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인권

참여연대 인터뷰

by 낭만민네이션

2015년 참여연대와의 인터뷰

꽃을 단 남자




월수금은 직장동료들과 아침독서회, 일요일엔 대학 후배들과 일요독서회, 7월엔 느티나무에서 열리는 김만권 독서클럽까지 신청했다는 이 문제적 남자에게 물었다. 취미가 뭐예요?
“매일 조깅해요.” 좀 불건전한 취미는 없어요?
“영화 보는 거? 최근에 ‘강남1970’ 봤어요. 강남의 부자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해서요.” 연애할 생각은요?
“생각은 있어요. 사내연애요? 그건 좀…. 사실 여기서 전 특이한 사람이라.” 왜 특이해요?
“이거 보면 모르시겠어요?”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빈곤과 포르노의 조합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 낯선 얼굴을 향하던 나의 시선은 가슴에 매달린 하늘색의 커다란 꽃송이에 더 오래 머물렀다.
“2011년부터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이하 기아대책)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지금은 긴급구호 업무를 맡고 있는데 최근엔 네팔 지진 현장에 다녀왔죠. 실제로 가보니 알려진 거랑 같은 것도 있고 좀 다른 것들도 있고 그래요. 카트만두시는 전기도 안 들어오고 거의 아비규환이에요. 근데 힌두교가 81%라서 그런지 세계관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바신의 노여움에서 벗어났다며 안도하는 건지 의외로 담담했어요.”




외부로 알려진 것과 다른 점은요?
“언론엔 주로 처참한 것들만 나갔는데 실제론 그들 스스로 노력하는 부분도 많았거든요. 피해를 덜 입은 시민들은 돈을 모아서 난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청년들도 피해상황을 조사하며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저기 요청하고, 군인들은 건물들의 잔해를 치우고 시체를 화장하고. 근데 이런 모습들은 거의 보도가 안 되죠.”
규모가 큰 구호단체들은 현장에 나가면서 직접 기자들을 섭외해 데리고 가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의 기사가 구호단체들의 활약에 집중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가난이 더 자극적이고 노골적으로 묘사될수록 후원금도 더 많이 모이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기부와 자선을 얻어내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아프고 고통스럽고 무기력해야 하는 현실. 이를 가리켜 ‘빈곤 포르노’라 한다고, 그가 심란한 표정으로 일러주었다.

“가난하다고 알고 갔는데도 직접 보면 깜짝 놀라게 돼요. 소득불균형도 무척 심하고 사회기반 시설도 너무 열악해요. 근데 이 나라가 아시아에서 행복지수 3위라는 거 아세요?”
그의 긴 설명이 이어진다.
“네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비춰볼 비교군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주위 사람들 모두 가난하니까 자신이 특별히 더 불행하다는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이번에 우리나라만 해도 200개 정도의 단체가 네팔에 들어갔어요. 드디어 그들에게도 비교군이 생긴 거죠. 돈이 많은 단체들이 가져온 온갖 물품들을 신기하게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나중엔 외부인들을 향해 돈 달라고 손을 내밀어요.”

그는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고민할 게 많다고도 했다.
“네팔 구호와 재건을 위한 유엔 클러스터 회의에 갔었는데 정작 네팔사람은 한 명도 없더군요. 주인도 없이 주인집 안방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이러고 있는 거죠. 그것도 영어로. 그러니 현지인들이 끼어들 틈은 점점 더 작아지고, 또 구호금 중에 부패한 정부로 흘러들어갈 돈도 분명 있을 텐데 이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이며….”
그와 인터뷰를 한 날은 기상관측을 실시한 이래 6월 기온으로는 108년만의 더위라고 했다. 그러나 에어컨 바람 속에서도 내 머리가 점점 뜨거워지는 건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도움이어야 하는가

그가 말하는 문제들이 더 고약하게 느껴지는 건 선의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 불러오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들 때문이다. 빈곤과 포르노라는 두 단어의 낯선 조합만 봐도 그렇다.
“구호사업이라는 게 경쟁적으로 할 일도 아니고 실효성과 지속성을 고민해야 하는데 요즘은 ‘우리 단체는 몇 가구에 얼마를 지원했다’ 이런 식으로 성과를 내는 데 치중하는 분위기예요. 저희는 공동체가 지닌 가능성과 잠재력에 집중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는 크지 않을 수 있죠.”

인도주의 사업이나 NGO들이 나가야할 방향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기아대책은 공동체의 비전은 그 공동체에서 세운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변화를 위해선 그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예요.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고 그렇게 변화된 한 사람이 결국 공동체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이것이 외부의 원조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저희의 역할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촉매하는 거죠. 이번 네팔 긴급구호 때도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마을의 리더와 함께 일을 했어요. 그분을 만나 유엔 세계식량계획에서 나오는 구호물품 키트를 보여주었더니 지금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현지인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것은 구호사업뿐만이 아니다. 긴급구호의 마지막 단계인 ‘재건과 복구’는 공동체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므로 더욱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다.
“기아대책에서는 선교사들이 ‘기아봉사단’이란 이름으로 해외로 나가 지역개발을 해요. 다른 단체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돌아오는데 비해 저희는 선교사들이 그곳에 정착해 살기 때문에 지역의 언어와 문화, 풍습 등도 잘 알게 되고 현지인과 소통도 잘 돼요. 이런 긴밀한 관계 위에서 지속적인 복구와 실효성이 있는 개발이 가능해지는 거죠."

제도를 디자인하다

비례대표포럼 청년위원회 위원? 이건 또 뭔가요?
“대학원에서 정치경영을 공부하면서 가입하게 된 곳이에요. 한국 정치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게 비례대표제의 확대라는 생각에 저도 동의하거든요. 변화에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가장 먼저 정치체제가 바뀌면 시장을 조정할 수 있는 기제가 제도 안에 마련될 거예요. 그러면 시장의 경제주체들이 복지문제들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게 될 거고, 결국 시장에서 나온 복지비용으로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게 되는 거죠.”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과연 현실정치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선거제도가 바뀌면 당구조와 더불어 권력구조도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비례대표제를 하고 있긴 한데 그 비중을 더 많이 늘려서 대의민주제의 단점인 사표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청년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청년당이 나올 수 있을 거구요. 이런 의미에서 정치개혁의 첫 번째는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대의민주제라지만 국회의 대표성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18대 국회만 놓고 봐도 법조인이 전체 국회의원의 20%였다. 국민의 20%가 법조인이 아니고서야 이는 누가 봐도 과잉이다. 농민, 노동자, 장애인, 성적소수자, 청년, 여성 등이 당당히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유럽만 봐도 좋은 제도들을 만들기 위해 최소 30년 이상씩 노력했던 정당들 덕분에 지금의 복지수준을 누리고 있쟎아요. 지금 청년 세대들이 당장 그 제도의 혜택을 못 받더라도 다음세대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직장과 대학원을 동시에 다니면서도 빡빡한 독서회 일정에 참여하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사실 전 배워서 남 주려고 공부해요. 다른 이에게 숲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려면 제가 먼저 알아야 할 거 아녜요? 불평등 해소 문제를 경제에만 맡겨놓으면 변화는커녕 약자들만 점점 더 소외돼요. 결국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정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그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신문지 한 장에 의지해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인도의 아이들을 보며 외교관이 되어서 어떻게든 그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외교관이 되지 않았기에 그는 지금 어릴 적 꿈꾸던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이곳에서 일하기 잘 했다는 생각을 해요. 업무를 떠나 타인과 나를 모두 아우르는 삶과 그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곳이거든요.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이런 고민들을 계속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직장이 너무 좋아요. 앞으로의 꿈은 공부하면서 알게 된 이론들을 실제 현장에 적용해 보는 거예요. 공공정책도 계속 공부하고 싶고 언젠가는 좋은 제도를 디자인하는 정치가가 되고 싶습니다.”

꽃을 단, 이 남자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신문에서 보았던 한 구호단체의 광고문구가 계속 아른거렸다.
‘아이야, 서투른 도움이라 미안해.’

누군가는 미안해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넘어서려고 한다. 누군가는 참혹함을 앞세우더라도 굶주린 아이의 끼니를 챙기려 하고 누군가는 그 아이의 아빠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한다. 이 모두가 선의인 것은 분명하지만, 빈곤의 원인이 아닌 결과에만 집중하다 보면 ‘선의’라는 이름 아래 빈곤과 포르노가 어색하게 만나는 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빈곤문제로 원조를 받는 나라들도 언젠간 제도와 관련된 문제들이 불거질 거예요. 원조를 넘어 좋은 제도들을 그 나라에 정착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 외부의 도움에 종속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제도식민지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사회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죠.”

흰 셔츠 위에 하늘색 코사지를 달고서 그는 스스로를 특이한 사람이라고 했다. 정치적이면서 말도 많기 때문에 자신과 살면 인생이 힘들 거라는 걸 알기에 애인이 없는 거라고 했다. 책에서 전부를 배울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이 남자는 모른다. 자신이 그리는 미래가 얼마나 고운 빛인지, 그 찬란한 빛을 품은 그의 가슴이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덥히는지, 그래서 그 더운 가슴으로 질주하는 그의 삶이 얼마나 섹시해 보이는지를 말이다.
모든 순간에서 배운다는 인생 철학을 지녔다고 하니, 부디 그가 이 인터뷰를 보고 스스로에 대해 좀 더 배우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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