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마사오가 둔갑시킨 후쿠자와유키치
처음읽는 한국현대철학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다가 후쿠자와 유키치를 만났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오늘날 일본 1만 엔권 지폐의 주인공이자 근대화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후쿠자와의 모습은 전후 일본의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에 의해 정교하게 편집된 결과물이다. 마루야마는 패전 직후 일본의 비민주적인 질서를 타파하기 위해 과거의 인물인 후쿠자와를 호출했다. 그는 후쿠자와를 천황제에 저항하고 개인의 독립을 외친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재해석하여 대중에게 제시했다. 이는 패망한 일본에 새로운 민주주의적 주체를 세우기 위한 마루야마의 고도화된 사상적 전략이었다.
그러나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재구성은
후쿠자와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은폐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근대화의 아버지로 세움으로써 전후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자부심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후쿠자와의 아시아 침략 옹호론인 '탈아론'은 의도적으로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우리는 마루야마가 만든 후쿠자와라는 안경을 통해 근대 일본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사상사 연구의 거두로서 전후 일본의 지적 지형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이 전쟁의 참화에 빠진 원인이 성숙한 근대적 자아의 부재에 있다고 진단했다. 마루야마는 일본인의 내면에 '주체적 개인'이 부재함을 탄식하며 이를 메울 수 있는 역사적 모델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마루야마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가장 완벽한 인물로 낙점되었다.
그는 후쿠자와의 '학문의 권장'을 재해석하며 그 속에 담긴 자립과 평등의 가치를 부각시켰다. 마루야마에게 후쿠자와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전후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살아있는 정신이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시민'의 전형으로 묘사하며 일본인의 각성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영웅적 묘사는 후쿠자와가 지녔던 국가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측면을 의도적으로 가렸다. 마루야마의 붓 끝에서 후쿠자와는 침략의 사상가가 아닌 자유주의의 수호자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났다. 이제 우리는 마루야마가 왜 후쿠자와의 어두운 면을 지우고 밝은 면만을 비췄는지 그 의도를 물어보아야 한다.
학문의 권장 주요내용
인간 평등과 학문의 목적 :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현실에서 발생하는 빈부격차와 신분 차이는 오직 '학문을 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즉, 공부는 개인의 성공과 신분 상승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다.
실용적인 '실학' 공부 : 형이상학적인 옛 문학이나 허례허식보다는 지리, 물리, 경제 등 일상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실학(實學)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문명화를 위한 지름길이다.
개인의 독립이 곧 국가의 독립 :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아는 독립된 개인이 모여야 국가도 비로소 외세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이 깨어 있어야 정부의 횡포를 막고 진정한 근대 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논리다.
1945년 일본의 패전은 단순한 전쟁의 패배를 넘어 근대 일본이 쌓아온 모든 가치의 붕괴를 의미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잿더미가 된 도쿄에서 일본이 왜 광기 어린 전쟁으로 치달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천황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자아를 상실한 일본인의 무책임한 구조를 '무책임의 체계'라 명명했다. 이러한 비민주적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그는 일본 역사 내부에서 민주주의의 씨앗을 찾아야만 했다. 외부에서 이식된 민주주의는 뿌리내릴 수 없기에 일본인 스스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토착적 근거가 필요했다. 그 지점에서 마루야마는 막부 체제를 비판하며 개인의 독립을 외쳤던 후쿠자와 유키치를 다시 발견해냈다. 후쿠자와는 천황제 국가주의가 확립되기 전, 자율적인 시민 사회를 꿈꿨던 선구자로 마루야마에게 비춰졌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호출함으로써 전쟁 전의 어두운 역사와 단절된 새로운 근대의 기점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후쿠자와의 목소리를 빌려 일본인들에게 "국가에 순종하는 신민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국민이 되라"고 일갈했다. 호출된 후쿠자와는 마루야마의 손에 의해 패전 일본의 상실감을 메워줄 지적인 구원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마루야마 마사오에게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이 서구와 대등한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는 메이지 초기 후쿠자와가 보여준 비판적 지성과 야당 정신이야말로 일본 근대의 진정한 원형이라고 보았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가 강조한 '독립자존(獨立自尊)'이 일본인의 노예 근성을 치유할 유일한 약이라고 굳게 믿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텍스트에서 제국주의적 팽창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끄집어내는 데 집중했다.
이는 전후 일본인들에게 "우리의 역사에도 민주주의적 자산이 있었다"는 지적 위안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통해 천황제라는 거대한 벽에 균열을 내고 그 자리에 시민적 주체를 세우려 했다. 그는 니시 아마네가 만든 관료적 체계보다는 후쿠자와의 민간 주도적 계몽 정신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후쿠자와의 호출은 일본 지성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전통의 재발견'이자 기획된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는 후쿠자와를 단순한 계몽가가 아닌, 서구의 사상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보편적 철학자로 격상시켰다. 마루야마의 붓 끝에서 후쿠자와는 일본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신성한 지위를 부여받으며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했다.
하지만 마루야마의 이러한 기획은 패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다분히 목적론적인 해석이었다. 그는 일본의 민주적 전화를 위해 후쿠자와라는 인물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며 그의 다면적인 성격을 단순화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가 지닌 권력 지향성이나 아시아에 대한 멸시를 '시대적 한계'라는 이름으로 너그럽게 포용했다. 그는 후쿠자와의 빛나는 광휘를 부각시켜 그 이면에 드리운 제국주의의 짙은 그림자를 교묘하게 가려버렸다. 이는 전후 일본 지식인들이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새로운 문명인으로 변신하기 위한 지적 알리바이가 되기도 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라는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함으로써 일본인들이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게 도왔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논리를 빌려 일본이 다시금 아시아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암묵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결국 마루야마가 호출한 후쿠자와는 실재했던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 마루야마가 발명한 '이상적 근대인'에 가까웠다. 이러한 재해석은 일본 근대사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가로막고 편향된 영웅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는 이제 마루야마가 세운 이 화려한 신전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그 어두운 공간을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에게는 여전히 1만엔권의 영웅으로 근대성을 '지식' 차원에서 끌어올린 역사적인 인물로 인식된다. 역사적인 변혁기에 등장하는 혁명가들의 사상은 대부분 '한계'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데 후쿠자와 역시 개화론 뒤에 숨겨진 제국주의가 미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명론의 개략의 주요 내용
문명의 본질은 '정신'이다 : 단순히 서양의 기계를 들여오는 것이 문명이 아니다. 문명의 핵심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정신(기풍)이 발달하는 것이다. 겉모습보다 국민의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진정한 근대화가 가능하다.
문명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 당시 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침략 위협을 받고 있었다. 후쿠자와는 일본이 나라를 지키고 국가 독립(국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구 문명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문명화는 생존 전략이었다.
문명 발전의 단계론 : 세계를 야만-미개-문명의 단계로 나누고, 일본을 '미개' 단계로 진단했다. 따라서 자존심을 버리고 이미 '문명' 단계에 도달한 서양의 지식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배워서 빠르게 단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재해석하며 그를 일본 최초의 '독립된 개인'으로 정의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후쿠자와의 문장에서 국가의 명령에 굴하지 않는 단독자로서의 실존적 고뇌와 결기를 찾아내려 애썼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가 외친 "일신(一身) 독립이 곧 일국(一國) 독립"이라는 구절을 전후 민주주의의 핵심 교리로 승화시켰다. 그는 이 문장을 국가주의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개인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는 민주적 원리로 읽어냈다. 이러한 해석은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일본 사회에 엄청난 사상적 충격을 주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권력과 거리를 두며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야인 지식인의 전형으로 묘사하며 찬사를 보냈다.
마루야는 후쿠자와가 창립한 게이오 의숙을 관립 대학에 대항하는 민간 자율성의 보루로 규정하며 그 가치를 높였다. 마루야마의 시선 안에서 후쿠자와는 서구의 존 스튜어트 밀이나 토크빌과 같은 반열의 자유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후쿠자와의 언어 속에서 동양의 성리학적 위계를 무너뜨리는 근대적 평등의 논리를 발견하여 체계화했다. 니시 아마네가 국가의 도구를 만들었다면, 후쿠자와는 그 도구를 휘두를 주체를 만들었다는 것이 마루야마의 평가였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실학(實學)' 개념 역시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닌 '정신적 자립'의 도구로 재구성했다. 그는 후쿠자와가 강조한 서구 문물의 수용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일본인의 지적 자립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마루야마에게 후쿠자와의 실학은 낡은 관습과 미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비판적 이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가 한자어의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쉬운 언어로 대중과 소통하려 했던 태도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소통 방식이야말로 민주주의적 여론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지적 토대라고 마루야마는 굳게 믿었다. 후쿠자와를 일본 근대 지성사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물로 그리며 대중적 인기를 견인했다. 마루야마의 정교한 논리 덕분에 후쿠자와는 제국주의의 공범이 아닌, 일본 민주주의의 원형을 제시한 성자로 격상되었다.(이렇게 이야기하면 뉴라이트를 비롯한 일본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겠다.) 그는 후쿠자와의 사유가 지닌 역동성을 부각시켜 전후 일본이 나아갈 '시민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통해 일본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자생적 근대화론의 근거를 마련했다. 후쿠자와는 마루야마라는 탁월한 연출가를 만나 전후 일본의 가장 매력적인 지적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마루야마의 이러한 재창조는 후쿠자와의 텍스트를 파편적으로 취사선택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후쿠자와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유보할 수 있다고 말한 대목들은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자유주의'가 사실은 일본의 국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적 가치에 불과했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는 후쿠자와의 화려한 수사 뒤에 숨겨진 차가운 현실주의와 권력 의지를 '민주주의적 열정'으로 미화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시민의 대변인으로 묘사했지만, 실제로 후쿠자와는 민중을 무지한 계몽의 대상으로만 보았던 인물이다. 지식을 중심으로 국민과 국민이 아닌 사람으로 나누는 방식은, 더 나아가 문명을 가진 민족과 아닌 민족으로 나눌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제국주의를 합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마루야마의 미화는 후쿠자와의 사유가 지닌 모순을 직시하기보다 찬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전후 일본의 자유주의는 마루야마가 만든 후쿠자와라는 허구의 거울을 보며 자신을 다듬는 우를 범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통해 일본인의 긍지를 회복시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사의 진실을 가리는 장막을 쳤다. 그는 후쿠자와를 '시민적 자유주의자'라는 틀에 가두어버림으로써 그의 사유가 지닌 제국주의적 역동성을 은폐했다. 이제 우리는 마루야마가 후쿠자와의 미소 뒤로 숨겨놓은 날카로운 칼날인 '탈아론'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어떻게 제국주의자가 시민을 중심으로 자유를 외치는 인물로 남을 수 있었을까? 마치 다크나이트의 고담시장과 베트맨의 관계가 생각나기도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든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화에서 가장 의도적으로 지워진 부분은 바로 '탈아론(脫亞論)'이다. 탈아론은 일본이 아시아의 이웃인 한국, 중국과 결별하고 서구 열강의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침략적 선언이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보편적 인권주의자로 묘사하기 위해 이 독소적인 주장을 주변적인 실책으로 치부했다. 그는 탈아론이 당시 서구 열강의 위협 속에서 일본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변명하며 후쿠자와를 옹호했다. 기사에 따르면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침략적 발언들을 그가 지닌 전체 사상 체계와 분리하여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는 후쿠자와를 전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유지하기 위해 그가 저지른 지적 죄악을 은폐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탈아론은 후쿠자와 사상의 우발적인 부산물이 아니라
그의 문명론이 도달한 필연적인 결론이었다.
후쿠자와는 문명이라는 잣대로 아시아 이웃 국가들을 '야만'으로 규정하며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했다. 마루야마는 이러한 후쿠자와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직시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전쟁 책임을 성찰할 기회를 스스로 좁혔다. 결국 마루야마가 만든 후쿠자와는 아시아 민중의 고통을 외면한 채 세워진 위태로운 자유주의의 상징이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가 한국의 갑신정변 주역들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그의 '계몽적 연대'의 증거로 강조했다. 하지만 후쿠자와의 지원은 한국의 자주적 독립보다는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가까웠다. 후쿠자와는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한국인들을 "구제 불능의 야만인"으로 매도하며 침략의 정당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마루야마는 이러한 후쿠자와의 표독스러운 이면을 '좌절된 개혁가의 분노'로 아름답게 포장하여 대중에게 전달했다. 그는 후쿠자와의 시선 속에 담긴 오만한 우월주의와 차별의 논리를 '근대화에 대한 열정'으로 환치시켰다. 이러한 마루야마의 태도는 전후 일본 사회가 아시아 피해 국가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마루야마가 만든 후쿠자와를 보며 자신들이 아시아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문명화시켰다는 착각에 빠졌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사유 속에 내재된 폭력성을 걸러냄으로써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에 도덕적 흠결을 남겼다. 그는 후쿠자와를 '시민 지식인'으로 부활시켰지만, 정작 그 지식인이 휘둘렀던 언어의 폭력은 기록하지 않았다. 마루야마의 침묵 속에서 후쿠자와의 탈아론은 일본의 우익들에게 계승되어 침략의 논리로 재활용되는 비극을 낳았다.
아래에 공유한 기사들은 마루야마 마사오가 후쿠자와를 '시민적 주체'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실을 편집했는지 고발한다. 그는 후쿠자와가 청일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라 찬양하며 일본의 군사 행동을 독려했던 사실을 가볍게 넘겼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사상에서 '민주주의'라는 예쁜 꽃만을 꺾어 전후 일본이라는 화병에 꽂아두려 했다. 그러나 뿌리인 제국주의와 단절된 그 꽃은 결국 생명력을 잃고 가짜 꽃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마루야마의 학문적 권위는 후쿠자와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오랫동안 금기시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조차 마루야마가 세운 후쿠자와라는 신화 앞에서 침묵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를 통해 일본을 구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근대성을 정직하게 마주할 거울을 깨뜨렸다. 그는 후쿠자와의 침략성을 감춤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폭력적 본질을 성찰할 기회를 박탈한 셈이 되었다. 마루야마가 창조한 후쿠자와라는 인물은 전후 일본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화려한 위장막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위장막을 걷어내고 마루야마의 기획이 남긴 상처와 과제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후쿠자와의 영향력을 받아 한국에서 개혁을 일으키려 했던 세력들에 대해서도 어느정도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실패한 결과가 아니라 성공한 결과가 도래했을 때를 예상할 수 있게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주요 이론
초국가주의의 논리 (Super-ultranationalism)는 일본 파시즘이 서구의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어떻게 다른지 분석한 이론이다.
천황제 파시즘: 서구 파시즘은 하부로부터의 독재적 지지가 기반이지만,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억압의 이양' 구조를 가졌다. 상부에서 받은 압박을 하부로 전가하며 전체가 하나의 질서 속에 묶인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곧 윤리적 선악의 기준이 되어,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는 양심의 자유가 질식된 상태를 비판했다.
작위(作爲)로서의 정치는 마루야마가 정치를 자연적인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성(成)의 논리 vs 작(作)의 논리: 일본 전통 사회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Becoming)"는 '성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면, 근대 정치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는(Making)" '작의 논리'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의 본질: 민주주의를 이미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시민들이 끊임없이 가꾸고 만들어가야 하는 '영구적 운동'으로 정의했다.
고층(古層, Kosō) 이론은 일본 사상사를 분석하며 제시한 개념으로, 외래 사상이 들어와도 일본 고유의 사고방식이 이를 변형시킨다는 이론이다.
집요한 저층: 불교, 유교, 서구 사상이 일본에 들어오면 겉모습은 바뀌지만, 그 심층에는 일본 고유의 사고 패턴인 '저층(Substratum)'이 남아 외래 사상을 일본식으로 굴절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이 왜 서구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도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나 근대성을 확립하기 어려웠는지를 설명했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재구성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전후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들은 마루야마의 해석을 통해 패전의 굴욕을 씻고 자신들이 '본래부터 민주적인 민족'이었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후쿠자와는 1만 엔권 지폐의 모델로 선정되며 일본의 번영과 근대성을 상징하는 국가적 아이콘으로 완전히 정착했다. 마루야마의 사유는 일본 교육 현장에 깊숙이 침투하여 후쿠자와를 '성인(聖人)'과 같은 위대한 스승으로 가르치게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의 전후 세대들은 후쿠자와가 아시아 침략의 사상적 기반을 닦았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한 채 성장했다. 마루야마의 기획은 성공적이었으나, 이는 일본이 과거사와 화해하는 대신 이를 은폐하고 미화하는 구조를 고착시켰다.
일본 지성계는 마루야마가 만든 후쿠자와의 틀 안에서 사유하며 아시아와의 연대보다는 일본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거인의 그림자는 오늘날 일본 우경화의 사상적 뿌리와도 묘하게 닿아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가 만든 후쿠자와는 일본이 아시아로부터 고립되어 서구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지적 장벽이 되었다. 한국 지성사 역시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든 후쿠자와 유키치의 이미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의 초기 개화파 연구자들은 마루야마의 시각을 그대로 수입하여 후쿠자와를 긍정적인 근대화의 모델로 평가하곤 했다. 유길준과 같은 인물들이 후쿠자와를 통해 서구를 이해했듯이, 현대 한국 학자들도 마루야마를 통해 후쿠자와를 읽었다. 이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문제들을 성찰하기보다 일본식 근대화 모델을 추종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마루야마가 은폐한 후쿠자와의 침략성은 한국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학문적 공백으로 남았다. 한국 지식인들은 마루야마의 '시민적 주체' 이론에 매료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제국주의적 위선을 간과했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일본이 만든 근대의 틀 안에서 우리 역사를 재단하는 '지적 종속'의 원인이 되었다. 마루야마의 후쿠자와론은 한국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강한 국가'만을 동경하는 비뚤어진 근대성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우리는 마루야마라는 필터를 거친 후쿠자와를 보며, 정작 우리를 고통에 빠뜨린 사유의 실체를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마루야마의 영향은 한국 지성사가 지닌 주체적인 근대성 정립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었다. 어쩌면 오늘날 뉴라이트의 잘못된 세계관은 여기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요시다 쇼인은 대 놓고 제국주의를 이야기했지만 말이다.
오늘날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론은 비판적 연구자들에 의해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후쿠자와의 탈아론과 침략적 발언들이 마루야마의 신화 속에서 빠져나와 적나라하게 분석되고 있다. 지식인이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마루야마의 사례는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던진다. 마루야마가 만든 후쿠자와를 넘어설 때 비로소 한일 관계의 진정한 과거사 청산과 화해가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는 니시 아마네의 번역어와 후쿠자와의 계몽 뒤에 숨겨진 제국주의의 발톱을 동시에 응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마루야마의 사상적 기획은 패전 일본을 구했을지 모르나, 아시아 전체의 사상적 건강함에는 해를 끼쳤다.
한국 지성사는 이제 마루야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시각으로 근대 일본과 후쿠자와를 재평가해야 한다. 역사는 특정 인물의 영웅담이 아니라, 그 시대가 지녔던 한계와 폭력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루야마가 만든 후쿠자와라는 거대한 우상을 허무는 작업은 우리 지성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이제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거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우리만의 두 발로 역사의 진실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미친 한국 개혁파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역사를 바로 잡고 제대로 된 근대성을 묻기 위해서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결되지 않았던 후쿠자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아마도 이 말은 어쩌면 마루야마가 만들어낸 말이 아닐까도 생각이 된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창조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전후 일본이 절망 속에서 건져 올린 지적 구명보트와 같았다. 그는 후쿠자와를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변신시켜 일본인의 부서진 자긍심을 치유하고 민주주의의 희망을 싹틔웠다. 하지만 그 구명보트 밑바닥에는 아시아 침략과 탈아론이라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음을 마루야마는 외면했다. 마루야마는 지식인의 고도화된 편집 기술을 통해 과거의 괴물을 근대의 성자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부렸다. 이 마법은 일본을 번영의 길로 이끌었을지는 모르나, 이웃 나라들과의 진정한 소통과 사죄의 기회를 앗아갔다. 우리는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거장의 사유를 존중하면서도 그가 저지른 지적 기만을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그가 만든 번역어들처럼 찬란한 문명의 빛을 선사했지만, 그 빛은 누군가에게는 침략의 불길이었다. 마루야마가 은폐한 그 불길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공부의 핵심이다. 역사적 인물은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그 시대의 모순을 온몸으로 겪어낸 탐구의 대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마루야마가 만든 후쿠자와라는 신화의 숲을 빠져나와 역사라는 거친 벌판으로 나선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기획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지식인이 국가적 사명감을 가질 때 역사가 어떻게 도구화될 수 있는가다. 그는 일본을 사랑했기에 일본에 가장 필요한 인물을 역사 속에서 '발명'해내는 무리수를 두었다. 이러한 하향식 계몽주의는 대중에게 명쾌한 답을 주었지만,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역사 인식을 가로막는 독이 되었다. 한국인들에게 마루야마의 후쿠자와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근대성의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우리는 니시 아마네가 만든 단어로 후쿠자와를 칭송하는 모순된 사유의 굴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독립과 자존은 일본이 만든 개념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데서 시작된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든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제 박물관의 유리창 너머로 보내고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침략과 배제의 논리가 '문명'과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우리 지성사의 비극은 타자가 만든 안경을 쓰고 우리 자신을 보려 했던 것에서 기인함을 잊지 말자. 이제 마루야마가 설계한 지적 미궁을 넘어, 우리만의 언어와 시각으로 새로운 아시아의 지도를 그려야 한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두 거인을 우리 삶의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지식은 권력에 봉사하거나 역사를 미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빛이어야 한다. 마루야마가 후쿠자와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주체적 개인'은 역설적으로 마루야마의 신화를 의심하고 비판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는 이제 타인이 정해준 '근대화의 아버지'들을 거부하고, 우리 스스로 사유의 길을 개척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니시 아마네의 번역어들이 우리 뇌에 새겨진 문신이라면, 우리는 이제 그 문신을 지우고 우리만의 새로운 역사를 우리의 피부 위에 써 내려가야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든 후쿠자와의 전설은 끝났지만, 우리의 진정한 사유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때로 고통스럽고 외롭지만, 그 길만이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안내할 것임을 확신한다.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 더 넓고 투명한 진실의 바다로 나아가는 여러분의 지적 여정을 응원한다.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허물며 다시 세우는 과정임을 기억하며 이 글을 맺는다. 이제 곧 철학산책 시즌 6.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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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50725/72697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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