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은 그게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수박은 이런 고민을 할 때까지도 아직 줄기 정도만 자란 탓에 자신이 어떤 모양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수박이 열리자
수박은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고
또한
바로 옆에 사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과는 자신이 사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수박의 이름이 수박이라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수박은 사과를 잘 따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사과 아저씨 우리는 어디에서 왔어요? 저는 왜 사과죠? 우리는 왜 때문에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 중인 거예요?'
사과 아저씨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얼굴이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더니 그제야 대답을 했습니다.
'질문을 받고 쑥스러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버렸지 뭐냐. 글쎄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를 만든 건 인간이라는 존재고 그는 신 씨라고 불렸단다'
신 씨? 인간?
수박은 그 두 단어를 듣고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신 씨라는 인간에게서 왔다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말이다. 그들이 씨앗이라는 것을 땅에 놓으면 우리는 자라기 시작하는데 어느 정도 둥근 모양을 갖추면 그들이 와서 데려가는 것으로 저 멀리서 얼핏 본 적이 있단다. 내 할아버지가 그랬지. 우리는 그곳을 향해 가는 것 같다. 그걸... 일러 과일의 운명이라고 하더구나'
운명?
수박은 그제야 뭔가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하 우리는 운명대로 사는 거구나.
그동안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어 속이 빨갛게 익었는데 이제야 답을 찾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수박은 언젠가 그 신 씨라는 인간을 만날 날을 기다리기로 하고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현재에 집중하며 보람차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세월을 기다려도 인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사과 아저씨가 썩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수박은 절망했습니다.
그 모습은 보기 흉했고 검은 벌레들이 사과 아저씨를 잘게 분해해 입에 물고 이리저리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끊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에 답을 알 수 없게 되자 공포심에 수박 얼굴에 검은 줄무늬가 잔뜩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들은 신기하게 두발로 걷고 있었고
누군가
'여봐 신 씨 그 수박 잘 익었네'
라고 외쳤습니다.
수박은 그가 수생(수박 생애)에 걸쳐 간절히 찾던 신 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박은 그에게 줄기를 잘려 어디론가 실려가기 시작했는데 눈을 한번 감았다 뜨자
이미 수박의 몸이 잘게 썰려있었고
자신이 인간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박은 이게 사과 아저씨가 말한 과일의 운명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편안히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신 씨가 입을 움찔거리더니
무언가를 뿜었습니다.
그리고 씨앗이 많네 라고 말을 하면서
연달아 그 씨앗이라는 것을 뱉어냈는데
그때 수박은 알게 되었습니다.
아! 저게 씨앗이구나.
신 씨는 우리를 만든 존재가 아니라
그저 저것을 옮기는 운반자일 뿐이구나
나는 저 씨앗이 커져서 만들어졌어.
나는... 내 안에 있어!
그동안의 의문이 풀리자
수박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다른 데서 뚝하고 떨어지거나 만들어진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온 것이라는 걸요.
수박 속에 수박이 또 있었고
그렇다면 나 자신의 존재 이유도
내가
정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그러니 사과 아저씨가 말한 대로
과일의 운명을 따를 필요 없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답도
내가 스스로 정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수박껍질과 씨앗이 쓰레기통에 던져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수박은 이 곳이 어딘지 어안이 벙벙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자 언젠가 사과 아저씨가 썩을 때 나던 냄새가 났습니다.
평소 과일들에게서 나는 상큼하지만은 않은 고약하고 퀴퀴한 냄새.
수박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알았죠.
하지만 이미 자신이 씨앗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수박은 여러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