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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02. 2017

낭만과 비판

낭만주의 철학_하이네, 슐레겔, 슈미트

20171202_철학아카데미

낭만주의 철학_이병옥 교수

10장_초기 낭만주의의 종교와 정치

칼 슈미트는 왜 낭만주의를 비판하는가?에서 꺼내 드신 정치적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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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초기 낭만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다른 학문과 연결되는지를 볼 것이다.초기 낭만주의는 중기-후기로 갈 수록 더욱 세분화된다. 마치 물이 스며들면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처럼 초기 낭만주의철학의 핵심은 여러가지 종교와 정치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종교와 정치에서 초기 낭만주의 정신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하이네, 낭만파 비판


하인리히 하이네는 1835년에 그의 명저 '낭만파'Die Romantische Schule에서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의 만남에 대해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당시 아우구스트 슐레겔은 독일에서 낭만파를 이끄는 대변자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하이네는 1819년 본 대학에서 슐레겔의 강의를 처음 참석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슐레겔은 진한 향수 냄새를 풍겼고 파리의 최신 유행에 맞추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우아함과 예의 그 자체였으며, 영국 수상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항상 '나의 친구'를 덧분이곤 했다''낭만파'에서 그의 경멸의 이유는 극명하다. 여기서 하이네는 독일낭만주의를 중세의 종교와 예술의 부활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본질적으로 반동적인 운동으로 해석했다. 그는 일부 낭만주의자들이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메테르니히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을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 하이네의 견해에 따르면 낭만주의자들의 문학적 노력은 그들의 반동적인 정치적 가치들에 영감을 받았다. 하이네는 슈타인 장관이 나폴레옹에 맞선것과 똑같은 열정으로 슐레겔 형제가 라신에 대해 반대 모의를 했다고 썼다.그리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 단순하지만 선명하고 그릇된 대조를 만들어 냈다.  고전주의자는 인류의 목적이 이곳 지상에서 된다고 생각하는 휴머니스트이지만, 낭만주의자는 최고선이 천국에서만 실현된다고 믿는 기독교인이다. 휴머니스트의 정치적 이상은 자유와 평등이지만, 낭만주의자의 이상은 교회아 국가에 대한 믿음이다. 따라서 하이네에게 낭만주의는 왕정복고의 문학적 형식일 뿐이고, 그 영감의 궁극적 원천은 바로 기독교에서 왔다.


하이네, 영향


하이네가 그린 낭만주의 초상은 커다란 영향력을 가져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칼 맑스, 아르놀트 루게 같은 1840년대의 다른 독일 급진주의자들도 이 견해를 옹호했다. 그들은 낭만주의를 이데올로기적인 적 혹은 소위 '기독교적-독일 왕정복고 원리'로 간주했다. 아주 근래에 이르기까지 이는 낭만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의 공식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이미 당대에도 하이네의 초상을 비판한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낭만주의에 대한 하이네의 비판이 들어 있는 '낭만파'



헤르만 헤트너, 낭만주의


1850년에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문학사가 가운데 하나인 헤르만 헤트너가 하이네의 비판의 주된 난점을 지적했다. 하이네의 낭만주의 해석은 시대착오적이며, 전체 낭만주의 운동을 몇몇 후기 대표자들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물론 몇몇 낭만주의자들-프리드리히 슐레겔, 아담 뮐러, 아킴 폰아르남-은 말년에 메테르니히와 로마 카톨릭 교회를 지지한 반동주의자들이었다.하지만 그들은 초년인 1790년대에는 프랑스 혁명의 지지자들이었다. 헤트너에게 낭만주의의 문제는 그것의 반동성이 아니라 비정치성이었다.낭만주의는 근본적으로 근본적으로 미학적 운동이었으며, 그것은 예술을 사회정치적 현실에 의해 결코 타협될 수 없는 목적 그 자체로 만들었다. 정치 세계에서의 무력함 때문에 낭만주의자는 문학적 상상의 세계, 그가 완전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후퇴한다. 헤트너 역시 큰 영향력을 가졌다. 칼 슈미트의 저작에서 그것의 주요한 근대적 옹호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의 악명 높은 '정치적 낭만주의'는 헤트너의 테제를 단순히 부활시킨 것이다.


 

칼슈미트에게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많다. 낭만주의철학에 대해서 그는 왜 이렇게 비판을 가했을까? 같은 민족주의 계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프레데릭 바이저, 비판


이책의 저자인 프레데릭 바이저는 하이네와 헤트너가 모두 틀렸다고 말한다. 사실 헤트너의 하이네 비판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하이네의 초상은 후기낭만주의Spatromantik의 몇몇 인물들에 대해서는 유효하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초기낭만주의Fruhromantik의 거의 모든 주도적 사상가들에 대해서는 오나전히 틀렸다. 하지만 헤트너의 해석, 따라서 슈미트의 해석 역시 결함을 가지고 있다.초기낭만주의자들에게 정치가 마치 그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위한 수단이나 계기에 불과한 듯 본질적이 아니라 주장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프레데릭 바이저의 저서. 이 책에서 칼슈미트와 헤르더, 하이네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낭만주의


어떤 이의 근본적인 가치를 알고 싶다면 고전적인 질문 한가지, 즉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스 윤리학' 1권에서 제기한 '무엇이 최고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질문은 18세기 후반 독일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문제였고, 낭만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글은 최고 선이 문학bildung, 인간의 탁월성 혹은 완전성, 모든 인간적 능력 전체의 자기-실현과 개발이라고 확고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주장했다. 초기 '그리스 시 연구에 대하여'에서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정치적 판단은 모든 관점들 가운데 최고이다'라고 말한다.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인 노발리스, 그는 화폐나 경제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낭만주의의 발전을 도모했다.



초기 낭만주의, 핵심


초기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정치가 예술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정치에 종속된다. 낭만주의자들은 예술을 목적 자체로 만들기는 커녕, 그것을 윤리적, 정치적인 것에 종속시켰다 그들은 에술의 목적이 문화, 인류의 교육이라고 주장했으며, 그것은 국가 안에서만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형에게 '내 독트린의 핵심은 인류가 최고의 목적이며 예슐은 그것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거야'라고 말했다.


아담 뮐러, 낭만주의 전통


아담뮐러는 슐레겔과 같이 초기 낭만주의자들의 반열에 있으나 한국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았다. 칼 슈미트는 그 당시 가장 천재라고 불리는 아담뮐러의 사상을 극렬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확장했다. 카린 리히터는 아담뮐러의 사상이 잘 소개되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뮐러의 저작은 정치, 경제, 역사, 철학 등 너무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하면서 그 분야들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그의 대부분의 학문 영역은 독창적인 단초들이 들어 있는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독일 낭만주의 그룹에 속하면서도 작가는 아닌 인사들에게는 별로 시선을 보내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 그는 생전에는 별로 주목 받지 못했고 보수적 사고 때문에 베를린 개혁파들로부터 경원시 되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낭만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 그도 역시 갑짜기 환영을 받으며 연구되어 왔다. 그가 주목 받을 때는 클라이스트와의 교류 때문이다. 뮐러와 클라이스트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 동병산련의 고뇌를 앓고 있다가 의기투합하여 서로 돕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푀부스', '베를린 석간'을 함께 발행하고 또 당시의 낭만주의자들과 교류하였다. 아담뮐러는 경제적 사상에 관련해서도 많은 저작을 썼다. 그러면서 화폐가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면서 화폐의 기호적인 특성이 현대의 비트코인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고민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을 남겼다.




민네이션, 낭만주의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인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인도가 이루어 놓은 문화적 융성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물론 슐레겔의 마지막 결론은 인도가 허무주의적인 정신세계의 낭만화로 갔다라고 하지만 말이다. 1960년대 이후에 후기 구조자들의 관심으로 초기 낭만주의는 부활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진행하던 분석과 현상학, 해석학적 접근으로는 분할된 세계를 통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하이네의 비판을 다시 해석하여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는 '유기체적 통일관'을 다시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다시 시작되는 초기 낭만주의 연구는 물론 한국에서도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병철 선생님의 저작들에서도 유기체적인 접근에서 볼 때,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많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가톨릭과 국가를 부활시키거나 보수하려는 것으로 읽히는 오해를 받았다.그러나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철학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 철학적인 문제들의 원천을 소크라테스의 'Docta ignorantia'에서 찾았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교양buldung'을 개인에서부터 사회와 국가까지 확장하는 것이 바로 계몽주의와 만나는 지점이다.계몽주의 철학자인 '노발리스'는 자기성찰을 통해서 세상으로나아가는 온전한 빌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괴테는 그 반대로 세계에서 자아로 들어오는 부분에서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는 피히테가 말하는 관념론의 사상인 '근원적 자아'의 개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낭만주의 대표작인 메두사의 뗏목, 현실을 넘어서 새로운 상상력과 현실에 한자리에 만나는 작품.




민네이션, 생각


모든 사상은 문자로 전달된다. 문자의 조합으로 우리의 정신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다.그러므로 철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글 안에 들어 있는 작가의 철학을 읽어야 한다. 정신은 글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현상화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시대의 생각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는 대화와 같은 것이다.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비해서 더 뛰어나거나 거대한 생각이 다 드러나지는 않는 것이다.그러므로 '해석학'은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해석학에서 우리는 동시대의 현실과 함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와 사상의 흐름들을 읽을 수 있다.


민네이션, 철학


철학은 무엇인가? 사물을 분석하고 다시 통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리를 찾는 것이다. 분석철학은 사물들을 사실과 가치로 나눌 때 발생하고, 과정철학은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생각들의 흐름을 보여 준다. 철학은 인간의 사고를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사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민네이션, 숭고


화페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화폐는 인격이 되고 그것이 자본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에서 자본은 형상화된 거대한 숭고의 대상이 된다.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종교가 되는 이유이다. 자본은 숭고한 정신적 크기를 현상에서 정신으로 가지고 들어온다.인간이 없이도 자본은 자본 스스로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고, 인간을 노예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칸트가 이야기하는 숭고의 개념에서도 큰 사물의 위대함과 장엄함 때문에 인간은 숭고함을 느낀다고 한다.그렇다면 자본이 스스로의 몸집을 키우고, 그것이 서로 연합하면서 새로운 큰 사물 체제를 만들고, 그 체제에서 파생상품으로 계속확장하고 있다. 자본의 숭고함은 곧 자신들의 메트릭스를 만들고 메트릭스 안에 자신들의 노예를 초청하는 것이다.


docta ignoratia!!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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