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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미 Mar 10. 2020

글 쓰는 삶은 어때요?

왜 써야 한다는 마음의 빚에 쫓기는 걸까.  



글 쓰는 삶은 어때요? 중년엔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은데 궁금해요. 



      

질문을 받고 흠칫했다. 나는 ‘글 쓰는 삶’을 살고 있나. 글을 쓰고 있긴 한가. 글을 써야 하는데- 하는 쫓기는 마음으로 하루를, 한 달을, 사계절을 보내면서도 한 문단이라도 적고 잠드는 밤이 손에 꼽을 정도다. 산문집을 준비하는 동안 글 쓰는 ‘날’들을 보내긴 했다만, 한 토막 같은 시기로 글 쓰는 ’삶‘이라고 부르긴 어렵다. 여전히 나는 글을 쓰는 사람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 가깝다. 아- 뼈 맞는 것 같은 쓰라린 인정이다. 

글을 굉장히 잘 쓰는 것도, 그렇다고 성실하게 쓰는 것도 아니면서 왜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의 빚에 쫓기는 걸까. 도대체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가.


처음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쌓여가는 말들로 마음의 무게가 감당 안 되던 때다. 하고 싶은 말을 어디에도 꺼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만 두니 곪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에라도 표현하고 알리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말을 조용히 삼킬 만한 인내심이 내게 없었다. 쏟아지는 것을 급하게 받아내는 비닐봉지처럼 블로그나 노트, 급하면 핸드폰 메모에 배출에 가까운 글을 썼다. 격한 감정으로 전화 통화를 하듯 대화로 써 내려간 메모도 있고, 비밀 단서처럼 띄엄띄엄 단어만 나열한 메모도 있다. 그렇게 매일 종이 위에 뱉어냄으로써 청소한 듯 개운해진 마음으로 다시 가벼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것을 잊고 지내던 언젠가, 우연히 메모장을 열었을 때 글 안에서 팔딱팔딱 뛰는 감정을 보고 화들짝 놀라 재빨리 닫아버렸다. 검열하지 않고 솔직하게 쓴 글은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오래전에 통과해온 시간 안에 손을 넣으면 그때의 감정들이 매달린 곶감처럼 줄줄이 끄집어졌다. 불안을 건너던 그때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했다. 

급류에 휩쓸리듯 흘러간 20대에서 감정까지 또렷하게 남겨둔 때는 글을 쓴 그 시기 뿐이다. 스러져가는 과거 속에서 내 힘으로 하나의 세계를 남겨둔 것이다. 덕분에 수없이 손발이 오그라들고 이불킥을 해야만 했지만.

 

아무리 강렬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기억은 바래지고 감정은 변한다. 지나온 시간 속 기억을 잡아끌었을 때, 가는 선에 희미하게 매달린 조각 몇 개가 전부라면 온 마음으로 밀고 온 순간들이 왠지 가볍고 가엾게 여겨진다. 살아있는 감정을 재료로 가져와 어울리는 단어를 고르고 만든 문장은 내가 엮은 기억의 형태. 사라질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두는 일. 



모든 게 사라지는 세계 속에서 나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일인 것 같다.






이후로 나는 또 그때처럼 쏟아내는 순간을 기다렸지만, (’그분이 오셨다.’라고도 표현하는 영감) 그런 때는 오지 않았다. 매일 아침, 북카페에 출근하다시피 성실하게 글을 쓰는 작가는 얘기했다. 첫 책은 새벽 감성 속에서 즉흥적으로 태어날지 몰라도, 글 쓰는 삶을 이어가려면 긴 호흡의 건강한 습관이 필요하다고. 처음에는 고여있는 내 생각을 밖으로 쏟아냈다면, 두 번째부터는 바깥의 것을 내 안으로 데려와 채우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 꼭 책상 앞이 아닐 때도 글을 위한 행위는 이어진다. 나를 열어두고 내 안에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지나칠 뻔한 작은 일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고,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기도 하며 타인의 마음에 잠시 앉아 이해할 수 없던 일을 헤아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내 위주로 세워둔 기준과 확신이 나를 얼마나 좁게 만들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이제 막 깨어난 기분이 든다. 불어오는 바람조차 처음 맞는 듯 새롭다.


글 쓰는 일을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삶의 방식으로 가깝게 두며,
자주 깨어있는 채로 살아가고 싶다.





중년에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면 중년부터 쓰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습관이 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니까. 처음부터 ‘책을 내야지! 전업 작가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면 스스로 검열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 줄 쓰기도 어렵다. 방 안에서 혼자 쓰는데도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숨 쉬듯, 말을 하듯 가볍게 뱉는 것부터 해야 몇 줄이라도 쓸 수 있다. 

‘쓰는 일이 곧 과정’이란 말처럼(박연준 시인) 간단한 일기를 쓰는 것이라도 매일의 습관이 되어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글 쓰는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다. 곧 다가올 중년엔 나도 글 쓰는 삶을 살고 있다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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