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님의 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잇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류시화 -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알려주려고
미래의 어느시점에서
지금 내가 이 글을 보내준 게 아닐까?
마치 다시 태어나서
기억은 지워졌지만 뭔가 흔적이 남은 것처럼.
그래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은 내일이
사실은 오늘이라고.
그 내일에서 내가 지금 도착해서
오늘을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므로 지금 내가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게 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다시 한번 이게 맞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미래의 어떤 '자아'가 나에게
주는 기회가 아닐까라는 생각.
물론 아니겠지만
그래도 생각은 해볼만 하다
지금 내가 아무렇지 않게
결정하는 것들이 사실은
너무 큰 파장을 만들어내고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아니 결혼을 하지 않고 다른 이를 만났으면
아이들을 낳을 생각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 생각을 했으면
혹은 그 때 그사람과 잘 만났으면
그러니 지금 이 사람과 잘 만난다면.
지금 내가 지원한 이 회사가 아니라
그 때 갈려고 했던 회사가 더 잘 맞는다면
혹은 지금이라도 그래서
여기를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라면.
미래로 부터 오는 수 많은 의문의
덩어리들이 아침을 휩쓸고 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그럼에도 내게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지금도 남아 있고
미래에도 남아있을 무언가
그것은 무엇일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마음이 남는다
사랑이 남는다
그리고그 마음이 태동하기까지
나의 동기가 남고
그 사랑이 꽃을 피우기까지
나의 열정이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순간에는
이미지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러한 마음만 봄바람처럼
남아서 인생의 향기를 피우겠지
마음이 삐뚤어져서
험난한 계속이 되어 버린 내면에서는
휭휭 매서운 찬바람만
초겨울날씨처럼 불어올 것이지만
마음을 잘 다듬은 초원에서
꽃향기 여기저기 피어나는
아름다운 내면을 가질 수도 있겠지
그러니
우리가 지금 선택하는 것들에서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하리라
나의 마음을 잘 지키고
가꾸어야 하리라
험란한 계곡이 되지 않도록
판이 흔들리는 위협에서도
판들을 잘 끼워맞추고선
여러가지 이음새를 만들어야 하리라.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온
나의 다른 자아가
지금 이런 말을 해주고 있는 것 같을 때
오히려 시는 더욱 무게를 더해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