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번째 사연:어린아이들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손을 드는데, 왜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손을 들지 않을까요?
친한 친구와 계란을 까먹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계란을 깐 날이 언제였지?'
'나한테 계란 까는 법을 처음 가르쳐준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계란을 단단한 곳에 부딪혀 금을 낸 후 까먹는 법을 배운건
대략 5~6살 경이였던 것 같은데
내 생에 첫 계란 까기 선생님의 얼굴이 안 떠오른다.
이번엔 다시 두 번째 계란을 바닥에 톡톡이다가 문득 또 떠올랐다.
나는 그럼 도대체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기억들을 계란처럼 까먹고 살았을까.
돌이키면 어제 일도 가물가물한데
내 인생을 통틀어 만났던 어떤 중요한 사람을 흔적도 없이 잊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어린 시절 떨어져 산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 못 하듯이 말이다.
상상이지만 떠올려보았다.
내가 잊은 아주 중요햐 존재.
첫 계란 까기 선생님처럼 의미 있지만
희미한 기억 속의 인물.
그는 바로 실뜨기 맨이다.
실뜨기 맨은 으레 초등학생 저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혹은 많은 인파에 숨어 몰래 실뜨기를 가르쳐준다. 아이는 처음 해 본 실뜨기가 재미있어 실에 집중하느라 누가 자신에게 처음 실뜨기를 가르쳐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나가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네 줄이 되고 다시 비행기가 되고 별이 되었다가 마침내 밧줄이 될 때까지
실뜨기 맨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또 다른 투명실로 아이의 팔을 투명실로 묶으면서 실뜨기로 아이를 현혹한다.
그리고 이후 모든 아이가 보이는 높은 장소에서 횡단보도서를 건너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번쩍번쩍 손을 들게 열심히 조종한다. 그는
스파이더맨 같은 영웅이지만 딱히 근사한 슈퍼파워는 없고 항상 배후에서 모든 아이들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특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 실뜨기 놀이를 더 이상 재미있어하지 않아 그는 아이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잃게 된다.
대략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 그는 아이의 팔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다.
그쯤 되면 사람들은 횡단보도에서 팔을 드는 게 아니라 셋째 손가락으로 욕을 할 준비를 시작한다
아이에게 잊힌 그의 몸은 점점 점선이 되고 실선이 되었다가 서서히 사라지는데 0.1mm가 된 것이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햇빛을 보고 눈을 감으면 눈꺼풀에서 지렁이 마냥 반짝거리는 그 무지개색 실선이 바로 실뜨기 맨이다.
어린 시절 승용차에 맞서 당당하게 고사리 손을 들어 맞설 수 있게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던 실뜨기 맨은 여전히 우리 눈꺼풀 속에 있다.
그러니 그를 다시 만나려면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나 여깄소 하고 손을 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유치력을 풀로 충전한 유치원생이 아니고서야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실뜨기 맨을 만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방법이기도 하다.
왜 어른들은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지 않을까에 대한 대답은 글쎄 이렇게 상상해보았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이라는 작은 점선이 둘러져 있고 그 상상력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그 점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없다. 점선은 부정확한 무언가다. 어른들에게 점선은 이어서 확실하게 만들어야 하는 무언가다.
그렇게 이어진 굵은 선은 사람의 몸 바깥에 아주 굵은 테두리를 두른다. 이 테두리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준다. 명확해지고 두꺼워져서 선은 더 이상 선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굳어져간다.
사람은 그저 한 사람으로서만 그려질 뿐
새로운 그 무엇이 될 수 없다.
●오분 글쓰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