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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08. 2021

정의로운 사랑은 가능한가?_에로스와 아가페

니그렌의 정의와 월터스터프의 비판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A. Nygren은 아가페와 에로스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에로스는 ego-centric love라서 자신에게 만족이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충족되는 사랑이다. 에로스는 그 자체로 환상적이고 감각적이고 즉흥적이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면서 결국 자기스스로에게 귀환하는 과정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에로스로 한껏 불타 오르는 '뜨거운 사랑'이 점점 시간이 갈수록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거나 또 다른 대상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아가페는 '이웃중심'이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강도만난 이웃을 대할 때 자기가 그 일을 당한 것처럼 자신이 목적인것 같지만 사실은 이웃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윤리적인 것처럼 혹은 도덕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필리아적인 '생각'에 머무르기 보다는 '행함과 실천'이 계속해서 가득차는 방향으로 아가페는 충만해진다. 아가페는 '더 나은, 더 좋은 차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포괄하고 더 품어주고 더 덮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레벨의 관점에서 위로 올라가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스펙트럼의 관점에서 외연이 더 넓어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니그렌의 이러한 관점은 사실 '고전주의적 현대 아가페' 논의이다. 고전주의라는 것은 '덮어 놓고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약간의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니그렌의 논의에서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것을 드러내지 말고 베드로 사도처럼 덮어주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가페는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이것은 그 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드러난 '대량학살, 히틀러, 세계대전, 원자폭탄'과 같은 거시적인 악에 대해서도, '살인, 강간, 사기, 강도'와 같은 미시적인 범죄를 모두 이해하거 피해자이지만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럼 사회적 정의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의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랑'에 자리를 내어 주고 정의의 문제를 꺼내지 않은 것이 아가페의 실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니콜라스월터스토프는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때까지'에서 '평화와 정의'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결국 평화를 이루는 것이고, 정의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평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월터스토프는 정의와 사랑의 문제를 다룬다. 과연 정의는 사랑과 대립되는 것인가? 정의가 먼저이면 사랑은 사라지는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와 '사랑'은 대립되는 것으로 보았고 사랑이 실현되면 정의는 물을 수 없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월터스토프는 '사랑과 정의'에서 오히려 정의의 실천을 먼저 이야기한다.


정의는 '합당한가, 옳은가'의 문제를 다룬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합당한가 옳은가?를 다루는 것은 윤리적인 기준도 있어야 하고 도덕적인 실천도 있어야 한다. 정의가 실현되면 우리가 무엇을 잘 못했고 무엇을 잘했는지가 드러난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정의를 이야기하면 사랑은 그럼 사라지는가? 혹은 실천하기 어려운가? 보통은 이렇게 생각한다. 월터스토프는 조금 더 나아가야한다고 말한다. 정의를 실현하면 무엇이 문제이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우리가, 사회가, 역사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 다음에 이제 '용서'의 문제가 남았다. 용사라는 것은 용서할만한 일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실제적으로 대상과 주체가 구분되는데 그럴려면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인 용서는 정의가 이미 실현된 이후라는 것이다. 대부분 용서를 애매한 대상과 주체로, 내용으로 놓아두기 때문에 사랑의 실천은 오히려 이용된다고 말한다.



온전한 '정의'의 실현 이후에 '용서'가 가능하고, 그 '용서'의 순간에 주체적으로 아가페 사랑을 실천할 것인지를 결정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현되면서 결국 용서의 대상과 주체가 서로 화해하는 '평화'의 상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정의를 애매하게 놓고 시작하게 되면, 정의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사랑도 사실은 '반창고평화'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의 '악함'은 이것을 학습하면서 반창코 평화를 계속 생산해 내고 오히려 회개나 돌이킴이 없이 정의를 묵살해 버린다는 것이다.


어쩌면 니그렌과 같은 고전적인 현대 아가페주의자들이 사랑을 더 하찮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악을 애매하게 용서해주는 그 사람이 코로나에 감염되듯이 자신이 그 악을 실현해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아무런 감흥없이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의는 용서를, 용서는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이럴 때 오히려 한병철의 말처럼 "우리는 사랑을 발명할 수 있다. 에로스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부터 새로운 '부정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로스와 아가페의 정의만 제대로 되어도 사회는 이렇게 쉽게 '사면'을 허용하거나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애매하게 덮어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고백과 함께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깐.





목차


서문
1 서론
1부 자비-아가페주의
2 현대 아가페주의
3 고전적 현대 아가페주의가 바라보는 사랑과 정의의 관계
4 고전적 현대 아가페주의의 아이러니와 불가능성
5 니버의 비고전적 아가페주의


2부 배려-아가페주의
6 사랑으로서의 정의
7 정의란 무엇인가?
8 사랑을 다시 생각하다
9 배려로서의 사랑
10 배려의 동기는 중요한가?
11 배려의 적용 규칙
12 두 가지 인상 바로잡기
13 배려-아가페주의는 너무 쉬운가?
14 사랑, 정의, 선


3부 정의로운 사랑과 불의한 사랑
15 용서란 무엇인가?
16 용서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무슨 의미를 갖는가?
17 용서는 정의를 침해하는가?
18 정의로운 관대함과 불의한 관대함
19 정의로운 온정적 간섭주의와 불의한 온정적 간섭주의


4부 하나님의 사랑의 정의
20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관대함의 정의
21 칭의란 무엇이며 그것은 정의로운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Nicholas Wolterstorff)


세계 철학계에서 활약하는 대표적 기독교 철학자다.1932년 미국 미네소타 비글로우에서 태어나, 캘빈 칼리지(B.A.)와 하버드 대학교(Ph.D.)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모교인 캘빈 칼리지에서 30년, 예일 대학교에서 21년간 가르쳤으며 하버드, 프린스턴, 옥스퍼드, 노터데임,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등에서 방문 교수로 가르쳤다. 2001년 예일 대학교 노아 포터 석좌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버지니아 대학교 고등문화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철학회 회장과 미국기독교철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옥스퍼드의 와일드 강좌와 세인트앤드루스의 기포드 강좌 등에 초빙되어 강의했다.

월터스토프는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이 가져온 해악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통을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계기로 정의론 탐구에 매진해 왔다. 1981년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카이퍼 강좌를 맡아 기독교는 세계를 형성하고 개혁하는 종교임을 역설했고, 이를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IVP)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2008년에 기독교 전통에서 얻은 통찰을 철학적으로 정교하게 논증한 정의론을 Justice: Rights and Wrongs에 담아냈고, 2011년에는 사랑과 정의가 대립한다는 통상적 이해에 반박하는 이 책 『사랑과 정의』를 저술했으며, 2013년에는 정의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여정을 자전적으로 보여 주는 『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복있는사람)를 출간했다.


그 외에도 미학, 존재론, 인식론, 교육 철학, 신학, 기독교 철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폭넓은 관심으로 성실하게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밖에 『행동하는 예술』(IVP), 『종교의 한계 안에서의 이성』(성광문화사),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좋은씨앗), 『샬롬을 위한 교육』(SFC출판부), On Universlas, Divine Discourse, Thomas Reid and the Story of Epistemology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책소개


이론과 실천, 전통과 대안을 아우르는 철학자 월터스토프가 정의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선언하는 새로운 고전!

불의의 현장에서 점화된 문제의식과 개혁주의 전통의 탄탄한 기반에 힘입어 꾸준히 독보적 정의론을 구축해 온 월터스토프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사랑과 정의가 서로 충돌한다는 기존 기독교 윤리학 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랑과 정의가 조화를 이루는 대안적 아가페주의를 제시하는 책이다. 철학·정치·법·신학의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며 쌓아 올리는 정교하고 엄밀한 논증으로, 온전히 이해한 사랑은 정의를 구현하며 정의는 사랑의 실천 사례임을, 하나님의 칭의에 담긴 사랑이 정의로움을, 또한 그 사랑은 우리에게도 정의를 포함하는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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