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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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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11. 2022

기형도_그집 앞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었네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 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기형도_그집 앞




그 때는 추운 겨울겨울이었네

우리는 두둑한 외투를 입어도 떨고 있었네


보이는 것마다 신경질이 날 때

가슴 한 쪽의 따뜸함이 날 안심시켰네


나는 그 집앞 가로등을 잊으려 하네

이별의 슬픔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 하네


사람들은 있는 힘껏 비틀거렸고

나의 눈빛은 회색빛만 감돌았네


가슴팍이 따뜻하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하며 나는 취기에 웃네


모든 이들이 웃는 것만 같네

눈빛 속에 열이 오르던 때가 난 아기같네


모든 것이 탓이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


스스로 알콜에 취해도 죄책감은

가슴팍에서 떠나지 않네


사람들은 이 가슴팍 안쪽의 따뜻함이

천불처럼 자신을 다 태워버리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알콜로 꺼보려하네

불는 기름붙듯 더 활활 타오르네


외투를 입지 않아도 춥지 않은 어느날

그의 심장은 드디어 멈춰버렸네


나는 못생긴 눈썹을 가졌네

사람들은 눈썹이 없다고 놀려데지만


그 추운 겨울 다 타버리고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단걸


나 밖에 모르고 있네

나는 사랑을 잃었네


마침내 내 자신에 대한 사랑도 잊었을 때

세상엔 비가 내렸네


아래로 자라난 쓴뿌리가

새로운 얼굴을 들썩이네


다시 겨울이 온다고 두렵지 않네

이미 지킬수 있는 게 하나도 없기에


못생긴 눈썹도 이제

부끄럽지 않네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외투를 걸치고 있네

좁디 좁아진 마음켠에서 식어버린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네

우리는 알고 있었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었네

_민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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