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_눈
김수영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
마음껏 뱉자.
≪문학 예술≫ (1956)
세상의 끝에서 움트는 희망이 있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길에 누군가가 서 있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영혼에
누군가 외투를 덮어주는 때도 생긴다
눈밭에 난 발자국이 사라지는 아쉬움에도
또 다시 흐릿한 나의 발자국을 따라 오는 이가 있다
너무 거대해서 한 귀퉁이밖에 볼 수 없을지라도
계속해서 주위를 멤돌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마음은 살아 있다
죽어버린 영혼에도 마음은 살아 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혈관에서부터
마음까지 영혼은 흘러 다닌다
아직 식지 않는 내일의 희망을
눈 속에 파묻혀 버리지 말고
기침이라도해서 절망을 털어 버리자
여전히 우리가 가야할 곳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에
자리가 비어 있다
두근거림을 의지해서라도
이 눈보라 속으로 걸어가자
민네이션_아직 식지 않은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