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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주 Jan 05. 2024

새해 아침의 덕담 포장

예상대로 새해 아침은 시작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전두엽에 바이러스 감염으로 뇌손상을 입은 동생을

주말에 돌보기 시작한지 1년하고도 4개월째.

휴직해 엄마를 돌보는 조카가 안스러웠고,

워낙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던 조카의 신혼생활을 돕고자 함이 첫번째,

그리고 이제 막 딸내미를 결혼시키고 자신을 삶을 좀더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때

쓰러지고 만 동생이 안스럽고 불쌍해 낫겠지 싶은 믿음으로

나의 금쪽 같은 주말을 동생의 미래에 고스란히 헌납했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였지만 나의 건강까지도 그대로 헌납되고 말았다.  


듣는 사람들 100이면 100 모두 이구동성으로 침을 튀겨가며 조언을 했다.

미쳤냐, 왜 네가?, 1%의 병증때문에 가족이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다,

뇌 손상은 요양병원에서도 안 받아준다, 조카한테도 강요하지마라...등등……

그래도 눈을 맞춰가며 소통이 가능한 동생을 포기할 수없었다.

치매는 아니었지만 단기기억 상실, 심각한 불안증, 분노조절장애 등

나타나는 증상은 치매 증상과 유사했다.

좀 전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눈 앞에 있는 언니와 TV를 보면서 간단한 수다 떨기는 가능했다.  


하지만 동생의 증상은 점점 깊어만 갔다.

좋아하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집중도 잘하고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던 동생이

하루는 자기는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TV 속 상황과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했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화내고 소리지르고 쌍욕을 하고 때리기 시작했다.

주말에 우리집에 있는 동안 끊임없이 딸을 부르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못 나가게 하면 물건을 던지며 소리지르고 욕을 해댔다.

나의 결정으로 주말에라도 동생을 집에서 돌보기로 했지만

동거인인 친정엄마와 아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였고 집안이 쑥대밭이 돼 가고 있었다.  


조카와 같이 있을 때도 증상은 비슷하게 나타나

결국 병원에서도 난동을 부리던 동생을 보고

담당 의사는 폐쇄병동 입원치료를 제안하였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내린 조카의 결정을 난 존중했다.

한달 간의 입원 끝에 퇴원한 동생은 분노하고 소리치는 건 현저히 줄었으나

인지력이 너무 떨어져 대소변 가리는 것도, 혼자 밥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3살 이하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동생의 상태로는 아직 아니다 싶었지만

작년 가을 조카는 복직을 했고

동생의 집도 조카의 직장 근처로 이사해 같이 살고 있다.

주중엔 주간보호센터, 주말엔 이모가 돌봐주니 그럭저럭 견딜 만 했을까?

나는 조카가 버티는 한 내가 먼저 포기하지는 말아야지 결심을 했지만

그게 과연 옳은 건지는 더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할 과제가 되었다.  


조카는 나의 무한한 측은지심에 한번씩 펀치를 먹인다.

원래 금요일에 우리집에 오던 일정을

토요일인 12월 30일에 와서 1월 1일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하…...

아직 신혼이니 연말연시를 신랑과 함께 보내고 싶겠지…

나의 빌어먹을 측은지심은 나와 아들, 친정엄마의 연말연시를

개박살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2월 31일 밤, 전날에도 5시간 자고 새벽에 일어나더니

2023년 마지막 밤 역시 12시가 돼서야 동생은 겨우 잠이 들었고

그나마 아들과 함께 2024년 1월 1일 0시을 지나는 시각을 인지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새벽 3시반에 깨 더 이상 자지 않았고,

2024년 첫 일출을 퀭하고 시뻘겋게 충혈된 나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기저귀를 무려 여섯개 째 갈게 했으며

내 체력을 극한의 바닥까지 끌고 내려갔다.  


그렇게 1월 1일 아침이 되었다.

조카는 빈손으로 덜렁 와서 바람같이 엄마를 데리고 사라졌다.

우리 세식구는 동생이 사라진 빈자리를 치울 새도 없이

모두 쓰러져 낮잠을 잤다.  

그날 저녁은 다 같은 심정이 되어 짜장면 배달로 저녁을 때웠고,

우리는 애써 1월 1일에 겪은 대혼란을 잘 포장하고 싶었다.

"정초부터 좋은 일 했으니 2024년은 복 많이 받을 거야~~"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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