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가르히란 누구인가_러시아의 숨겨진 지배집단 세력
학부에서부터 국제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국제관계에 대한 관심은 항상있었다. 석사에서도 국제정치경제학을 전공해서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도 생각된다. 그렇지만 항상 쓰지 않으면 기능은 쇠퇴한다.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한 국가 내의 그 국가를 움직이는 세력들이다. 실권을 잡은 이들이 생각하는 방법론이나 이론을 이해하면 국제정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시리즈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의 정치적인 그룹들을 알아보려고 한다. 미래의 어느시점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후에 소비에트 연방이 추구한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더욱이 사무엘헌팅턴과 같은 학자들이 말한 문명의 충돌은 국가를 단일 행위자로 놓고, 모든 국민들이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 놓은 세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그 역할을 한 그룹이 바로 올리가르히다. 올리가르히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소수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과두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이 용어는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국가의 막대한 부와 권력을 독점하며 정치를 좌우했던 신흥 초부유층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된다. 이들은 과거 소련 체제 하의 국영 자산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들이다 한국의 재벌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국가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재벌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대다수의 전문가와 러시아 국민은 올리가르히가 없었다면
러시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평가하곤 한다.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탄생은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개혁과 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소련은 관료주의의 부패와 경제 정체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으며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시장 경제 요소를 도입하여 시스템을 혁신하고자 했으나, 이는 예상치 못한 권력 공백과 부의 편중을 야기했다. 결국 이 시기에 권력층과 결탁하여 정보를 선점한 소수의 인물이 국가 자산을 헐값에 사들이며 올리가르히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 러시아의 정치 구조와 푸틴의 집권 과정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된다. 오늘날 러시아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올리가르히와 정치 권력의 공생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이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한 사람의 강력한 독재만을 떠올리지만, 사실 현재의 푸틴을 만들고 그 자리를 유지하게 한 것은 올리가르히라는 거대한 자본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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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옐친 정부 시절부터 이들은 국가의 주요 인프라인 석유, 가스, 통신, 광물 자원을 장악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정부가 재정 위기에 빠질 때마다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국가 기간산업의 지분을 담보로 챙기는 등 국가를 상대로 거대한 비즈니스를 벌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러시아의 중산층은 붕괴했고 대다수의 국민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야만 했다. 올리가르히는 자신들이 소유한 언론 매체를 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등 국가 자체를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종은 결국 더 강력한 국가주의자인 푸틴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올리가르히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는 것은 자본과 권력이 결탁했을 때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이다. 이제 본론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권력을 유지했으며, 푸틴에 의해 어떻게 재편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985년 취임한 고르바초프는 정체된 소련 사회를 깨우기 위해 경제적 자유화를 시도했다. 1987년 국경기업법과 1988년 협동조합법이 통과되면서 사기업 형태의 활동이 처음으로 허용되었다. 이때 등장한 초기 올리가르히들은 국가 기관의 지원이나 권력층과의 인맥을 활용해 사업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공산주의 청년동맹의 후원을 받아 컴퓨터 수입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역시 정부 연구소의 자금을 바탕으로 자동차 수입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의 성공은 자수성가라기보다는 체제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권력과의 접점을 얼마나 잘 활용했느냐에 달려 있었다. 당시에는 법적 테두리가 명확하지 않아 먼저 깃발을 꽂는 사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구조였다. 시장 경제로의 이행이라는 명분 하에 국가의 자산이 조금씩 소수의 손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올리가르히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의 권력 네트워크였다.
부모의 재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당 간부와 연결되어 있는지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했다. 국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으며 독점적 지위를 누린 이들은 일반 국민은 상상도 못 할 속도로 자산을 불려 나갔다. 이 시기의 사업은 생산적인 활동보다는 수입 규제나 가격 차이를 이용한 중개 무역이 주를 이루었다. 외국의 선진 기술이나 사치품을 들여와 국내에 고가로 판매하며 자본의 기초를 닦았다.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 틈을 타 공적 자금을 사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이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점차 정치적 영향력까지 확보하려는 야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 시기의 유착 관계가 훗날 러시아 정치를 뒤흔드는 거대 올리가르히의 모태가 되었다.
1991년 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되면서 러시아는 전례 없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보리스 예친이 권력을 잡으며 신자유주의적 충격 요법을 도입했으나 이는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의 가격 통제가 해제되자 물가는 순식간에 수십 배로 치솟았고 국민의 예금은 휴지 조각이 되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중산층은 완전히 몰락하고 대다수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 속에서도 자본을 미리 확보한 올리가르히들에게는 오히려 기회의 장이 열렸다. 가치가 폭락한 국가 자산을 헐값에 쓸어 담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자 물물교환이 성행했고 그 틈을 타 마피아 조직들까지 득세하며 사회는 극도로 혼탁해졌다.
혼란기에 부를 쌓은 이들은 단순 무역을 넘어 에너지와 금융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다. 국가가 관리하던 은행 시스템이 무너지자 사설 은행들을 세워 국가 자금을 운용하며 이자 수익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은 다시 정치인들에게 로비 자금으로 흘러 들어가 그들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국민은 굶주림에 허덕였지만 올리가르히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자신들만의 제국을 건설했다. 언론사를 인수하여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작업도 병행하며 권력을 요새화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경제 발전보다는 자신들의 자산 증식에만 몰두하여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90년대 초반의 이러한 풍경은 법치보다는 돈과 권력이 우선시되는 러시아식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예친 정부는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막기 위해 속전속속으로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 핵심 수단이었던 '바우처 민영화'는 국민 모두에게 기업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쿠폰을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기 힘들었던 빈곤층 국민은 이 쿠폰의 가치를 알지 못했고 푼돈을 받고 올리가르히들에게 팔아버렸다. 주식과 시장 경제에 무지했던 일반 대중의 약점을 이용해 올리가르히들은 전국을 돌며 바우처를 싹쓸이했다. 결국 수만 개의 국영 기업 지분이 아주 적은 수의 인물들에게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부의 재분배라는 명분은 사라지고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을 극단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자산 탈취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올리가르히가 국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5년의 '주식 담보 대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예친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자금이 절실히 필요했다. 올리가르히들은 정부에 대출을 해주는 대신 국가 소유의 알짜 에너지·광물 기업 지분을 담보로 요구했다. 정부가 돈을 갚지 못하면 그 지분은 고스란히 올리가르히의 소유가 된다는 조건이었다. 예상대로 정부는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했고 석유, 가스, 니켈 등 국가의 젖줄과 같은 기업들이 올리가르히의 손에 넘어갔다. 이를 통해 이들은 경제를 넘어 정치권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이 거래는 러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부패한 정경유착의 사례로 꼽히며 국가의 미래를 자본에 팔아넘긴 행위로 평가받는다.
재선을 노리던 예친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추락하자 올리가르히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 만약 공산당이 집권한다면 민영화된 자산이 다시 국유화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를 포함한 '7인 은행가' 집단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예친의 선거 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자신들이 소유한 방송 매체를 24시간 동원해 예친을 찬양하고 공산당 후보를 깎아내리는 여론전을 펼쳤다. 공포 마케팅과 불법 선거 자금이 난무하는 가운데 예친은 결국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이 승리는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자본이 정치를 완전히 정복했음을 선포한 사건이었다. 이후 올리가르히들은 정부 요직을 차지하거나 국책 결정에 직접 관여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올리가르히의 권력이 정점에 달하면서 러시아의 국가 시스템은 사실상 그들의 사유물로 전락했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안녕이 아니라 소수 올리가르히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이들은 범죄 조직과도 연계하여 반대 세력을 제거하거나 불법적인 산업에 손을 뻗치는 등 폭력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청부 살인이 횡행하고 법보다는 돈의 힘이 우선시되는 암울한 시기가 계속되었다. 국가 경제의 50~70%를 단 7명의 인물이 지배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혁신이나 일자리 창출은 뒷전이었고 오로지 자원 수탈과 자본 유출에만 몰두했다. 국민은 이들을 증오했으나 국가 권력조차 그들의 꼭두각시였기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극도의 부패와 불평등은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키우는 토양이 되었다.
1999년 말 예친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초기에 올리가르히들은 푸틴 역시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하수인에 불과할 것으로 오판했다. 실제로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은 푸틴의 인지도를 높여주며 그의 집권을 도운 스폰서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푸틴은 권력을 잡자마자 자신의 본색인 강력한 국가주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분열된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의 부를 독점한 배신자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자신의 본거지인 KGB 후신 FSB 출신들인 '실로비키' 세력을 요직에 앉혀 친위 세력을 구축했다. 국민이 갈망하던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하며 그는 올리가르히를 향한 칼날을 갈았다.
푸틴이 가장 먼저 공격한 대상은 올리가르히의 목소리 역할을 하던 민영 언론사들이었다. 취임 직후 그는 비판적인 보도를 일삼던 구신스키의 NTV 본사를 특수부대를 동원해 습격했다. 구신스키는 탈세와 횡령 혐의로 체포되었고 결국 자신의 미디어 제국을 국영 기업에 넘기고 국외로 망명해야 했다. 이어 푸틴을 키워줬다고 자부하던 베레조프스키 역시 푸틴과 대립각을 세우다 검찰의 전방위 수사를 받고 영국으로 도망쳤다. 자신들의 힘으로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믿었던 이들은 국가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푸틴은 여론의 중심인 방송을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독재 기반을 공고히 다지는 데 성공했다. 올리가르히가 누리던 '정치적 자유'는 그렇게 종말을 고했다.
2000년 7월 푸틴은 러시아의 주요 부호 21명을 스탈린이 머물던 쿤체보 별장으로 불러 모았다. 이 장소는 과거 대숙청의 명단이 작성되던 공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푸틴은 이 자리에서 올리가르히들에게 과거의 불법적인 자산 획득은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다만 여기에는 단호한 조건이 붙었는데 그것은 '정치에 절대 관여하지 말 것'과 '세금을 성실히 낼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푸틴과 올리가르히 사이의 이른바 '사회적 계약' 혹은 통보였다. 부자로 살게는 해주되 국가의 주인 노릇을 하려 든다면 가차 없이 파괴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대부분의 올리가르히는 살아남기 위해 푸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푸틴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걷던 러시아 최대 석유 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본보기로 숙청되었다. 그는 야당에 자금을 지원하고 푸틴의 부패를 면전에서 비판하며 정치적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기업인 유코스의 지분을 미국 기업에 넘기려 하며 푸틴의 국가 에너지 전략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2003년 푸틴은 특수부대를 급파해 시베리아 공항에서 그를 체포했고 호도르코프스키는 감옥에서 10년을 보냈다. 그의 거대 기업 유코스는 해체되어 국영 기업에 흡수되었으며 이 사건은 러시아 시장 경제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전 세계는 푸틴 정권에 도전하는 자가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똑똑히 목격하게 되었다. 이후 러시아에서 푸틴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은 사실상 전멸했다.
기존의 올리가르히들이 숙청된 자리에는 푸틴에게 절대충성하는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섰다. 푸틴의 어린 시절 유도 친구인 로템부르크 형제나 개인 은행가로 불리는 코발축크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국가 자원과 주요 사회 기반 시설을 관리하는 국영 기업의 수장 자리를 꿰차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정보기관과 군 출신을 뜻하는 실로비키와 올리가르히를 합쳐 이들을 '실로바르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과거의 올리가르히들처럼 독자적인 정치를 꿈꾸지 않으며 오로지 푸틴의 통치 자금을 관리하고 지시를 수행하는 하수인 역할을 한다. 국가 경제가 푸틴이라는 1인 지배자의 거대한 주식회사처럼 운영되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이로 인해 부의 독점은 과거보다 더욱 심화되었으며 경제 구조는 더욱 폐쇄적으로 변했다.
푸틴이 올리가르히를 숙청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운 좋게 찾아온 고유가 덕분이었다. 2000년대 들어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서 러시아의 경제는 연평균 7% 이상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올리가르히에게서 거둬들인 세금과 에너지 수익이 국민의 연금과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자 사람들은 푸틴을 구세주로 떠받들었다. 빈곤율은 급격히 감소했고 생활 수준이 향상되자 대중은 민주주의의 후퇴나 독재를 기꺼이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은 기술 혁신이나 체질 개선의 결과가 아니라 단순히 자원을 비싸게 판 덕분이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여전히 자원 수출에만 의존하는 기형적인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지표 뒤에는 푸틴 측근들의 비정상적인 부의 축적이 계속되고 있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올리가르히들에게 새로운 위기와 시험대가 되었다. 전 세계적인 경제 제재로 인해 해외에 있던 그들의 호화 요트와 저택, 자산들이 압류되거나 동결되었다. 일부 올리가르히는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으나 푸틴은 오히려 이들에게 특별세를 부과하며 압박을 강화했다. 전쟁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올레그 팅코프 같은 인물은 기업을 헐값에 매각하고 나라를 떠나야 했다. 또한 2022년 한 해 동안 수많은 기업 간부가 의문의 돌연사를 당하는 등 공포 정치가 극에 달했다. 살아남은 올리가르히들은 이제 푸틴의 전쟁 비용을 대는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그의 눈치만 살피는 처지가 되었다. 전쟁은 푸틴이 남은 민간 자본까지 국가의 통제 아래 완전히 귀속시키는 구실이 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푸틴과 그의 측근들이 정치와 경제를 모두 장악한 완전한 일인 지배 체제이다. 90년대 올리가르히가 주인이고 정치가 손님이었다면, 이제는 푸틴이 주인이고 올리가르히는 관리인에 불과하다. 국가의 부는 소수의 충성파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새로운 혁신 기업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해외로 떠났고 국민은 관영 언론이 쏟아내는 프로파간다에 노출되어 있다. 푸틴이 죽거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 견고한 카르텔은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를 지배하는 그림자였던 올리가르히는 이제 푸틴이라는 거대한 태양 아래 그 형체를 잃어버렸다. 결국 이들의 역사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자본과 만났을 때 국가가 어떤 경로로 쇠락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서사라 할 수 있다.
올리가르히의 탄생과 성장은 러시아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뼈아픈 실책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민영화 과정과 정경유착은 국가의 소중한 자산을 소수의 탐욕스러운 개인들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친 시대의 혼란 속에서 이들은 국가 권력을 조롱하며 자신들만의 제국을 건설했으나, 그 기반은 국민의 고혈과 부패에 근거하고 있었다. 푸틴의 등장은 이러한 무질서에 지친 국민이 선택한 결과였으며, 그가 행한 초기 숙청 작업은 대중에게 정의 구현처럼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주인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국가의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적 모순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 권력이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시장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권력에 대한 종속성만 심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주의와 법치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체제 전환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경고한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사례는 자본과 권력의 건강한 긴장 관계가 무너졌을 때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기형적으로 변하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훈이다. 오늘날 러시아는 푸틴을 중심으로 한 견고한 지배 체제 아래 있으며, 과거의 올리가르히들은 이제 그 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푸틴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경제와 언론을 완벽하게 장악했기 때문이다. 신흥 올리가르히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푸틴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전쟁 비용을 조달하는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는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향수와 통제된 정보 속에서 여전히 푸틴을 지지하고 있으나, 이는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자원 의존적인 경제 구조와 창의성이 말살된 사회 시스템은 러시아의 미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푸틴이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지는 순간, 그간 억눌려왔던 갈등과 권력 투쟁이 한꺼번에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러시아가 진정한 현대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올리가르히와 독재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한다. 현재의 러시아를 바라보는 것은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거대한 드라마를 목격하는 것과 같으며, 그 끝이 어디일지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앞으로 국제질서는 페이팔 마피아아 KGB마피아의 싸움이 될 것이다. 마피아들끼리의 싸움이라서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4276692i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52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