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날다

김자까의 62번째 오분 글쓰기

by 김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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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주신 분: 이모씨

사연: 오리는 날 수 있나요?





오분 글쓰기 시이작->

오리는 날았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이상이
그랬으므로 그는 곧 날개가 제 기능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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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 씨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의
창씨개명에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당시 아버지는 그의 이름을 오리로 지었다.
오리는 철이 들자 부끄럽기는 했지만
함께 창씨를 개명한 다른 지인들에 비해
무난한 편이었기에 낙담하지 않았다.

다만 박 오리 씨는 어릴 적 손을 크게 다쳤다.
폭발물로 혼자 장난을 하다가
손가락 세 개가 날아간 것이다.

그래도 그는 부지런히 살았다.
어디 가서 손가락이 없어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몽유병이 시작됐다.
자다가 일어나면 매번 절벽 앞에
서서 낭떠러지를 보고 있었고
한 번은 죽을뻔한 적도 있었다.

몽유병이 지속되자 오리 씨는 느닷없이
날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일까.
그건 아마 주변 사람들이 항상 했던
이 이야기 때문인 것 같다.
'오리야! 날아봐! 아 오리는 못 날지'
오리 씨는 어릴 땐 자기 스스로도 우스워
같이 푸하하 웃었는데
손가락이 잘린 후에는 짓궂게 날아오는
농담에 대처를 잘 못했다.

'오리 날개가 잘린 건가 하하. 농담이네
농담'

오리 씨는 내성적이어서 대개는 허허 웃으며
작은 상처들을 숨겼지만
그의 나이 70을 넘기자
이것이 몽유병으로 발병한 것 같았다.
그는 살면서 애써 감춰온 상처들이
이제야 고름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리 씨는 그래서 날개를 만들기로 했다.
항상 자기가 멈춰 섰던 자리에 아주 커다랗
고 긴 행글라이더 같은 것을 만들었다.
혹여나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되면 그걸 잡고
무사히 바닥까지 날아갈 생각이었다.
폭탄을 만들던 손재주가 있어서일까.
그는 날개를 제법 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날개의 마지막을 완성하던 때
갑자기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내 이름이, 혹시 오리가 아니었다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달이 빛나는 어느 날 그는 변신을
하러 달을 찾는 한 마리 늑대인간처럼
나무를 정신없이 헤치며 절벽을 향해
달려갔다.
꿈에는 아버지가 나왔고
어린 그를 안고 웃고 있었다.
오리 씨는 울면서 잠에서 깼고

눈 앞에는 역시나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와
자신이 만든 날개 하나가 수풀 속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전에 못 본 조그만 표지판이 보였다.
그의 집에서부터 여기까지가 꼭 '5리'
라는 표지였다. 근데 아버지의 글씨체다.
비뚤빼뚤한 글씨로 '창씨개명…박오리?'
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그리고 떠올랐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창씨개명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아침부터 침울했던 것을 기억했다.

아버지는 오리 씨를 무척 아꼈는데
산책을 갈 때면 그를 항상 등에 업고 다녔다.
그리고 매번 이 절벽까지 찾아와
바람을 쐬곤 했다.
그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근우야. 이 절벽 보이지? 절벽이라는 게
좀 무섭기도 하고 끝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 모든 걸 잊고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단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리 씨는 갑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집에서부터 여기까지가 딱
오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이름까지 바꾸어야 하는 우리 신세가
뚱뚱해져 날지 못하는 오리 신세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한계와 극복 지점을 의미하는 절벽.
집에서부터 여기까지의 거리 딱 오리.
아버지는 오리란 이름이 사람에게 붙이기는
우습지만 언젠가 자신이 나이가 들면 이
의미를 알아주기를 바라며 매일 이곳을
찾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제야 박 오리 씨는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자기가 왜 매일 밤 여기까지 와서 잠에서
깨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날개를 붙잡고 훌쩍 절벽을 뛰어내렸다.
그가 좋아하는 시인 이상의 날개에서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했다.
박 오리 씨는 그래서 곧 자신이 만든
이 날개가 자유롭게 활공을 시작해
유유히 하늘을 날아갈 것임을 한치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분 글쓰기 끝
제목: 오리,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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