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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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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22. 2018

그늘과 인격

하나님의 그늘 아래_한성욱

https://www.youtube.com/watch?v=RHtq8eV3u6Q


하나님의 그늘 아래 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 잠잠히 주를 묵상하네 그 놀라우신 은혜를 끝이 없는 주의 사랑 강물되어 흘러 흘러 내 영혼에 자유함 주시네 날 새롭게 하시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회복케 하네 하나님의 그늘 아래 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 잠잠히 주를 묵상하네 그 놀라우신 은혜를 끝이 없는 주의 사랑 강물되어 흘러 흘러 내 영혼에 자유함 주시네 날 새롭게 하시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회복케 하네 하나님의 그늘 아래 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 잠잠히 주를 묵상하네 그 놀라우신 은혜를 끝이 없는 주의 사랑 강물되어 흘러 흘러 내 영혼에 자유함 주시네 날 새롭게 하시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회복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회복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회복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자유케 하네 하나님 사랑 그 사랑 날 회복케 하네




기독교 대학을 나왔다. 많은 이들이 신학대인줄 알지만 기독교 이념을 가진 학교였다. 나는 스스로 광야학교라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외로움이 너무 많은 존재의 근원을 물었음으로. 그래서 나는 항상 고민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항상 답은 없었다. 그저 나 혼자 기도실에서 무릎을 꿇고서 기도하는 것 밖에는. 그 전까지는 여러 사람들을 찾아 다녔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홀로 남아 있었다. 광야와 같은 메마른 환경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서. 그로부터 10년간 나는 그 기도실을 떠나지 못했다. 매번 울며 불며 매달리기도 하고, 조용히 숨어서 고개를 떨구고 멈춰 있기도 했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시간은 무한을 넘어서 우주로 달리고 있었다.




기도할 때마다 어느순간부터 말씀이 들려왔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사랑한단 말일세, 믿는 맘으로'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물었다. 항상 나의 안부를 묻고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무슨 힘든 일이 있었니?'그럼 나는 이런저런 심통과 짜증을 토해냈고, 한참을 그렇게 떠들고 나면 영혼의 들썩거림도 줄어들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다시 똬리를 틀고 앉았다. 언젠가 하박국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이 바로 이런 '그늘'과 같은 것이구나 했다. 광야의 절정을 걸어가는 사이에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되었고, 그리고 마침내 자유하게 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고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며, 그 분의 그늘 안에서 쉬고 누리고 즐기는 것. 하나님을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기쁨이었고, 그 분은 정말 살아 있었다. '비밀의 왕국'처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그 분은 그렇게 나의 내면의 집을 짓고 살고 계셨고, 내면의 정원의 잡초를 뽑으면서 밭고랑을 갈고 계셨다. 아직은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 분은 부지런히 나의 마음을 뜯어 고치고 계셨다. 나는 내면을 경작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야곱과 같이 그냥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고 단잠을 자기도 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다. 그 사랑 안에서 공의가 일어난다. 그러나 사랑이 일어나는 순간순간 공의가 그 사랑을 완성시켜준다. 다시 말하면 공의가 먼저 존재하나 사랑이 먼저 작동하고 그 다음에 공의가 사랑을 완전한게 한다. 이러한 사랑안에서 공의가 완성되는 방식이 바로 하나님의 방식이다. 십자가 안에서 그 분은 우리 인생의 그늘을 만들고, 그 날개 아래로 뜨거운 공의의 햇빛에서 숨겨주신다. 우리의 영혼이 마르고 인생의 기쁨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더라도 괜찮다. 그 그늘 아래서 우리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공의로 옷 입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생, 우리의 인격은 그런식으로 단련되고 만들어진다. 오늘도 그 그늘 안에서 나는 젖은 옷들을 말리고 굶주린 배를 채운다. 기도란 어려운게 아니라 이러한 상황을 그냥 이야기하는 것, 무엇을 얻어내려는 기도가 아니라면 정말로 진정으로 기도는 노동이 아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가 있어야 할 것을 우리가 구하기 전에 다 아신다고 했으니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굳이 구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 아버지가 다아시니깐 말이다.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니깐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게 맞다. 관점이, 생각이, 마음이 왔다 갔다가 한다. 사랑을 생각하다가, 공의를 생각하다, 하나님을 생각하다, 세상을 생각하다가.




아직도 야곱과 같이 돌배개를 베고서 걸어갈 길이 구만리나 되는 것 같다. 힘든 인생 어떻게 걸어가나 하다가도 하나님의 그늘아래서 내 모든 것 내려놓고 잠잠히 그 분을 구하는 사이에 나의 인격은 다시 생명을 얻고 조용한 안식을 얻는다. 누군가 물어본다. 그런 열정은 어디서 나오냐고. 나는 잘 대답하지는 않지만, 바로 하나님과의 이런 내밀한 관계에서 그 열정의 근원인 잠잠한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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