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Aug 17. 2018

글과 마음

오랜만에 여유로운 일기

생각들이 너무 많이 지나가서 남겨놓는 시간이 부족해진다. 머리결은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가는 것 같다. 그토록 원하던 삶을 살고 있으나 막상 그렇게 기쁜 것 같지는 않다.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인었는지 고민이 든다. 어릴적과 지금을 계속 왔다 갔다가 하면서 곱씹어 보기를 몇천번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다 아는 것처럼 말해서 나의 말들은 영혼의 무덤에 묻히고 있다. 이렇게 마음글을 쓴지가 엄청 오래전인 것 같다. 그동안 지적인 열정이 가끔 허영으로 변질되고, 삶에 대한 찬가가 누군가에 대한 반대급부로 작용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들이지만 인생이란 그렇지 않은가? 했던 생각을 또 하면서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가는 속성 말이다.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에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았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 얼굴에서 발하는 빛들로 즐거워하면 좋겠다. 물론 나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빛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밤이라서 그런지 더 그들의 삶의 모습이 미화되어서 나타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이 나에게 말하는 것, 빗대어 말하는 것, 의도룰 숨기고 말하는 것들이 1급수의 실개천처럼 보이는 날이 있다. 나는 바보처럼 그렇게 툭 던진척하는 낚시질에 순순히 당해준다. 물론 당해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면 어느새 그들은 더 많은 미끼로 계속해서 나를 잡아 당긴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면 잡고 있던 실고리를 끊어 버린다. 그런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도 가끔은 그렇게 낚시질로 사람들을 유인하고 이용해 먹고 싶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기에는 이미 글러 먹었다. 크고 작은 사고와 실수로 너무 많은 안테나가 생겨버린 탓인지, 소위 '내경'이라고 하는 내면의 거울 때문인지, 그렇게 할라치면 속이 메스꺼울 때가 많다. 바보처럼 그럼 평생 낚이면서 살아야 할까?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다만, 그들에 대응한답시고 그들처럼 했다가는 나의 본성도 바뀔것 같아서 머뭇거리고 있다.


대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즘들어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안을 만들기에 앞서서 충분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 깊이 만큼 깊은 공감이 앞서야 한다는 깨달음을 요즘 얻게 된다.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울고 충분히 느끼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생각 말이다. 영혼에서 그르렁그르렁 소리가 나는 이들 앞에서 생각으로 먼저 접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대안을 생각하게 되는 요즘 어디서나 문제, 고인물, 잘못된 구조들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본다. 볼멘소리의 공감도 지나치면 개인적인 우울로 다가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거기까지, 어느순간에서 끊고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가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나오지 못할까봐서 하는 조바심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현실은 너무 우울하고, 아프고, 쓰라리고, 터지고, 곪아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순간이 지나니깐 가난도 미화하게 되고, 삶의 시름도 아름다운 것처럼 문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나는 거기에 더이상 있지 않은 것처럼 글을 쓸 때가 있다. 그러다가 불현듯, 죽음이 다가오고 가까이에서 사람들의 입김이 느껴질 때면 화들짝 놀란다. 나는 작은 바운더리, 화초같은 화분들의 틈성이에서 자란 비닐하우스인간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실은 이렇게 삶은 비참하고 처참했던 것일 텐데. 나름의 대안들은 이러한 현실에서 조금씩 움트고 싹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서울역을 지나칠 때면 더더욱 길거리에서 더 그런 모습들을 본다.


부모님이 더욱 늙어 가신다. 부모님은 평생 할머니 할아버지 안 되실 줄 알았는데, 어느덧 희끗희끗하시더니 살이 쭉 빠지시고 이빨도 여러개가 빠지셨다. 내 나이 때 엄마 아빠는 꺼멓고 말라 비틀어진 아들을 등에 얼쳐메고 칭얼거리는 아이 달래준다며 동네를 돌아다니셨을텐데, 나는 휴일이나 되어야 겨우 부모님 태우고 여기저기를 잠깐씩 다녀오는 정도이다. 등이 굽어가는 부모님을 보니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고생 덜 시켜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서 호강시켜 드리기에는 내 직업을 포기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결국은 주말저녁에 술한잔에 시름과 함께 천둥벌거숭이 아들의 입담 정도로 행복을 드리고 있다. 가끔 아버지께서 기분이 좋으실때면 '오늘이 내 생일이다'라고 하실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정말 마음이 놓이고 너무 기쁘다. 그런데 아침 6시도 되지 않아서 노동의 새벽을깨우는 부모님을 볼 때면 또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슬픈 탱고의 한 소절처럼 삶은 날카롭게 찌르기도 하고, 부드럽게 끌어 당기기도 하는데 너무 날카로운 부분만 반복 재생되는 것 같다. 청소노동자의 삶을 살아가는 부모님의 어깨가 날씨가 더울때면 더욱 무거워 보인다. 힘들게 사회의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펴바르고 계신 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아이들을 만나면 그렇게 기쁘다. 생동하는 아이들의 마음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심성의 코나투스를 볼 때면. 그런데 만나면 견디기 힘들때도 있고 투정을 다 받아줘야 하나 하는 때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된 거의 7년 전의 어느날을 기억한다. 친척동생들의 얼굴이 계속 생각나서 매주 찾아갔더 연희동의 언덕. 매주 치킨이며 오리고기며 데이트할비용도 다 털어가면서 동생들과 하루를 즐겼고, 매달 한번씩은 영화를 보면서 끝나고 토론을 했던 기억들이 있다. 오늘 오랜만에 성인이 된 동생들과 연락해서 다음주에 만날 약속을 잡았는데, 둘째 동생이 '형 한가지 잊어 먹은게 있어요 영화보고 나서요, 토론도 해야죠! 커피는 제가 살께요'라며 친근하게 대화하는 녀석들을 볼 때면 정말 눈물이 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동생들의 얼굴에 퍼져 있던 이 사회의 그림자. 나는 어떻게든 그것을 떨쳐 버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은 그들과 친구가 되고, 지금 이 순간을 누리는 것이 제일이라고 알려준 녀석들. 매주 사실은, 마음이 무너지고, 심하게 울고나서야 나는 다시 태어났었다. 마치 불을 쥐어주고 심장을 잃어버린 프로메테우스처럼, 나는 나의 시간을 쥐어 주고 욕심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나 할까.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이 배우고 무너지고 깨지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깨진 마음으로 동생들과 절친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처음 마음 잊지 않아야겠지.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밤의 정취에 이렇게 조용히 글을 쓰고 있으니 참 좋다. 내일은 또 내일의 희망이 태양처럼 반짝거리겠지만, 오늘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 흘러간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하루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중이다. 바쁘게 돌아가던 시간의 소용돌이가 깊은 바다의 대양처럼 잠잠하게 멈춰있는 지금, 나는 다시 내가 갈 길을 바라보고,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본다. 부디 영혼의 숨결을 더 깊이 들이마시고, 바람과 함께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기를. 의미보다 먼저 눈시울이 빨개지는 사람이 되었음 좋겠다.


 오랜만이다. 이런시간. 글의 마음이 묻어나와서 나도 다시 일게 만드는 그런. 너무 있어 보이거나 중요한 사람인양 글을 쓰지 않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담백하고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 나를 넘어서지 않고 딱 그만큼 좋은 그런.


https://www.youtube.com/watch?v=KH7Mli_cKEs 

여유로운 첼로 음악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사유와 낭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