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바람이 석양에 밀려올 때
오후 4시
태양은 점점 자신의 옷을 갈아입듯이
얼굴빛을 바꾸고는
희멀그레한 그림자를 놓아두고 있었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도 모르는 바람은
낮 익은 석양과 함께
인생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태고의 태양이 점점 석양으로
변해갈 때 쯤 피카소의 그림들이 생각났다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느껴지던 석양의 정취가
오늘은 여기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다
인생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는 않은가
문득,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질 때
바쁘게 걷던 걸음을 멈추어서고
시간을 돌이켜 자신의 발자국을 되짚어보는
그런날이 있지 않은가
그런날은 항상 석양이 바람에 실려
인간의 역사를 말해주고
마티즈같은 색감의 잔치로
모든 만들에게 새로운 옷을 선물하지 않던가
국가와 용기
영웅과 전쟁
인간과 역사
그 어느것 하나 손에 잡히지않는
형이상학의 굴곡을 깨닫고 나면
삶은 쓸어놓은 바른 길에
진심으로 한 발자국을 내밀지 않던가
소란스러운 시간이 바람에 날려가고
분주했던 하루가 석양과 함께 침몰할 때
은하수는 더욱 빛나고
우리의 눈빛들은 생의 감각으로 일깨워져
모든 만들에게서
신의 형상을 발견하지 않던가
석양이 바람에 밀려올 때
인생이 말하지 않던가
좀 더 사랑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