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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02. 2017

페민과 기호

정신기호계와 줄리아 크리스테바_철학아카데미

20171130_철학아카데미

정신기호계와 줄리아크리스테바_김선하 교수

프랑스페미니스트, 루스 이리가라이, 헬렌 식수

항상 최선을 다해서 강의해주시는 교수님 덕분에 페미니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들어가기


오늘은 프랑스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작가들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작가들과 크리스테바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줄 것이다. 크리스테바가 이야기하는 '기호계적 코라'의 개념에 대해서도 알아보자.기호계적 코라가 어떻게 기존의 페미니즘의 담론을 넘어서는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식수와 테바 그리고 크리스테바는 항상 회자되는 관계성을 가진다.


루스 이리가라이, Luce Irigaray


'나는 특히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 제도상 여성의 투쟁을 지칭하는 말이다. 나는 이 낱말을 기꺼이 완전히 버리고 싶다. 왜냐하면 이 낱말은 우리를 억압한 문화의 다른 거창한 낱말과 같은 본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_켈리 올리버'하나이지 않은 성Ce sexe qui net pas un을 1977년에 쓴 이리가라이는 철학에서의 여성은 단지 억압된 큰타자로밖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서양의 철학사, 과학사 및 문학사에서 여서은 남자의 무의식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여성은 스스로가 무의식이므로 무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이리가라이의 할 일은 이런 체계상의 위계질서를 해체해버리기 위해 이 체계 안팎의 입장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그녀는 철학자를 끌어넣기 위해 생산 및 재생산이라는 '이중 미메시스'를 사용한다.그리고 그녀는 다른 철학자와 정교를 맺기 위해, 다른 텍스트 속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이중 미메시스 전략을 사용한다. 철학자 글쓰기의 남성적 은유와 구조에 박혀 있는 특권을 소거하기 위해, 가끔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미메시스적 생각을 첨가하여 텍스트를 조각조각냄으로써 말 그대로 한 텍스트를 재상산한다. 철학 주체의 왜곡되고 파열된 이미지를 되비춰 줄 목적으로 그녀는 철학이 여성/여성woman/feminine에게 부여한 큰 타자의 자리를 맡아 이용하는 셈이다. 이리가라이는 철학이 여성성/여성을 어떻게 은폐시켜 왔는가를 폭로하고, 동시에 다른 여성적 성을 위한 공간을 열고자 노력한다.


프랑스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루스 이리가라이



식수,  Helen Cixous


식수는 자신의 텍스트에 여자의 육체를 노출/창조해 넣음으로써, 그것을 보고 매스껍다고 하던 철학자들에게 충격을 안기는 일부터 착수한다. 식수는 타락한 서양 문화에서 바닥에 떨어진 여성성을 되찾음으로써 여성 신화를 창조하고자 한다.그녀는 여성성 안에 밀려 들어온 남성의 은유를 벗어 던지기 위해 전통적인 신화와 문학을 다시 읽는다. 자신의 소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여성적 글쓰기의 이미지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변화 있는 다양한 문체를 씀으로써 여성성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다. 여성은 자신이 사로잡혀 있는 남성의 은유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글로 써야write their bodies한다고 식수는 주장한다. 그녀는 여성이 그들 자신의 은유,  즉 은유적 대체 경제 속에서 작용하지 않는 은유를 창조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생각은 이리가레이의 환유/은유의 전도에 접근한다. 식수에 있어서 서구 문화의 동일체라는 남성적 경제로부터 제외된 것은 여성의 육체, 특히 그들의 색성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적 리비도적 경제를 표현/창조하는 여성적 글쓰기를 상상하려고 노력한다.


여성성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고 여성적 글쓰기를 시도한 헬렌 식수



크리스테바, 차이


식수와 이리가라이와는 달리 크리스테바는 가부장제를 찬미한다. '나는 문화(특히 가부장제를 토대로 하고, 위대한 과거나 현재의 종교) 유대교와 기독교(로 표현된 서양문화)가 인간을 상징적 존재로, 언어 속에 살고 또 자궁과 재생산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로 보는 매우 진실한 시각을 형성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랑이란 언제나 육체 속에 갇혀 있으면서 상징적 차원으로 자신을 열어 나가는, 말하는 존재의 삶의 한 순간이다. 그래서 만약 그 상징적 차원ㅇ르 생산하는 것이 가부장제라고 말한다면, 가부장제 만세!'라고 크리스테바는 말한다.



검은태양, 크리스테바


검은태양Solei noir를 1987년 발간하면서 크리스테바는 한 텍스트에 모여 있는 이름은 단지 상실한 어머니에 대한 단순한 기호가치sign-value일 뿐이라는 주장을 한다. 크리스테바의 텍스트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한 가리개로 읽을 수 있다. 이리가라이와 식수와는 달리 크리스테바는 글쓰기가 성별화sexed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글쓰기는 성이나 젠더를 무시하고, 언어와 의미화의 신중한 작용으로 나타난 성 차이를 밀어낸다고 주장한다. 크리스테바는 언어와 이론은 남근적이다. 언어에서 여성성은 부정확하며, 충동적이며, 속삭이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프랑스의 몇몇 페미니스트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러한 시각은 여성에게 '말할 수 없는 자', '히스테릭한 자'의 지위를 안기는 등 열등한 지위를 배정한다.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 그녀를 이해가 위해서는 시적언어를 이해하고 결과적으로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라는 문장을 사색해 봐야 한다.



환유, 은유


환유라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속성이나 인접한 개념을 가지고 전체를 하나로 축소하는 방법이다. 은유는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들을, 다시 말하면 속성의 겹침이 없는 것을 연결하는 방식인 것이다. 여기서 이리가라이와 라캉, 그리고 크리스테바의 이론이 갈린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환유'를 통해서 남근을 욕망의 속성으로 잡았다. 남근을 통해서 라캉은 인간의 욕망과 무의식의 욕망을 모두 환유시켰다는 것이다. 이리가라이는 라캉이 사용하는 것은 '은유'가 아니라 '고체'라는 은유라고 말한다. 은유는 부재하는 성질을 가진다. 부재라는 것은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의 성기는 고체로 은유된다. 그래서 고체역학에 따라서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고, 남성의 성기는 있는 것으로 여성의 성기는 없는 것으로 상정해 버린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리가라이는 라캉이 못 보는 것은 '고체'를 만들어내는 '액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피와 정액이라는 액체를 통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은유로 볼때도 은유의 연결고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남성은 있고, 여성은 없다라는 식의 라캉의 고체역학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액체 역학'에서 더 우위를 차지한다고 보는 것이다. 은유는 대체할 수 없고, 오직 하났기만 대입된다. 액체는 바로 은유다. 하나를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시킬 수 없는 것이 바로 액체역학의 특징이다.



민네이션, 생각


남성'이라는 상상계가 지배 담론이 되어버릴 때 패미니즘 운동을 통해서 여성의 상징계가 새롭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상상계가 시간이 지나더라도 새롭게 생겨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미리 만들어진 것을 깨뜨릴 수 있는가?이런 고민도 든다.이러한 욕망의 구조가 사회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의 개체적 내면화에서도 동일하게 구조화되어 있는데, 새로운 상상계를 만들 수 있는가?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만들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를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이 부분은 물리학에서 시간 뿐 아니라 인간에게서 시간이 존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과정에서 상상계는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소쉬르에서 시작된 일반언어학에서의 구분,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고 언어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식수와 이자가라이는 기표와 싸우고,크리스테바는 기호계를 창조한다.



민네이션, 고민


크리스테바는 기존의 기호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기호계는 우리에게 처음 경험을 주는 어떤 이미지와 사건에서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는 의미화 되기 이전의 '기호'들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것은 포근하고 말랑말랑한 '코라'의 공간이다.따라서 기호계적 코라라는 공간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의 편파성은 그 자체로 무화되면서 그 방향성을 잃게 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크리스테바의 이야기처럼 '인간이 태어나면서 겪게되는 가장 처음의 고통과 경험'에서 어머니와의 관계인 '모성'의 잠재성을 이해해야 한다. 크리스테바의 변화의 방식은 Inside-out이기 때문에 형식을 깨부수는 '고체역학'의 방식이 아니라 내용을 바꾸는 '액체역학'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flow하는 것들로 흐름으로 바꾸고, 그것들을 내면에서 부터 바꾸어 내는 것이다. 언어의 형식 안으로 들어가서 '의미'를 바꾸어내는 것은 의외로 쉽다. 왜냐하면 언어는 그 자체로 사회적이라서 '형식-의미'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연적이고 반복적인 것이다.따라서 '형식을 그대로 두고 의미로 흘러들어가서' 새로운 상징체계를 만드는 것은 쉽다. 그래서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의미의 이질성을 만드는 방식이 시적언어와 운율과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형식1-의미1'로 굳어진 상징계에 새로운 형식2-의미2의 상징계를 만드는 방법이 기존의 패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수준에서, 같은 방식으로 싸움하는 것은 사실은 오마주이면서 데칼코마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성적 글쓰기를 강조하는 식수의 글.


민네이션, 라캉


라캉 역시 시대의 아들이었지 않을까? 라캉이 보고 있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상징계와 실재계에서는 '욕망'이라는 것이 사회 속에서 '알튀세르 효과'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최종심급으로 환유되거나 집중화되어 버리면, 그 시대의 시대정신은 모든 상징계와 상상계를 옭아메어 버린다. 그렇게 볼 때 라캉이 잡아냈던 '무의식의 욕망'과 구조화된 욕망의 무의식이라는 것은 그 시대가 만들어놓고, 집중하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민네이션, 양자역학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기호계적 코라'는 양자역학에서 볼 수 있다. 상상계-상징계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상징계-실재계 사이에서 존재할 수도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하나의 빛은 어떤 지점을 통과하면 여러개의 빛이 된다. 기호계적 코라는 움직이는 어떤 자기장처럼 상징계화 실재계 사이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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