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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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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19. 2023

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귀뚜라미_나희덕




붉은 나무를 갈아넣은 비싼 향수에 묻혀

아직 나의 땀냄새는 향기가 아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흩날리는 땀방울,

구름한점 없고 태양도 직선으로 내리쬐는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 사이 공간에서

비오듯이 흘러내리는 온도 속, 나는 살아 있다


내일을 위한 오늘의 성실함이 눈물처럼

송글송글 맺혀 내리는 이마가 누구하나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지금은 오토바이크 경적소리가

도로를 빼곡히 매우는 시절이지만,


어느날 도로의 열기도 식히고

퍼다나른 음식물쓰레기 냄새도 아침이슬에 덮히고


아스팔트사이 벌어진 틈바구니 사이로

조그마한 들풀하나 꽃망울을 터트릴 때


그동안 아스팔트 사이로 흘러들어간

나의 땀냄새가


누군가의 후각을 깨우는

아름다운 향기일 수 있을까?


누군가의 콧잔등에 흥얼거림을 선물하는

어느향수보다 진한 향기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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