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의존은 결핍을 만들어낸다

관계를 읽는 시간

by 낭만민네이션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을 만들어 낸다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학자들은 하나같이


어릴적 버릇이 세살까지 간다고 했고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대상관계 이론가들은 그것은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했다


어릴적 기억들이 성인이 되어도 해소되지

못하고 불현듯 부메랑처럼 자신을 찾아올 때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때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보고

더 들어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자신이 해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어릴적 결핍은 해소되지 않는한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어서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사랑이 '전이'에 의해서만 전해지듯이

결핍도 전이에 의해서만 전해지는 듯하다


어릴적 부모님이 바쁘셔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의 감정이 항상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도

그 감정들이 뒤통수에 가만히 자리잡으면


얼른 집에가서 혼자만 있어 싶었다

어른이 되어도 이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움직이는 반면

외로움에 치를 떨어야 했다


혹독한 밤을 보내고 나면 다음날은

더 심해진 의존 경향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을 내가 의존하거나

나에게 의존하게 만들거나


그래서 사랑도 쉽게 시들어버렸고

나도 모르게 이별을 선포해 버렸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도 장마철 소나기처럼

한순간에 맑게 인 하늘처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라면서

자기 자신으로 회항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하나님의 존재와 정신의 깊은 그녀의 존재는

이런 나에게서 몇가지 씨앗을 뿌렸다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는 오로지

하나님 밖에 없는 절대 의존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았고

때론 기다리는 것 같았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서 다시 그 때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 언제나 서서 나를 돌아보고

혼자서 할 수 있도록 지켜주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의 뒤에서

손을 벌리고 있는 부모님들처럼.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하나님은 어느새 부모님에서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나의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선택을 해나가면서도

함께 상의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혼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함께 하면 더 즐거운 관계


돌보아 줄 수도 있지만 돌봄이 필요없는

관계도 될 수 있는 상황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관계 말이다


그렇게 나의 자아는 조금씩 적당하게 미분화되어서

나의 감정을 소중하게 다룰 줄도 알고


다른 이들의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지도 않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남은 그녀와의

상황도 언제나 그녀는 시간이 달랐다


내가 도와주고 싶다고 하면 도움이 필요 없었고

내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도


넘치는 환대와 진심으로 나오는 반응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시간은 쌍방향이라는 것을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기억할 수 있었고


관계의 행복이 관계의 종속이나 의존이 아니라

적절한 여유와 서로의 존재에


불어오는 바람결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배울 수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어떤 관계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관계가 된 것이겠다


이렇게 돌아보면 어릴적 결핍에서 벗어나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거의 5년이나 걸린 것 같다

그 사이에 누군가를 만나지 않은 것도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오롯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관계를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언제나, 쉬지 않고.


정신의학을 넘어서서 관계의 충만함이

우리를 우리로 지켜줄 수 있는 시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