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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22. 2019

청국장과 향기

인생의 의미가 향기처럼 피어오를 때

시간이 향기를 내면서부터

나의 삶은 느려지기 시작했다


느려지기 위해서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멈추기 위해서

삶을 느려뜨렸다


그리고 향기로운 시간을 위해서

내 삶의 향기를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마들렌의 향기를 찾겠지만

나는 어릴적 청국장 냄새를 찾았다


코를 찌르면서 묘하게 인분과 비슷한

생김새의 청국장이 주는 매력은


항상 그 향기와 함께

그 당시의 시간과 장소를 걸어 놓았다


시간이 향기가 나는 건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의미가 생기는 것은

그 시간에 이미지와 감정이 연결되서


스스로를 하나의 주체로

자신의 시간을 하나의 객관적 존재로


만들어 놓고서는

해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열어 놓은 채로

이야기를 꺼내다보면


나는 어느순간에 타자가 되어 있고

나 자신과 연결된 감정과 이미지들과


다른 이들의 입김과

그 날의 날씨와 온도를 얹어서는


하나의 다른 물방울로 만들어 버린다

그 때의 시간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풀밭 위의 비내음의

향기이다




어릴적에 산동네에 살았다

그 유명한 전두환노태우가 사는 연희동


산꼭대기 동네의 한켠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바람이 불면 심하게 흔들리던

집에서 우리는 그런대로 행복했다


어머니의 음식 덕분이었는데

어머니는 5개별을 주고도 넘쳐나는


맛의 대가였고

인생의 향기를 음식으로 빚으셨다


어마니가 젊으셨던 시간

어머니는 겸손하셨고 가끔 술을 진하게 들이키시고는


친구들과 아현동에서

밤을 지새우셨다


어머니는 가끔 라디오에도 사연이

나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보낸 이야기였다


어머니의 청국장이 맛있어서

어머니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누구나 익숙해지면 소중함을 모르듯이

나는 평범한 맛을 왜 자랑하는지 몰랐다


적어도 내가 우리집을 떠나서

타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산동네라 그런지 집앞에 잡초들도 있고

조그만 상추밭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 가운데 호박순을 꺽어서

알맞게 삶으시고 된장을 삶아서


향기로운 속을 만드셨다

호박잎파리와 양배추를 삶아서


향기로운 냄새의 속을 넣고

한웅쿰의 쌀밥을 얹으면


그렇게 향이 좋고 맛날 수가 없었다

조그만 텃밭에서 나는 그렇게


인생의 향기를 배웠고

어머니의 향기를 익혔다




콩크리트는 인간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삶의 향기는 생명에게서만 나온다


삶이 의미있어지고

더 깊어지기 위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움직이는 것들

때론 부서지는 것들이 가진 향기는


언제나 생동하고 퍼져나가고

작지만 알맞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다


산동네에서 가난의 눈으로만 보지 않으면

나는 인생을 배웠고, 관계를 익혔다


매일매일 나르던 소주 1병의

동네사람들의 심부름에서


나는 소주에 실려온 인생의 향기,

존재들의 의미들을 들고 날랐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향기를 맡았다




밤이 깊어지는 사이에

인생의 시간을 늘어 뜨리니깐


향기들이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피어난다


시간의 향기가 자욱한 가운데

청국장 냄새도


메밀꽃 처럼

어디서나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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