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Aug 28. 2018

상상과 기도

느혜미야에게서 발견하는 믿음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 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느헤미야 1장_개혁개정


느헤미야는 술관원장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서열 2~3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그런 그에게 동생이 찾아와서 이스라엘 성벽이 무너진 사실을 고한다. 잔잔한 은유와 상징으로 형상화된 성경의 내용들은 항상 우리에게 따끔한 충고도 주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주기도 한다. 오늘 성벽이 무너진 것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무너진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소, 그리고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성벽 안의 백성들이라는 상징이 '허물어진 성벽'에서 반전을 이룬다. 과연 누가 우리를 지켜준단 말인가? 과연 우리는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걸까?라는 오만가지의 상상이 앞을 가리고서는 이제는 '하나님 없이' 내 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들이 수두룩하게 열릴 것이다. 


재밌다기 보다는 특이한 부분이 있다. 왜 느헤미야는 자신의 동생 하나니로 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앉아서 울었을까? 왜 회개를 먼저 한 걸까? 보통은 자신의 권위와 신분이 높으면 그것을 해결하려고 바로 나서거나 자신의 지위가 위험해질 것 같으면 모른척하기 일수인데 말이다. 수일동안 앉아서 울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민족의 죄를 고하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구하는 느혜미야. 나는 느헤미야의 이런 모습에서 우리의 처지를 공감하는 하나님, 예수님의 뒷모습을 본다. 우리의 중보자, 오직 하나님께로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중재자. 


앞으로 전개되는 느헤미야의 행보는 거침 없으면서도 또한 지혜롭고, 공동체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시작은 마음을 동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이 마음이 옳은지를 물어보는 것이리라. 그리고 다시 그 질문은 머릿속으로 올라와서 자아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잘하고 있는걸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떨까? 하나님이 정말 왕이신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정말 나는 기다리고 있는걸까? 하나님이 사람들을 불러모아 주실까? 그들에게도 새로운 마음을 주실까?' 확신에 찬 기도보다는 의심과 두려움 때론 책임전가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같지 않은 기도를 드린다.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큰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 나 밖에 이 일을 못한다라는 자신감과 내가 뛰어나기 때문에 이 일을 완수할 수 있다라는 근거없는 확신이다. 거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자기자신이 먼저 나가다가 포기하거나(포기해도 누가 머라고 안하니까) 자신의 방법대로 하다가 성공하면 자만심에 빠지게 된다. 결국은 모두가 실패하는 길로 걸어가게 된다. 그러나 먼저 앉아서 울고, 공감하면서 시대의 아픔과 조직의 슬픔을 공유하고 있으면 나보다는 우리가, 우리보다는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실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순간순간 화살기도와 같은 짧은 기도라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갈 길을 구하는 가운데, 조금씩 '손톱만큼'의 비구름이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도 몰랐지만, 오직 하나님과 나만 알 수 있는 가느다란 실과 같은 희망. 그 희망에서 한발짝 걸어가는 것이 보통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면서 츤데레같이 행하시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느헤미야의 기도를 드린다. 일단은 앉아서 수일동안 울고 금식하고 아파하고 공감하면서 하나님을 찾는다. 우리의 인생의 중심에서 손톱만한 구름이 몰려올 때까지.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실시간으로 응답해주신다. 그리고 자기와 같이 사랑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매우 고마워하신다. 하나님이 이미 그 자리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나는 그것을 도와드리러 가는 중이다. 사실 모든 것이 그렇다. 하나님이 먼저 일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할 테니 주님 도와주세요!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니 "하나님 제가 무익한 종이지만 제가 할게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는 방식이 된다. 그러면 효율성에서는 엄청 떨어지지만 예수님은 "너랑 같이 걷는게 이 사역의 목적이듯이, 이들과 함께 걷는게 우리 사역의 목적이야!"라고 말씀해주신다. 나는 오늘도 복음을 만난다. 기쁨소식! 그 기쁜소식은 구원을 넘어서 영원으로 펼쳐진다. 하늘로부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바실레이아에 응답하는 공동체의 믿음의 걸음인 에클레시아, 그러한 하늘과 땅의 만남이 결국은 영원한 교재인 '코이노니아'로 연결된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들이 나온다.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보이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달려간다. 어느순간 손톱만한 구름이 커다란 먹구름이 되어서 커다란 장마가 시작되겠지. 하늘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가 내리겠지 한다. 예언자들이다. 우리 모두가 예언자들.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자적 상상력을 가지고 오늘도 한걸음, 울면서도 슬퍼하면서도, 한걸음씩 조그마한 걸음을 선택한다. 느헤미야와 같이 모든 이들이 달려들어서 52일만의 성벽이 보수되고 우리의 정체성이 바로서게 될 그날을 희망하면서, 기대하면서, 상상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과 부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