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철학일기

'자아'라는 개념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찰스테일러의 ‘자아의 원천들‘

by 낭만민네이션

찰스테일러의 ‘자아의 원천들‘

불안한 현대사회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되어서 찰스테일러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불안’이라는 개념을 비교급으로 사용하는 알랭드보통의 책도 좋았지만 찰스테일러가 말하는 현대가 만들어 놓은 자아의 원천들이 서로간의 경쟁으로 불안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인사이트는 놀라웠다. 그래서 다양한 찰스테일러의 책들을 찾아보는 중에 ‘자아의 원천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격이 75000원이나 했고, 최근에 올랐더랬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다가 친한 친구가 선물을 해주는 바람에 자아의 원천들을 읽게 되었다. 요즘들어서 ‘한국 현대철학‘도 그렇고 ‘과학기술의 도입‘으로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나름대로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찰스테일러의 원전을 들여다보게 되니 서양에서 어떻게 ’자아’라는 개념이 ‘주체로’ 발전하는지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간단히 핵심만 요약하고 앞으로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근대와 현대를 해부해보고 우리사회에 맞는 자아개념이 무엇인지 탐구해야겠다. 배워서 남주려면 이렇게 공부하면 안된다. 더 쉽고 더 자세하게 그러나 이해하기 쉽게 글쓰기를 해야 한다. 오늘은 그 중간 정도가 될 것 같다. 예전에 제임스스미스를 다룰 때 살펴봤지만 앞으로는 제대로 다루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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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현대에서 자아는 어떻게 생성되는가?


현대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면을 성찰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찰스 테일러는 이러한 현대적 자아의 형상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산물임을 밝히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아라는 관념은 진공 상태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테일러는 생각한다. 자아라는 개념은 반드시 특정한 도덕적 배경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본다. 이런식이라면 찰스테일러는 공동체주의자가 맞다. 공동체주의 관점이라면 우리는 무엇이 선하고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도덕적 공간' 안에서만 비로소 완전한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찰스 테일러가 보기에 현대인의 불안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도덕적 지평의 상실, 자신이 공유하는 도덕적 감각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상실. 그래서 찰스테일러는 현대인이 상실한 도덕적 지평을 복원하기 위해 이 방대한 철학적 탐색을 시도하며 자아의 계보를 추적한다. 자아의 정체성은 우리가 무엇을 궁극적인 선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유동적이면서도 견고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자아의 원천들’은 현대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도덕적 원천들을 하나씩 분석하며 그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상세히 살피는 지난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의 과거에서 종교적, 철학적 가치관이 어떻게 현대의 개인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는지 살피는 과정은 심리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매우 중요하다. 테일러는 현대적 자아의 다층적인 면모를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처한 실존적 위기와 허무주의를 정확히 진단하고자 노력한다. 이제 우리는 자아의 심연으로 들어가 그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심층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탐구할 준비를 해야 한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아를 타인과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이고 원자화된 주체로 인식하며, 이러한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모두가 생각하는 ‘진리’처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테일러는 이러한 인식 자체가 근대 이후에 형성된 특수한 문화적이고 철학적인 결과물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아의 형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 체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공동체주의자인 찰스테일러가 보기에 ‘정체성’이란 타자와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구성되며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선의 위계와 필연적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테일러는 현대 사회가 도덕적 원천을 망각하면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와 삶의 의미 상실을 겪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과학적 합리주의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인간의 심층적인 도덕적 직관과 감응력을 복권시키기 위해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현대인이 느끼는 삶의 허무함과 의미에 대한 갈증은 바로 이러한 도덕적 배경의 상실에서 기인한다고 그는 진단한다. 따라서 자아의 원천을 추적하는 학문적 작업은 곧 현대인의 삶에 진정한 의미를 다시 부여하는 실천적 작업과 같다. 다른 책들과 비슷하지만 특히 이책 ‘자아의 원천들‘은 역사학, 사회학,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거대한 지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의 원천들을 질적연구처럼 분석하면 어떻게 될까? 찰스테일러는 이책에서 4가지의 도덕적 원천을 제시한다.



1. 내면성과 현대적 주체성_Inwardness


근대적 자아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은 외부 세계가 아닌 자기 내면에서 진리와 도덕적 확신을 찾는 내면화 과정이다. 그 시작은 누가 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시도는 중세시대에 시작했다. 한나아렌트가 ‘정신의 삶‘에서 인간이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독백을 시작한 시기를 언급한다. 왜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외부 초월자의 음성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았을 때 차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를 세심하게 살핀 사람은 다름아닌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참회록’에서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돌아보고 왜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지를 돌아본다. 실존주의의 철학자 샤르트르의 구분으로 보면 ‘즉자적 존재‘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대자적 존재’가 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찾기 위한 여정에서 외부의 사물이 아닌 인간의 내적 기억과 의지에 주목하여 성찰을 시작했다. 그는 '나'라는 1인칭 시점의 중요성을 최초로 강조하며 서구 철학사에서 주체적인 내면성이라는 씨앗을 깊이 심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자유의지‘논쟁이 등장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을 통해서 중세시대는 외부의 거대한 초월의 세계인 ’자연‘과 내면의 무한한 세계인 ’자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다른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에 의해서 부정되거나 강조되었다가 계몽주의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데카르트는 ‘자아‘의 원초적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이성을 통해 세계를 객관화’하고 통제하는 '거리를 둔 주체'의 관념을 확립했다. 그 유명한 ’생각하고 있는 자아‘의 탄생, 즉 코기토의 탄생인 것이다. 데카르트적 자아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조차 관찰의 대상으로 삼으며 합리적인 분석과 통제를 지향하는 특징을 보인다.


로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아를 과거의 전통이나 본질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점적 자아'로 정의하며 개인을 해방했다. 점선면의 차원논의에서 ’점적 인간’은 아무런 선이 없어도 자기 스스로 점을 찍으면서 시작하는 자아이다. 이것은 추후에 ‘무연고적 자아’의 원천이 된다. 로크와 같은 이러한 내면화의 과정은 개인이 우주의 질서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를 도덕적 입법자로 여기게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사실은 이게 계몽주의의 기획이기도 했다. 현대인은 이제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성찰함으로써 도덕적 확신을 얻고 삶의 구체적인 방향을 설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것은 주체적인 인간상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타자와 분리된 고립된 개인주의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테일러는 이러한 내면성의 성립이 현대 정체성을 지탱하는 첫 번째 거대한 기둥임을 명확한 역사적 증거로 분석한다.


내면성은 주체성의 핵심이다.
내면의 힘이 약한 사람은 주체성도 약하게 된다는 관점이다.


내면성은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의무와 결합된 거대한 철학적 사건으로 이해되었다. 근대인들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것이 곧 우주의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굳게 믿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자율성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탄생시켰으며 인간을 도덕의 능동적인 주체로 우뚝 세우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내면으로의 과도한 침잠은 때로 외부 세계나 공동체와의 연결 고리를 약화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이 테일러가 다른 책에서 다루는 ‘불안한 현대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테일러는 내면성이 강화될수록 인간이 과거 우주적 질서(Cosmos)에서 느끼던 소속감과 안도감이 사라졌음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의 인간이 거대한 신적 질서의 일부였다면 근대의 인간은 자기 내면의 주인으로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었다.


자아의 중심이 외부의 객관적 질서에서 주관적 내부로 이동한 것은 인간 지성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변화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끊임없이 개선할 수 있는 근대적인 자기 통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내면성은 현대적 자아가 지닌 복잡성과 깊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테일러는 이러한 내면성의 계보를 추적하며 우리가 어떻게 현재와 같은 독립적인 '나'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첫번째 자아의 원천인 것이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나의 부모님과 왜 그렇게 삶을 사는데 차이가 나는지 이 부분을 읽다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특히 전라도 해남에서 태어난 부모님의 자아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독립적인 자아‘가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도덕성과 타자의 인정이다. 공동체에는 공동체마다 일정한 ’도덕적 공동선’이 있고, 선함을 추구하는 것은 칭찬을 받으며 그것을 버리는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 대가족적인 자아는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살 청년 때 서울에 올라와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상실감은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데 심각했다. 찰스테일러가 말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성인이 되어가는 시간이 자아의 독립적인 공간에서 주체성을 갖는 시기이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들의 경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부분만 살펴보아도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차원에서 자아의 원천이 다른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복잡한 관계들이 이해가 되어 간다. 사실 서울 그 자체가 현대성을 육화한 도시이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 도시 안에서의 리듬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외부의 사물이 이전에 공동체로 존재하던 자아들을 학습시키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적응하고 누군가는 부적응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부모님이 경험하는 세계의 두 세계라고 생각한다.


현대적 주체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내면의 진실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독특하고 새로운 윤리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제 도덕이란 단순히 외부의 계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확신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과 문학에서 개성과 독창성이 강조되는 문화적 토양을 제공하는 결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테일러는 내면성이 단순한 주관주의나 이기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며 그 기저에 깔린 도덕적 원천을 재차 상기시킨다. 내면을 탐구하는 행위 자체가 원래는 더 높은 선과 진리를 향한 숭고한 열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 신성한 원천이 망각되면서 자아는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거나 표류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테일러는 우리가 가진 내면성의 깊이가 사실은 초월적인 가치나 도덕적 선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내면화된 주체성은 현대인이 누리는 무한한 자유의 근원이지만 동시에 그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의 무게를 수반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내면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떤 가치가 더 우월하고 고귀한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번에 하는 강좌인데,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내면성과 고립성을 자본주의에 잘 활용한 기획이다. 어쩌다 우리는 정말! 경쟁이 자연스러워졌을까?


따라서 내면성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도덕적 지평 위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며 의미를 생성하는 활동적인 자아의 모습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덕적 선‘의 개념이 사라진 청소년들이 쉽게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이 무너진 이유는 ‘수능시험‘으로 한번에 인생을 결정해버리는 사회구조에 있다. 모든 것을 잘해도 한번의 실패로 인생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을 자신의 선배들을 보면서 예측하게 된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다. 그 길에 뛰어 들어서 맨 앞으로 달려갈지 아니면 그 길 자체를 아예 포기해 버릴지. 그리고 결국 그 길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어느순간 정신을 차리면 세상은 아무런 선택지도 쥐어주지 않는다.


이미 내면화에 성공한 개인들이 독립적인 책임감을 부여한 세상에서 그런 책임감을 습득하지 못한, 그러한 내면성을 습득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대접을 못 받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게임,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없는 내면세계에서 ’도덕‘은 자아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 ’독백‘을 들어볼 시간도 여유도, 기회도 없고 고백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한 가속도의 이미지와 음악의 공습은 청소년들의 자아를 갉아먹고 어느순간 텅 비게 된다. 내면성이 붕괴된 인간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예측할 수 없다. 우리나라 교육을 다시 살리리면 내면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다른 한편, 내면성의 확립은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합리적인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에도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인간이 자연을 철저한 관찰과 이용의 대상으로 전제할 수 있었던 것은 주체가 객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분리된 주체는 현대 문명을 건설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으나 동시에 자연과의 근원적인 유대를 끊어놓기도 했다.


테일러는 이러한 현대적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내면성의 기원을 다시금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내면으로 향했던 최초의 동기는 세계를 파괴하거나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함이었다. 현대적 주체성은 이제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다시금 도덕적 지평과의 화해를 진지하게 시도해야 할 시점이다.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자아의 온전함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필수적인 경로이기도 하다. 테일러의 분석에 따르면 내면성은 현대 자아가 지닌 가장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 도구를 어떻게 지혜롭게 사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풍성하고 의미 있게 가꿀지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내면성의 역사는 인간이 자유를 쟁취해 온 투쟁의 역사인 동시에 새로운 도덕적 갈등을 마주하게 된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의 내면화는 이제 내면들을 구성하는 규칙과 구분값들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2. 평범한 삶을 긍정하는 자아_Affirmation of Ordinary Life


전통적인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고귀한 삶이란 영웅적인 헌신이나 고도의 철학적 사색과 같은 비일상적 활동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가족을 사랑으로 부양하고 노동을 성실히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도덕적으로 극찬받기 시작했다. 테일러는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인 원천을 종교개혁과 특히 청교도주의의 확산 과정에서 면밀히 찾는다. 종교개혁가들은 성직자만이 신성하다는 기존의 위계적 구분을 타파하고 모든 직업이 신의 거룩한 소명임을 강력히 강조했다. 이제 밭을 갈고 아이를 정성껏 기르는 행위는 수도원에서 온종일 기도하는 것만큼이나 신성하고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긍정하기'는 현대 사회의 생산 중심적 가치관과 노동 윤리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일상은 더 이상 고귀한 삶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저급한 영역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목적이 된 것이다. 노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가정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인간이 지닌 가장 큰 도덕적 의무가 되었다. 이러한 가치 전도는 현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든든한 도덕적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테일러는 평범한 삶이 지닌 이 숭고한 도덕적 의미가
현대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두 번째 핵심 기둥이라고 주장한다.


일상의 긍정은 인간 평등의 관념을 현대 사회에 확산시키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의 노동이 동등하게 가치 있다면 특권 계급의 우월성은 더 이상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활동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을 넘어 신의 섭리를 이 땅에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거룩한 과정으로 재해석되었다. 테일러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인간의 자아 인식에 엄청난 자신감과 도덕적인 자부심을 부여했다고 세밀하게 분석한다. 우리는 이제 일상 속의 사소한 행복과 작은 성취들 속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삶의 만족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삶을 오로지 도구적 이성과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만드는 새로운 위험을 낳기도 했다. 일상이 숭고해진 만큼 그 일상을 지탱하는 물질적 가치가 때로는 정신적 가치를 압도하고 왜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테일러는 일상생활의 긍정이 본래 가졌던 깊은 도덕적 원천을 망각하고 단순한 소비와 물질주의로 전락했음을 우려한다. 우리는 노동과 소비의 끝없는 반복 속에서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물음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가치는 여전히 현대인이 자신의 소박한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동기다. ‘소시민적 삶의 일상화’가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된 것이다.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시절 너무 가난했던 나머지,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서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아내와 살아가는 게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정말 평범한 삶 자체가 그리웠고, 동경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이러한 삶이 얼마나 무료하고, 사실은 현대적 기획의 한 측면에서 인생을 재단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괴로워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추구하지 않으니깐 주변에서는 금새 이단아 혹은 이상주의자로 손가락질을 받고, 인생을 어떻게 살려고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냐고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그런데 찰스테일러의 글을 읽으면서 이러한 평범한 일상을 추구하는 자아가 현대성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배워서 남주자‘라던지, ‘남을 돕는 것 자체로 기쁜 삶‘이라던지,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현대‘라는 한 시점에서의 인간관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서 수렴하는 인간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결혼과 연애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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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도덕적 중심에 두는 태도는 현대 문학이나 예술의 주제가 변화해 온 과정에서도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과거의 비극이 주로 왕이나 영웅, 귀족의 몰락을 다뤘다면 현대의 서사는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고뇌를 다룬다.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이웃이 겪는 일상적인 갈등과 사랑이 우주적인 비극보다 더 깊은 정서적 공감을 자아내는 시대다. 이는 자아가 일상이라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맥락 안에서만 온전히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현대적 믿음의 반영이다. 테일러는 이러한 문화적 현상이 인간의 주체성을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평범함 속에서 비범한 가치를 찾아내는 시각은 현대인의 자아를 더욱 입체적이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상의 안정에만 과도하게 매몰된 자아는 자칫 더 큰 도덕적 지평이나 초월적인 가치를 외면할 위험에 처한다.


테일러는 일상을 긍정하되 그것이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체계가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상의 노동이 진정으로 고귀한 가치를 지니려면 그것을 지탱하는 상위의 목적이 항상 의식 속에 살아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매일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아의 원천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인격의 성숙과 도덕적 완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가치는 오늘날 보편적 인권의 개념과 사회 복지 제도의 철학적 근거를 마련해 주는 밑바탕이 되었다. 모든 인간의 평범하고 소소한 삶이 국가와 공동체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근대적 자아가 성취한 위대한 도덕적 승리다. 테일러는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여기는 이러한 가치들이 사실은 역사 속의 깊은 종교적, 철학적 투쟁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일상을 긍정하는 태도는 개별 자아에게 강한 책임감을 부여하며 타인과의 건강한 사회적 연대를 위한 기초를 마련해주었다. 현대인은 자신의 성실한 삶이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통해 자아의 존재 가치와 효능감을 확인한다. 그러나 성과 지표와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일상의 가치는 때로 단순한 숫자로 치환되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한다.


테일러는 우리가 일상의 기저에 깔린 도덕적 원천을 다시 발견할 때만이 이러한 현대적 비극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자아는 단순히 재화를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일상의 현장에서 선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도덕적 행위자다. 일상의 긍정이라는 두 번째 원천은 추상적인 자아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성공적으로 끌어내려 생동감과 활력을 부여했다. 이는 앞서 살펴본 차가운 이성 중심의 자아 관념에 따뜻한 인간적 온기와 현실적인 무게감을 더해주는 필수적인 요소다. 이렇게 보는 테일러에 대해서 나는 다소 비판적이다. 일상의 삶을 자본주의와 연결하고, 생산성과 연결해서 이미 사회가 배태된 일정한 생산주의, 발전주의 전략을 내제화하기 때문이다. 한국적 상황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런의미에서 주디스슈클라의 일상의 악덕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다시금 의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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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표현주의적 자아_Expressivism


계몽주의적 이성이 세계를 기계적이고 분석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에 반발하여 자연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낭만주의의 특장이다. 낭만주의는 한국어로는 낭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상과 현실’을 연결하고 이성과 감성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한 사람들이다. 17세기 초에 독일에서 시작된 낭만주의는 헤겔에서 정점을 이룬다. 변증법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과 현상을 서로 연결하려는 움직임 말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테일러는 루소와 낭만주의 철학자들이 현대적 자아에 '표현주의'라는 매우 새롭고 강력한 차원을 더했다고 정교하게 분석한다. 인간의 내면에는 이성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정과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자연의 생명력을 낭만주의자들은 ’생기‘라고 부른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자연은 정복하거나 이용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 영혼과 신비롭게 교감해야 할 신성한 도덕적 원천이었다.


자아는 자신의 내면에 깃든 이 자연의 목소리를 진실하고 독창적으로 표현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인의 삶에서 '자기진실성(Authenticity)'이라는 강력하고 거부할 수 없는 도덕적 이상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타인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오직 나만의 독특한 내적 목소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대 대중문화의 핵심이다. 테일러는 이를 '표현주의적 전환'이라 부르며 이것이 자아의 유일무이한 고유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술은 이제 단순히 사물을 모방하는 기술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 숨겨진 독창성을 세상 밖으로 표출하는 신성한 행위가 되었다.


예술은 자아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행위가 된다


표현주의적 자아는 외부에서 강요하는 권위나 획일적인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며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려 노력한다. 루소는 문명화된 사회가 오히려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주장하며 자연 상태의 순수함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하게 설파했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인이 복잡한 도심을 떠나 숲을 찾고 명상을 하며 자연과의 일체감을 갈망하는 행동의 철학적 근원이 된다. 테일러는 자연이 우리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내면의 타고난 본성으로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내면적 본성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삶은 소외된 삶이며 이는 현대인이 느끼는 우울과 불안의 핵심적인 원인이 된다. 따라서 현대적 자아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에너지를 스스로 발견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표현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 이러한 표현주의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강력한 논거가 되었으며 현대 정치를 민주적으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테일러는 오직 나만의 주관적 진실만을 강조하는 태도가 사회적 공통의 유대를 파괴할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자기진실성이 타인을 완전히 배제한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나 나르시시즘으로 흐를 때 도덕적 원천은 오히려 심각하게 오염되기 때문이다. 예술적 창조성은 표현주의적 자아가 도덕적 완성에 이르는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시인과 예술가는 자연의 신비롭고 깊은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여 자아의 도덕적 지평을 넓혀주는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인에게 예술적 감수성은 단순히 여가를 즐기는 취미를 넘어 자아를 실현하고 증명하는 숭고한 통로가 된 것이다. 테일러는 이러한 '현시적 예술'이 전통 종교를 대신하여 현대인에게 일종의 초월적이고 신성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니깐 현대적 삶이 가져온 단일하고 밀폐된 자아의 구획에 예술은 숨구멍을 만들어주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감동적인 음악을 통해 자아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대한 원천과 접촉하게 된다. 이러한 미적 경험은 파편화된 현대인의 자아를 다시 하나로 통합하고 삶의 경이로움과 감사를 회복시켜 주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래서 그런지 미술작품이 비싸지는 이유는 이러한 자아의 고립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예술적 표현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해 나가는 역동적인 과정인 것이다. 테일러는 이러한 창조적 자아상이 현대 정체성을 과거보다 얼마나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었는지 강조한다.


그러나 감각적인 일시적 쾌락과 진정한 도덕적 표현을 구분하지 못할 때
자아는 탐닉과 허무의 늪에 빠질 위험이 상존한다.


다른 한편, 자연과 자아의 깊은 결합은 현대의 생태적 감수성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자연이 주는 인사이트와 생명력을 사회의 전체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표현주의 자아를 표방하는 낭만주의자들의 기획이었다.인간 내면 자체에 갖혀있다가, 인간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자각은 오만하고 독선적인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이자 경고등이 되어 주었다. 테일러는 이러한 표현주의적 전통이 현대 문명이 가져온 기술적 폐해와 환경 파괴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자아는 자연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주체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성장하며 공존하는 동반자적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적 시각은 현대인의 자아 정체성에 심오한 도덕적 깊이와 지구적인 책임감을 동시에 더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의 원천을 긍정하는 자아는 세계와의 일체감을 느끼며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받는다. 이는 앞서 살펴본 합리적 내면성이나 일상의 가치와 조화롭게 결합하여 더욱 입체적이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테일러는 이 세 가지 원천이 서로 갈등하면서도 보완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 자체가 곧 서구 근대사의 핵심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성적이면서도 일상적이고 동시에 표현주의적인 복합적인 자아로서 현대라는 파도를 헤쳐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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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대성의 갈등과 도덕적 위기_The Malaise of Modernity


테일러는 현대적 자아가 지닌 이토록 풍요로운 원천들을 분석한 뒤 현대 사회가 현재 처해 있는 심각한 위기를 진단한다. 현대성은 자율성과 평등 그리고 개성이라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도덕적 가치들을 창출했으나 그 뿌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테일러는 이를 '현대성의 불안'이라 부르며 우리가 자아를 지탱하던 도덕적 원천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음을 강력히 지적한다. 과학적 세계관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세계는 의미가 거세된 채 차가운 기계적 법칙만이 작동하는 공간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자아는 도덕적 지평을 잃고 오로지 도구적 이성과 계산적인 효율성에만 매몰되는 슬픈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개인의 선택권과 자유는 과거보다 극대화되었으나 그 자유를 진정 무엇을 위해 써야 할지에 대한 목적 의식은 희미해졌다. 테일러는 이러한 의미의 대규모 상실이 현대인이 겪는 만성적인 허무주의와 소외감, 고립감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과거의 도덕적 원천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깊은 정신적 위안과 삶의 지침들을 더 이상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현대성의 성취를 통째로 부정하는 회의주의나 무작정 과거로 돌아가려는 근본주의를 모두 단호히 거부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관조적인 삶‘은 오히려 내면을 탐구한다기보다는 낭만주의자들과 같이 외부의 사물, 자연의 움직임,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관조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내적 갈등 중 하나는
냉철한 이성적 통제와 뜨거운 감성적 표현 사이의 끊임없는 충돌이다.


한편으로는 사회 시스템의 질서와 효율을 강조하는 관료주의적 이성이 지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자기표현이 분출된다. 이러한 가치의 불균형은 자아를 파편화시키고 공동체적 연대를 급격히 약화시켜 사회적 갈등을 걷잡을 수 없이 증폭시키는 원인이 된다. 테일러는 우리가 이 상충하는 가치들을 창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더 넓고 깊은 도덕적 지평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도구적 이성에 의해 오로지 수단으로만 전락한 인간관계는 진정한 자아의 성장을 방해하고 근원적인 소외만을 야기할 뿐이다. 자아를 지탱하는 도덕적 원천이 메말라갈 때 인간은 타인을 경쟁자로만 여기고 함께 추구해야 할 공동의 선을 망각하게 된다. 테일러는 현대 정체성이 가진 '도덕적 고양'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대화를 촉구한다. 우리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우리 모두를 묶어주는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한다. 현대성의 위기는 단순히 기술이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느냐는 본질적인 철학적 문제다.


테일러는 특히 현대의 '자기진실성'의 이상이 본래의 뜻을 잃고 단순한 자기 탐닉이나 나르시시즘으로 변질되는 현상을 비판한다. 나의 주관적 선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나의 선택만이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오만과 독선으로 이어질 때 정체성은 파괴된다. 진정한 자아는 단순히 자신의 기호나 선호가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는 가치 있는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현대인은 너무나 자주 자아를 하나의 시장 소비 상품처럼 취급하며 외적인 껍데기만 화려하게 가꾸는 데 급급해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세속화된 자아는 진정한 도덕적 원천이 제공하는 생명력을 공급받지 못해 시련이 오면 쉽게 무너지고 고갈된다.


테일러는 우리가 현재 누리는 인권과 자유가 사실은 수천 년간 이어진 거룩한 도덕적 유산의 산물임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는 유대-기독교적 전통과 계몽주의적 합리성 그리고 낭만주의가 남긴 긍정적 유산들을 다시금 지혜롭게 결합하려 시도한다. 이러한 통합적인 노력만이 현대적 자아가 처한 의미의 빈곤 상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이 가진 깊은 역사적 뿌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해 더 책임감 있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테일러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테일러는 현대적 자아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으로 '도덕적 원천의 온전한 복원'을 제시한다. 그는 개인이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우리 인간의 삶을 초월하는 어떤 고귀한 선에 대한 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도덕적 감각이 완전히 사라질 때 인간은 존엄성을 잃고 오로지 본능적인 욕망을 처리하는 기계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 속에 숨겨진 도덕적 보물들을 다시 소중하게 캐내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현대적 정체성은 분명 거대한 위기 속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과거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성과 감성,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창조적으로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만의 숙명을 안고 있다. 자아는 이러한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며 자신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덕적 서사를 써 내려가는 능동적인 존재여야 한다. 테일러의 ‘자아의 원천들‘은 바로 그 복잡한 서사를 어떻게 하면 더욱 풍성하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지 알려주는 지도다. 이제 우리는 이 방대한 지적 여정을 마무리하며 현대적 자아가 가져야 할 희망의 근거를 결론 부분에서 다시 확인한다.



0. 나오기_현대적 자아의 회복과 미래의 지평


찰스 테일러가 수행한 자아의 계보학적 탐구는 현대인이 처한 실존적 불안의 정체를 명확하고 예리하게 드러내 주었다. 우리는 내면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일상의 가치를 발견했으며 자연의 표현력을 얻었으나 정작 그 가치들을 지탱하던 원천은 잊었다. 자아는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에서 탄생한 도덕적 구성물이며 이를 지탱하는 선의 지평이 반드시 필요하다. 테일러의 논의는 우리가 잃어버린 '흔들지지 않는 판단능력', 즉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회복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현대 정체성의 위기는 결국 도덕적 원천을 망각하고 자아를 협소한 개인주의와 도구적 합리성 속에 가둔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정체성이 지닌 다층적이고 역사적인 깊이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 복잡성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아는 결코 고립되어 홀로 설 수 없다. 따라서 우리를 형성해 온 위대한 철학적, 종교적 도덕 전통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테일러의 작업은 현대 사회의 파편화를 극복하고 인간의 훼손된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처절하고도 숭고한 철학적 분투의 결과물이다. 이제 우리는 이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과거보다 더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자아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대적 자아의 밝은 미래는 우리가 상실했던 도덕적 원천들과 어떻게 다시 지혜롭게 화해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테일러는 현대성이 가진 도덕적 성취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지평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시한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성실히 돌보는 동시에 타자와 공동체 그리고 거대한 자연이라는 외부 세계와 다시 깊고 넓게 연결되어야 한다. 진정한 자아란 자기 안에 갇힌 폐쇄적이고 원자화된 자아가 아니라 타자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소통하는 자아인 것이다. 테일러의 철학은 차가운 도구적 이성의 시대에 따뜻하고 촉촉한 도덕적 영감을 불어넣어 인간 삶이 가진 본래의 경이로움을 회복시킨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이 가진 고유한 서사를 존중하면서도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선을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자아의 원천들‘은 자아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와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자아의 원천은 결코 고갈되지 않았으며 우리가 도덕적 성찰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테일러가 안내한 이 방대한 지도를 들고 이제 스스로의 삶 속에서 새로운 자아의 원천들로 열려있는 주체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다가 새로운 원천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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