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과 나아감

가을이라 그런가

by 낭만민네이션

타자의 철학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엠마누엘 레비나스를 알게 되고


그의 책 '윤리와 무한'을 읽으면서

현상학에 첫 발을 내 디뎠던 기억이 난다


인생에서 오직 2가지는 앞으로 향하는데

그것은 의식과 시선이다


의식은 계속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과거를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앞을 생각하는 것이다


시선은 항상 우리의 앞을 보도록 구조화되어서

앞에 보이는 것을 생각의 구실로 삼는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그냥 멈춘다고 하면 그건 멈추는게 아니라


조금씩 앞으로 가는 것이다

의식과 시선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머무른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의식적으로 앞으로 갈려는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는 것이다


마치, 인상파 화가 마네와 같이

현상이 흘러가도록 놓아두되


그 현상에서 진리를 붙잡는 방식으로

한 곳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정물에


흘러가는 시선을 붙잡아 놓고

뻗어 나가는 의식을 붙들어 매는 것이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현실에서 과거와 미래가 침투하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내가 보인다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은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가지 고민이 들지만

그렇게 되면


현실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실용주의적인 생각을 내려 놓고


나는 무엇인가라는 아렌트의

박사학위 논문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이전의 질문


여기에서 휴머니즘과 애니미즘과

신학과 철학이 나온다




가을이라서 그런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잦아진다


불교의 윤회사상처럼

매년 가을이 되면 똑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이러한 고민과

마주 앉는다


물론 살아온 경험과 깨달음이

더해지지만 나는 아직도


아홉살 인생, 까지발로 길을 걷는

어린아이 같다


잠시 머물러서

세상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믿는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머물러 있는 시간

점점 나아갈 힘을 얻는 듯하다


가을이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오면

스웨덴소설 예스타베를링이야기처럼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하는 것 같이

단단히 무장하고 준비해야할 것 같다


어쩌다 어른이 된 걸 되돌리려

가득찬 청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을이라 그런가

나는 여기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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