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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Nov 07. 2024

과학적 실재론과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철학에 관한 몇가지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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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학기는 대학원 박사과정 4학기다. 전공분야가 과학사회학이여서 사회 속에서 과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마지막 시간답게 제일 어려운 과학철학을 듣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중세시대의 철학자들과 과학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 지금까지였다. 중간고사를 보면서 고민했던 과학적 실재론과 도구주의 그리고 뉴턴의 만유인력과 갈릴레이의 도전에 대해서 질문들이 있고 그것에 대답을 해 보았다. 기존에 인문학적인 접근에서 이렇게 과학사적인 접근을 해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새로운 부분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오늘도 새로운 시각이 생성되는 시기였다. 우주가 대폭발해서 새로운 행성들이 탄생하듯이 두뇌속에서 새로운 이론들이 만나서 새로운 지혜가 생겨나는 것 같다. 




1. 과학적 실재론과 형식주의


질문 : 과학사에서 과학적 실재론(scientific realism)과 형식주의(formalism) 혹은 도구주의 (instrumentalism) 간에 있었던 여러 대립이 있다. 과학적 실재론과 형식주의 혹은 도구주의의 입장을 가능한 한 분명히 설명하고.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벨라르민(Bellarmine), 갈릴레이(Galilei) 등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였는지 간명히 설명해 보시오.


과학적 실재론과 형식주의(또는 도구주의)는 과학적 이론이 세상과 그 구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과학적 실재론에 앞서서 실재론 자체는 관찰자의 관점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부세계의 존재를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적 실재론을 보면 과학적 실재론자는 과학 이론이 기술하는 개념이나 구조가 물리적 세계에 실제로 대응하며,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실제 존재하는 세상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비해서, 형식주의(또는 도구주의)는 과학 이론이 진리의 탐구보다 예측과 설명의 유용성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하며, 이론 속 개념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이 두 입장 사이에서 여러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각기 다른 시각을 갖고 자신들의 이론적 주장을 펼쳤다. 


플라톤은 이데아적 실재론 혹은 형상적 실재론을 통해 물질적 세계 너머에 있는 형상(이데아) 세계가 진정한 실재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실재는 즉각적인 감각 경험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형상이라는 추상적 실재의 모방이나 그림자에 불과하며, 참된 실재는 그 형상 안에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존재를 통해 사물과 현상이 일관된 법칙에 따라 질서 있게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며,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되는 물리적 현상은 불완전하고 일시적이라고 생각하였다. 플라톤은 이러한 형상 세계가 진정한 실재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보았으며, 철학적 실재론적 관점에서 현실을 이해하려 하였다. 즉, 그에게 있어서 이데아는 단순히 설명을 위한 개념이 아니라, 이 세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완전한 실체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구는 완벽한 구의 구조로 창조되었으며 자연적인 균일한 운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플라톤적 전통의 천문학은 실제적인 현실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현상의 구원으로써 수학적인 설명을 하려는 것일 뿐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과학적 형식주의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경험의 대상에 대하여 일차적 실재론을 주장하면서 자연적 실재론 혹은 실체적 실재론을 주장하였다. 플라톤과 다르게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과 물질이 구분은 가능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경험을 할 때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지식은 감각적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추상화된다고 믿었다. 지식은 참되고 필수적인 일차원 원리들에서부터 시작해서 논리적 논증을 거쳐서 얻어진다고 가르쳤다. 본유적 지식은 없으며 지식은 외부세계로부터 투입되어서 통일된 원리들로 발전하여 궁극적으로는 일반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적 이론이 실제 세계의 구조를 설명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세계에 내재한 본질과 목적이 실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우주와 자연에 내재한 질서와 원리가 인간의 관찰과 분석을 통해 이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이론은 이러한 실재를 반영하는 도구라고 보았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형식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천동설을 바탕으로 한 행성의 위치와 궤도를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도입하였으며, 이 계산은 관찰된 천문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렇지만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론을 세우는 데 있어서 실제로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지 여부보다, 모델이 관측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느냐를 중시하였다. 따라서 천문학은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일련의 가정드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동설을 통해 우주의 질서와 움직임을 계산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모델이 현실의 구조를 실제로 반영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천동설이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수학적 도구로 유용하다고 판단하였으며,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형식주의 혹은 도구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는 실재에 대한 명확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과학적 이론이 관찰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중시하는 도구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코페르니쿠스 (Copernicus)는 실재론적 입장을 지지하며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관측된 행성 운동이 복잡하게 설명되던 기존 천동설을 비판하고, 행성들이 실제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보았다. 그는 지동설이 보다 간단하고 정확하게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우주의 구조를 단순히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실제로 태양 중심의 구조를 반영하는 모델이라고 생각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행성 운동의 본질적인 원인을 밝히고자 했으며, 이론이 우주의 실제 구조와 일치한다고 믿었다. 코페르니쿠스는 과학적 이론이 관측 결과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우주의 참된 구조와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코페르니쿠스는 과학적 이론이 실제로 우주의 본질과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실재론적 입장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벨라르민 (Bellarmine)은 형식주의적 입장을 지지하였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교회의 교리에 반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지동설을 천문학적 계산과 관찰을 위한 모델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다. 벨라르민은 지동설이 성경의 교리와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실제로 우주의 구조를 나타내는 진리로 받아들이는 대신, 단순히 수학적 계산의 편의를 위한 도구로만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벨라르민은 과학적 이론이 예측력을 제공하는 도구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여겼지만, 그것이 교리와 대립할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뭉네 도구주의 혹은 형식주의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벨라르민은 도구주의적 관점에서 과학적 모델은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모델이 실제 현실을 반영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지동설이 종교적 교리와 충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그의 신학적 신념에 기인한 입장이었다.


갈릴레이는 과학적 실재론을 지지하였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목성의 위성, 태양의 흑점, 금성의 위상 등 관측했다. 이러한 관측은 실재론적 입장에서 지동설을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종이었다. 갈릴레이는 천문학적 현상이 실제로 태양 중심의 구조와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과학적 관찰과 실험이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았으며, 그 과정에서 발견된 사실들은 물리적 세계의 실제적 구조를 반영한다고 믿었다. 형식주의에 반대편에서 지동설이 단지 수학적 계산을 위한 모델이 아니라, 자연의 본질과 우주의 실제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과학적 진리 탐구에 있어서 종교적 권위보다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였다. 과학적 이론은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진리로써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그의 입장은 실재론적 입장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과학이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수단임을 강조하였다.





2. 갈릴레이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비판


질문 "물체의 낙하 속도는 무게에 비례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갈릴레이의 주장을 분석하고 평가하시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주장은 물체의 낙하 속도가 그 무게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즉, 더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빠르게 떨어지며, 이 때문에 낙하 속도는 물체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에서 비롯된 생각으로, 그 당시 학문과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중세 학문에서도 널리 수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관찰을 통해 사물의 속성을 규명하기보다 논리적 추론과 철학적 사고를 통해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따라서 그들은 물체가 무겁다면 자연히 더 빠르게 떨어질 것이라고 추론했으며, 이는 물체의 무게가 중력이나 저항과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물체의 낙하 속도를 결정짓는다는 입장이었다.


갈릴레이는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속도 이론을 비판하였다. 그는 물체의 낙하 속도가 무게와 관계가 없으며, 모든 물체는 동일한 중력 가속도를 받기 때문에 무게에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갈릴레이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것이었으며, 오랜 시간동안 정설로 여겨진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에 큰 도전이 되었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실험적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실험과 논리적 사고를 결합하여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주장이 논리적 모순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논지를 설명하기 위해 사고 실험을 고안하였다. 갈릴레이는 서로 다른 무게를 가진 두 물체, 즉 무거운 물체 M과 가벼운 물체 m을 묶어 하나의 물체처럼 취급할 경우 이들이 떨어질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고찰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무거운 물체는 더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더 느리게 떨어져야 하므로, 두 물체를 결합하여 떨어뜨리면 이 결합된 물체는 중간 속도로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결합된 물체는 M와 m의 무게를 합친 것이므로 원래 M과 m이 따로 떨어질 때보다 더 빠르게 떨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실제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며, 근본적으로 틀렸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진공상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마찰력이 작용하는 공간에서 실험을 했을 것이다.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 공기저항을 덜 받은 물체와 더 받는 물체가 '마찰력'에 의해서 지면에 떨어지는 속도가 다르게 된다. 이러한 부분을 갈릴레이도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서 자신의 한계도 인정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이는 중력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자연을 연구하는 방법에 혁신을 일으켰다. 그는 이론적 추론에만 의존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 달리, 관찰과 실험을 통해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 했다. 이는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를 세운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갈릴레이의 접근 방식은 자연 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더욱 정확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실험적 증거가 기존의 철학적 사유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갈릴레이의 이러한 태도는 근대 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과학이 철학적 논증보다 경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갈릴레이의 이 실험과 논증은 과학적 방법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자연 철학적 추론이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졌지만, 갈릴레이는 실험과 수학적 분석을 통해 실재를 증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과학을 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도구주의로써 과학이 아니라 실재론으로써 과학에 접근하는 방법을 발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갈릴레이는 단순히 논리적 추론에 의존하는 대신 실제로 물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실험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려 하였다. 이를 통해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하였으며, 물체의 낙하가 무게에 비례한다는 기존 이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을 비판하고 자연을 설명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것이지만 중세시대를 지나오는 시기의 갈릴레이가 살던 패러다임에서는 매우 위험한 방법이었고 다양한 실험의 결과들이 오차를 낳는 것을 넘어서 기존의 세계관을 흔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었다. 


결국 갈릴레이의 이론과 실험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내며, 물리학에서 관찰과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냈다. 


물체의 낙하 속도가 무게에 비례한다는 주장을 반박함으로써, 갈릴레이는 근대 과학의 초석을 놓았으며, 이는 과학적 연구가 철학적 사유보다 실험적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이후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과 같은 과학적 발견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물리학뿐만 아니라 과학 전반에서 경험적 연구의 중요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3. 뉴턴과 만유인력 이론에 미친 케플러의 논리


문제 : 뉴턴이 어떻게 케플러의 법칙을 활용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항으로 여겨지는 지점들, 특히, 케플러의 제 3 법칙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만유인력법칙에 관한 뉴턴의 발견과정을 간명히 설명해 보시오.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 특히 제3법칙을 통해 행성의 운동을 지배하는 힘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였다. 케플러의 제3법칙에 따르면,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주기의 제곱은 궤도의 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뉴턴은 이 법칙에서 행성을 끌어당기는 힘의 성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뉴턴이 이것을 연역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케플러의 3가지 법칙

제1법칙(타원 궤도 법칙):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그리며 움직이며, 태양은 이 타원의 한 초점에 위치한다.

제2법칙(면적 속도 법칙): 행성은 태양과 연결된 선분이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게 된다. 즉, 행성의 속도는 태양과의 거리에 반비례하여 변한다.

제3법칙(조화 법칙):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궤도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뉴턴의 3가지 운동법칙

제1법칙(관성의 법칙) : "모든 물체는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 상태에 있거나 또는 일정한 속도로 직선 운동을 계속하려는 성질을 가진다." 이는 물체가 움직이거나 정지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을 설명하며, 물체가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달리는 차가 갑자기 멈추면 차 안에 있던 사람은 앞으로 쏠리게 되는데, 이는 관성 때문이다.

제2법칙(가속도의 법칙, F = ma) :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그 힘은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과 같다."
이 법칙은 물체에 작용하는 힘(F), 질량(m), 그리고 가속도(a)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며, 수식으로는 F=ma로 표현된다. 즉, 힘은 질량에 비례하고 가속도에 비례하여 물체에 운동을 일으킨다. 같은 힘이라도 가벼운 물체는 더 큰 가속도를 가지게 되고, 무거운 물체는 더 적은 가속도를 가지게 된다.

제3법칙(작용-반작용의 법칙) :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 즉,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하면, 그 힘에 대응하는 반대 방향의 힘이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바닥을 발로 밀면, 바닥도 같은 크기로 사람을 위로 밀어 올린다. 이로 인해 사람은 공중으로 뛰어오를 수 있다.


뉴턴의 케플러 법칙 적용 요약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을 바탕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도출하였다. 뉴턴은 모든 질량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제안했고, 이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두 질량의 곱에 비례함을 발견하였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케플러의 법칙의 연관성: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과 자신의 운동 법칙(특히 두 번째 법칙: F=ma 즈, 힘 = 질량 × 가속도)을 통해 케플러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였다. 뉴턴은 행성에 작용하는 중력이 궤도를 타원 형태로 만들고 있음을 보였다. 이는 케플러의 제1법칙과 일치한다. 행성의 속도가 거리에 따라 변하는 것은 케플러의 제2법칙과 부합하며, 이는 뉴턴의 역제곱 법칙으로 설명된다. 마지막으로, 케플러의 제3법칙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유도될 수 있다. 뉴턴은 만유인력이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사용해 행성의 공전 주기와 궤도 반지름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뉴턴의 발견과정

행성 운동에 작용하는 힘의 본질 탐색 :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들이 단순히 경험적 법칙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물리적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행성은 단순히 일정한 속도로 직선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곡선 운동을 한다. 이는 일종의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 구심력이 거리와 관계가 있음을 케플러의 법칙을 통해 추론했다.          

중력의 거리 제곱 반비례 법칙 도출: 뉴턴은 케플러의 제3법칙을 분석하면서,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동안 태양으로부터 받는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뉴턴은 이 법칙을 통해 태양이 행성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공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작용한다는 가정을 세웠다. 이를 통해 뉴턴은 이러한 힘이 태양과 행성 간의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상호작용임을 이해하였다.          

질량과 인력의 관계 수립: 뉴턴은 중력이 단순히 태양과 행성 사이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보편적 힘임을 깨달았다. 뉴턴은 행성과 태양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물체들, 그리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점에서 만유인력 법칙을 제안하였다. 그는 두 물체 사이의 인력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보았다.         

케플러의 법칙들을 만유인력 법칙으로 설명 :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특히, 케플러의 제3법칙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 올바른 가설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증적 근거가 되었다. 뉴턴은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보편적인 인력 법칙이 행성의 공전과 궤도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만유인력 법칙이 단순히 태양과 행성 간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원리임을 확립하였다.          

뉴턴의 이론적 통합과 과학 혁명 :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케플러의 법칙을 단순히 관찰로 끝나는 경험적 법칙에서 벗어나, 행성과 모든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물리적 원리로 자리 잡게 하였다. 케플러의 법칙이 뉴턴의 이론을 증명할 중요한 근거가 되었기 때문에, 뉴턴은 케플러의 제3법칙을 활용하여 중력의 본질을 이론적으로 통합하였다. 


케플러 제 3법칙과 역제곱의 힘

1665년 뉴턴은 N각형을 원의 내접시킨 거승로 일반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프린키피아에서도 이를 주석에 달아 놓았다. "각 변의 길이가 무한히 작아짐으로써 다각형은 원과 일치되고, 주어진 시간 동안 지나가는 호의 제곱을 반지름으로 나눈 값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원심력이다." 

N이 무한으로 갈 때 결국 다각형은 원이 되고 이것은 반지름이 r인 원에 근접하게 된다. 이 결과를 통해서 뉴턴의 제 2법칙은 F=ma와 케플러의 제 3법칙을 결합함으로써 태양과 행성간의 인력법칙에 대한 뉴턴의 느증을 요약할수 있다. 

뉴턴의 제 2법친과 케플러의 제 3법칙은 행성에 가해지는 힘은 태양을 중심으로 거리의 제곱의 역수임을 의미한다. 


결국,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에서 출발하여 만유인력 법칙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우주의 모든 물체가 보편적인 중력 법칙을 따름을 설명하였다. 케플러의 제3법칙은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근대 물리학의 탄생과 자연을 설명하는 과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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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물리학 혹은 고전역학의 주요한 주제는 과학이 형식적으로 사용되는가 아니면 실재를 규정하기 위해서 사용하는가이다. 실재를 규정한다면 실험과 탐구를 통해서 밝혀내지만 만약 형식적으로 사용된다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구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나오는 개념이 에테르나 유체역학의 '보텍스'개념이었고 이러한 매질인 에테르가 우주에 가득매워져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에테르의 존재를 기반으로 전기장과 자기장 그리고 만유인력과 같은 개념들이 전개되었다. 그러다 보니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했지만(이것을 이른바 현상의 구원이라고 부른다) 아인슈타인 이후에는 이러한 매질이 없어도 빛은 움직인다라고 하는 특수상대성이론과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현대물리학의 시기가 열린다. 이 과정을 이해하려면 기존에 사람들이 어떻게 과학과 현상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까지 그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과학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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