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자기만의 생각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언제 창조적이라고 말하고, 언제 비판적이라고 말할까? 비난과 비판의 차이는 무엇일까? 레퍼런스 없이 글쓰기가 가능할까? 문득 새벽 4시에 깨어나서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정형화된 지식들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다보니 생각이 더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슷한 말로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자신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 저주에 걸린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생각에 생각을, 계속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내가 본 것을 내가 표현할 수 있다면, 그 표현한 것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기쁠까? 생각을 한번 적어 본다.
독일 철학을 너무 많이 접한 탓일까? 항상 도식화된 인과관계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과관계는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하는데, 결과를 정해놓고 설득하기 위해서 맞춰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표현한 것은 나의 구상이니 다시 비판적으로 추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어떤 것이 구성요소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존재론이다. 존재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인식론이다.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가 원리론이라면 존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행태론이다. 이러한 차원들을 조금 나누어 놓고 나면 아래 그림과 같이 하나의 도식이 만들어 진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매우 단순화시킨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분법이 잘 드러맞는 큰 흐름이 있다. 어쩌면 작은 세계로 갈 수록 이분법은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면서 몇가지 발견한 이분법은 크게는 이렇게 2가지인 것 같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 살아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
무질서로 움직이는 것과 질서로 움직임을 멈추는 것
크게 보면 두 가지의 구분이 가능할 것 같다.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에너지가 점점 줄어 들면서 정해진 자리에서 더 이상 안움직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반대로 질서가 점점 흩어지는 것은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게 될 때이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래서 서로 주고 받는다. 에너지를 주고 받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이 관계는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있다. 움직이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반대도 그렇다.
움직이는 것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가는 것을 질서가 점점 잡혀간다는 의미에서 네트로피라고 한다면, 그 반대는 질서가 점점 사라지는 엔트로피가 된다. 엔트로피가 충만해지면 하나의 체계가 되고 체계가 되면 복제가 가능해진다. 반대로 움직이지 않던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질서가 증가하면서 하나하나 개체가 된다. 개체가 쪼개질수 없을 때까지 쪼개지면 무질서한 상태는 그 상태로 움직임을 시작한다. 양자역학으로 가면 여전히 작은 단위에서도 무질서가 증가하기도 한다.
비판적 사고는 무엇인가를 쪼개는 행위이다.
이제 비판적사고를 생각해보자. 비판적 사고는 무엇인가를 쪼개는 행위이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판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 이야기에서 문장을 쪼개보고, 그 사람과 상황을 쪼개보고, 상황 안에서 인과관계를 쪼개보고, 그 쪼개보고 있는 나와 이 상황을 쪼개보는 것이다. 그래서 비판적 사고의 끝판왕은 비판적 사고를 하고 있는 나에게 돌아온다. 비판적 사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엔트로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깐 무질서가 증가하면서 점점 움직임이 많아지는 생각이다. 그래서 비판적 사고를 하고 나면 생각거리가 많아진다.
결혼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면, 결혼은 말 그래도 연결되는 것이다. 연결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 가족으로도 연결되어 있고 사회적인 관계로도 연결되어 있고, 시간관계상 과거와 미래로도 연결되어 있다. 그럼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산다는 것은 혹은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이다.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무엇을 나누면 결혼이 되고 무엇을 나누면 동거가 되는가? 동거는 또 무엇인가? 동거와 결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렇게 하나의 주제로도 몇백페이지로 나누어서 쪼개어볼 수 있다. 비판적 사고는 그렇게 무질서로 내려가는 사이에 다양한 개체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비판적 사고를 잘하는 사람은 주위에서 똑똑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반대로 구질구질하거나 질척댄다는 소리도 듣는다. 이런 비판적 사고를 대게 싫어하기 때문에 잔소리라고 하던가 아니면 대안이 없으면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소외되기도 쉽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비판적 사고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느끼기 시작했던 때였을까? 아니면 내가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는 비판적 사고를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생각할 거리가 많다. 무엇인가를 경험하면 모두 쪼개어 놓기 때문에.
창조적 사고는 새로운 연결을 말한다.
그럼 창조적 사고는 무엇인가? 비판적 사고와 대칭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창조적 사고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 정도로 일축된다. 그럼 아무거나 만들면 창조적 사고인가?라고 물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비판적 사고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창조적 사고는 기존의 정의와는 사뭇다르다. 창조적 사고는 새로운 연결을 말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질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체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을 통해서 질서를 잡아가는 것을 말한다. 네트로피가 증가하고 에너지가 오히려 응축되면서 하나의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창조적 사고는 구체적인 형상을 만드는 구상이고 비판적 사고는 애매모호한 형상으로 흩어지는 추상이 된다.
비판적 사고를 잘하면 생각거리가 많기 때문에 생각끼리 조합하고 연결하는 창조적 사고가 자연스러워진다. 창조적으로 생각해라!라고 해서 창조적이 되지 않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면 창조적으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물론 창조적으로 되는 것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연결을 실험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판적이 될 수록 더 많은 구성요소들이 만들어질 테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연결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증명하는 많은 레퍼런스를 달고 싶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글로만.)
위에 그린 그림은 아이패드로 강의를 들으면서 정리한 것이다. 듣는 내내 비판적 사고와 창조적 사고를 왔다 갔다 했다. 들으면서 계속 쪼개보고, 쪼갠 것들을 다시 연결해보고 이러면서 이것을 표현하기 위한 선과 인과관계 그리고 대안들을 찾으면서 생각을 더해가는 것이다. 그 전에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많다면 더 많은 연결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연결을 통해서 대안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더 비판적이 되고 더 잘게 쪼개는 엔트로피를 진행하는 중이다.
위의 그림은 철학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배웠던 철학자들과 이론을 서로 연결하여서 2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것이 3차원이 되면 8자구성이 휘워지면서 서로 끝단이 만나는 구가 되고 그것이 움직이면서 4차원이 된다. 한 사회나 시대가 이렇게 흘러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이러한 구상을 하기 위해서 최대한 인간, 자연, 노동, 제도, 국가, 문화, 사람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비판적 사고를 실행했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 잘게 나눈 개체들을 연결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새롭운 구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위의 그림은 임파워링 강의를 하기 위해서 비판적 사고를 전해본 것이다. 그러니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 쏟아내놓고 그것을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임파워링 강의안이 만들어졌다. 자랑하려고 글을 쓴게 아니다. 자랑하는 사람은 그 자랑에 자신이 갖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는가를 쓰고 싶었다. 비판적 사고가 자연스러워지면 창조적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깐 태어나면서 창조적인 인재가 천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빠르게 비판적 사고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금 공부 못한다고 스스로를 제한하지 말고, 누군가 뒤처진 사람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비판적인 사고부터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다.
자 이제 생각을 열어 제끼고, 인식속에 들어오는 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 그러면 머지 않아서 새로운 연결이 머릿속에서 시작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그러니 더 많이 보아야하고, 보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존재론에서 다시 시작해서 보는 방법의 인식론을 갈아치워야 한다. 때로는 더 많이 보는 사람, 더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과 함께 책을 읽고 거리를 거니는 것도 좋다. 혹은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 비판적 사고로 우주끝까지 내달려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자기고유의 생각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 걸음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전교육 혹은 고전을 읽는 이유는 비판적 사고를 하기 위함이다. 고전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것은 그 고전을 쓴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 방식을 배우거나 비판적 사고의 결과로 나누어진 개체들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
*생각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생각에 대한 생각을 연습해야 한다. 메타인지가 기본이다.
*생각을 표현하는 글과 그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