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뼈아픈 후회_황지우
<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1998, 문학과지성사.
나는 아직도 기다린다
슬프다가 두근거린다
내 가슴 속에 빛나듯 사라지는 구름의 신전
여름철 땀으로 변한 향기가 수증기가 되어 얼음조각이 되고
뿌리깊이 붙어 있던 토지의 숨결이 한웅큼 웅크려 있는 곳
지적귀는 새들만이 아련한 추억으로 매년 돌아가는 곳
어떤 시시한 연애라도 아무리 희미한 만남이라도
이 눈부시게 밝은 신전에 쉽게 들락달락 거렸다
폐허가 폐허를 쌓아놓고 절구에 빻듯이 고운 모래가 되어
누가 오더라고 발자욱이 남는 곳에서 나는 여전히 기다렸다
발자욱들이 겹치는 어느 갈림길에서 눈물을 뿌리고 나면
곧 조각구름이 되어 다시 구름의 신전에 닿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
다시 돌아올 세상을 그려보면 팔할의 바람만 남은 인생에
가장 후회가 되지 않는 하나
그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건
구름의 신전이 매번 새벽처럼 떠올랐다가
빛이 사라지듯이 모습을 감춰버렸던 것
어린시절, 모든 이를 위한다며 너무 큰 그림을 그린 탓에
아무도 그릴 수 없었던 흩어진 모래알 같은 시절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마음에는 커다란 적란운
한웅큼 만큼 구름의 신전에 모두를 초청했었다
인류를 생각한다며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지
몇십년 구름 속에 어렴풋이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가끔 많은이의 얼굴이 무거워 땅으로 내리면
빛나는 아침에는 비가되고 시리운 겨울에는 눈이 되었다
나는 만나는 모든 이를 사랑했다
모든 이들이 구름의 신전에 발자욱을 남겼다
교차해 지나는 갈림길 위에는 어련히 구름의 신전이 빛났다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갈림길에서
누구라도 기다린다
여전히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염없이 하고 있다
후회하지 않을 일_민네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