럼 이번엔 층간소음이 있다고 할걸! 무시해요
아무튼 그냥 이해심이라고는 쥐꼬리도 없어가지고'

그러자 갑자기 절기의 그림 속 유채 물감이 바닥에 뭉텅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사람의 모습처럼 한데 뭉치더니 흐느적거리는 액체 인간이 되어
무너리자를 향해 절름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강심장인 나도 그제야 살짝 겁이 났다.

액체 인간이 세 걸음쯤 걸었을까
이번엔 무너리자가 대답을 하듯
퍼즐 모양의 물감을 바닥에 또르르 쏟더니
로봇처럼 조각을 맞추어 액체 인간을 향해 움직였다.

곧 둘이 맞붙고 몸싸움을 시작했다.
'코골이가 너무 심하다고 이 아줌마야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이해심 없다는 게 할 말이야?'
'당신은 안 골아? 코는 누구나 골아 그래 좀 골았다치자 같이 사는데 어쩌라는 말이야 맞춰서 살아야지'
'나는 안 골아! 맞춘다고? 내 모습을 봐 잠을 못 자서 얼굴이 해골이 됐어 이쯤 되면 코 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물감과 퍼즐이 공중에서 날아다니고
 나는 손을 들어 머리를 가리고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다른 그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마다 무너리자가 너무 하다느니 절기 그림이 심하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그때 한 그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미술관 복도를 달려 단숨에 빠져나왔다.
다음날 미술관에서는 소동이 벌어졌고
나는 왜 몽크의 그림에 퍼즐이 꽂혀있고 무너리자의 그림이 말마따나
무너져 내렸는지 설명을 해야 했다.

뭉크의 절규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소장님에게
나는
미리 구입한 코골이 방지 기구를 꺼내서 살며시 보여주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소장님? 사실 이것만 미술관에 비치해두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금 번거로우실 수 있겠지만'

소장님은 말이 없었고 나는 애꿎은 코골이 기구를
손에 잡고 흔들거렸다.

●오분 글쓰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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