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자본론2_철학아카데미
20171206_철학아카데미
마르크스 자본론2_임경석 교수
자본축적, 시초축적, 일반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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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고민해볼 것이다. 자본이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확고하게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되는지를 알아보자. 이 장에서는 자본의 증가가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본의 구성과 축적과정에서 일어나는 이 구성의 변화이다.
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1절, 자본의 구성이 변하지 않으면 축적에 따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자본의 구성은 두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가치의 측면에서 고찰하면, 이 구성은 자본이 불변자본(즉 생산수단의 가치)와 가변자본(즉 노동력의 가치 또는 임금총액)으로 분할되는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생산과정에서 기능하는 소재의 측면에서 고찰하면, 어떤 자본이든 생산수단과 살아있는 노동력으로 분할된다. 이 구성은 사용되는 생산수단의 양과 이 생산수단의 활용에 필요한 노동량 사이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나를 전자를 자본의 가치구성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라고 부른다. 이 상호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나는 자본의 가치구성이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 의해 결정되고 또 기술적 구성의 변화를 반영하는 경우, 그거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고 부른다.
2절, 축적과 이에 따른 집적의 진행과정에서 가변자본 부분이 상대적으로 감소
경제학자들 자신의 의견에 따르면, 임금을 등귀시키는 것은 사회적 부의 현실적인 크기도 아니고 이미 획득한 자본의 크기도 아니다. 오로지 축적의 끊임없는 증대와 그 증대되는 속도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축적과정의 한 특수한 국면, 즉 자본의 기술적 구성은 불변인 채 자본의 증대가 일어나는 국면만을 고찰했다.그러나 축적은 이 국면을 넘어 진행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 토대가 일단 주어지면, 축적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의 생산성 발전이 축적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로 되는 하나의 시기가 온다.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임금을 상승시킨 바로 그 원인, 즉 자본의 증가는 노동생산력을 증가시켜 더 적은 노동량으로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국부론 상)노동자가 전환시키는 생산수단의 양은 그의 노동생상성에 따라서 증대한다. 이 경우 생산수단들은 이중의 역할을 한다.어떤 생산수단의 증대는 노동생산성이 증대한 결과이고, 또 어떤 생산수단의 증대는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조건이 된다.
가변자본, 감소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변화(즉 생산수단에 활기를 주는 노동력의 양에 대비한 생산수단의 양적증대)는 자본의 가치구성(즉 자본가치의 가변적 구성부분을 희생하는 불변적 구성부분의 증대)에 반영된다. 예컨대 어떤 자본이 시초에는 50%가 생산수단에, 50%가 노동력에 투하된느데, 그 뒤 노동생산성의 증대에 따라서 80%가 생산수단에, 20%가 노동력에 투하되는 경우 등이다. 자본의 가변부분에 비한 불변부분의 점진적 증대라는 이 법칙은, 상이한 경제적 시기를 비교하든 동일한 시기의 상이한 나라들을 비교하든 상품의 가격의 비교분석에 의해 모든 단계에서 확인된다. 가격 중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를 대표하는 부분(불변자본 부분)의 상대적 크기는 축적의 진전에 정비례한다. 노동에 대한 지급을 대표하는 부분(즉 가변자본 부분)의 상대적 크기는 축적의 진전에 반비례한다.
제 3절,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의 점진적 증가
최초에는 양적 확대로서만 나타난 자본축적은, 자본구성의 누진적 질적 변화를 수반하면서 진행된다. 다시 말하면, 자본의 가변적 구성부분을 희생시키면서 불변적 구성부분을 끊임없이 증가시키는 거을 발한다.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이에 대응한 노동생산성의 발전, 그리고 이것에서 나타나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변동은, 축적의 진전 또는 사회적 부의 증가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왜냐하면 단순한 축적(즉 사회적 총자본의 절대적 증대)은 총자본의 개별 요소들의 집중을 수반하며, 또 추가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변혁은 최초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변혁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축적의 진전에 따라 분변자본부분과 가변자본 부분의 비율은 변한다.
과잉인구, 산업예비군
과잉 노동인구가 축적의 필연적 산물 또는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부의 발전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해보자. 이번에는 이 과잉인구가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렛대로, 심지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생존조건이 된다. 과잉 노동인구는 마치 자본이 자기 비용으로 육성해 놓은 것처럼 절대적으로 자본에 속하며 자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산업 예비군을 형성한다. 현실적 인구의 증가의 한계와는 관계없이, 산업예비군은 자본의 변동하는 가치증식욕을 위해 언제나 착취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인간의 재료를 이룬다. 축적과 이에 따르는 노동생산성의 발전에 따라 자본의 갑작스러운 확장력도 증대한다. 왜냐하면 이미 기능하고 있는 자본의 신축성이 증대하고 사회의 절대적 부(자본은 이 부의 신축성 있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가 증대하기 때문이다.또, 신용제도가 특별한 자극을 받을 때마다 즉시로 이 부의 매우 큰 부분을 추가 자본의 형태로 생산의 처분에 맡기기 때문이고, 또한 생산과정의 기술적 조건(즉, 기계 및 운송수단)에 의해 잉여생산물이 추가적 생산수단으로 매우 급속히 전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적의 진전에 따라 팽창되어 추가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사회적 부는 시장이 갑자기 확대되는 종래의 생산부문으로 밀려들든가, 또는 종래의 생산부문들의 발전에 따라 이제 필요하게 되는 새로 형성된 부문들(예컨대 철도)로 맹렬하게 미려든다. 이런 모든 경우 다른 부문의 생산규모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결정적인 부분에 신속하게 많은 사람들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과잉인구가 그 사람들을 제공한다.
제 4절, 상대적 과잉인구의 상이한 존재형태,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
상대적 과잉인구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각 노동자는 부분적으로 취업하고 있거나 전혀 취업하고 있지 않는 기간에는 상대적 과잉인구에 속한다. 산업순환의 국면 교체에 의해 상대적 과잉인구가 주기적으로 대규모로 취하는 형태들(공항기에는 급성의 형태, 부로항기에는 만성의 형태)를 도외시하면, 과잉인구는 언제나 세 가지의 형태, 즉 유동적, 잠재적, 정체적 형태를 띠고 있다. 근대산업의 중심인 공장, 메뉴팩처, 제철소, 광산 등에서 노동자들이 때로는 대규모로 축출되고 때로는 대규모로 다시 흡수된다.전체적으로 보아 취업자의 수는, 비록 생산규모에 비해 끊임없이 감소하는 비율이긴 하지만, 증대한다. 과잉인구는 이 경우 유동적 형태로 존재한다.
자본축적, 일반 법칙
점점 더 증가하는 양의 생산수단이,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 증가로 말미암아, 더욱더 적은 인간 힘의 지출로 가동된다는 법칙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노동자를 상요한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완전히 전도되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즉 노동생산력이 높으면 높을 수록 노동자들이 취업수단에 가하는 압력은 그만큼 커지며, 따라서 그들의 생산조건, 즉 타인의 치부 또는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해 그들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은 그 만큼 더 불확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생산수단과 노동생산력이 생산적 인구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사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꾸로 노동인구는 언제나 자본의 가치증식욕구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방법은 개별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다. 생산을 발전시키는 모든 수단들은 생산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환되며, 노동자를 부분인간으로 불구화하고,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물로 떨어뜨리며, 그의 노동의 멋있는 내용을 파괴함으로써 노동을 혐오스러운 고통으로 전환시킨다.과학이 독립적인 힘으로 노동과정에 도입되는 정도에 비례해 노동과정의 지적 잠재력을 노동자로부터 소외시킨다.또한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는 모든 방법과 수단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며, 노동과정에서 비열하기 때문에 더욱 혐오스러운 자본의 독재에 노동자를 굴복시킨다.
26장, 시초축적의 비밀
우리는 화폐가 어떻게 자본으로 전환되는가, 자본은 어떻게 잉여가치를 생산하는가? 그리고 잉여가치로부터 어떻게 더 많은 자본이 만들어지는가를 보았다. 그런데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를 전제하고, 잉여가치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생산자들 수중에 상당한 양의 자본과 노동력이 이용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전제한다.그러므로 이 모든 운동은 끝없는 순환속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데, 여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본주의적 축적에 선행하는 시초축적primitive acccumulation(애덤스미스는 이것을 이전의 축적previous accumulation이라고 한다.)를 보아야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의 출발점인 축적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초축적, 자본
화폐와 상품 그 자체가 결코 처음부터 자본이 아니듯이, 생산수단과 생활수단도 결코 처음부터 자본은 아니다.그것들은 자본으로 전환될 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전환 자체는 일정한 사정 아래에서만 가능한데, 그 사정은 요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아주 다른 두 종류의 상품 소유자들이 서로 마주하고 접촉해야 한다. 한편은 화페, 생산수단, 생활수단의 소유자들인데, 그들은 타인 노동력의 매입을 통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가치액을 증식시키기를 갈망한다. 다른 한편은 자유로운 노동자, 자기자신의 노동력의 판매자, 따라서 노동의 판매자들이다. 자유로운 노동자라 함은 두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 자신은 노예 농도 등과는 달리 생산수단의 일부가 아니라 의미와, 자영농민 등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지도 않으며 따라서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자유롭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품시장의 이와 같은 양극 분화와 함께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 조건들이 주어진다.자본주의체제는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들의 소유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을 전제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단 자기 발로 서게 되면, 자본주의체젠느 이 분리를 유지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확대되는 규모에서 재생산한다.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체제를 창조하는 과정은 노동자를 자기가 소유하던 노동조건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한편으로는 사회적 생활수단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적 생산자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과정- 이 외의 어떤 다른 것일 수 없다.따라서 이른바 시초축적은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시초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것이 자본의 이전 역사단계, 그리고 자본에 대응하는 생산양식 이전 역사단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구조는 봉건사회의 경제구조에서 성장했다. 후자의 해체는 전의 요소들을 해방시켰다.
민네이션, 생각
자본주의는 갑짜기 등장한게 아니다. 자본주의는 역사의 축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경우에는 농업혁명으로 시작된 봉건주의에서 중상주의로 그리고 다시 그것이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자본의 발전과정은 처음에는 화폐가 가치를 입어서 축적이 가능한 형태로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치를 축적하는 화폐는 쉽게 교환이 가능한 수단이 되고, 이것을 모든 생산력들의 잉여가치들을 흡수하는 것이다.물물교환의 형태에서는 축적이 불가능하지만, 화폐를 통한 교환가치의 발생은 잉여가치를 모두 화폐 안에 넣고 가치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화폐에 가치를 불어 넣음으로써 이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화폐로 변화시킬 수 있어다. 마치 드래곤볼에서 마인부우'가 만나는 사람마다 초콜릿으로 바꾸어 버린 것처럼, 자본주의라는 마인부우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화폐로 바꾸어 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은 항상 존재해왔으나, 이 노동이 가치로 변환되면서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민네이션, 자본주의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축적의 단계가 있다.그러한 축적의 과정은 메뉴팩처에서 시작해서 공장제 대규모운영으로 갈수록 심해진다.이러한 축적 가운데 발생하는 잉여가치도 역시 축적되는데 이것을 자본가가 가져가는 것이 바로 착취인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더 심화되면 이제 자본가들 사이에서 축적에 양에 따라서 경쟁이 일어난다.그래서 자본가들 중에서 경쟁에서 진 기업은 합병이 되고 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더 커지게 된다. 가치의 승수효과가 일어나는 것이고, 축적의 배가효가가 일어나는 것이다.이렇게 해서 자본가는 자본가의 의해서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는 효가가 나오고 이런식으로 반복하게 되면 자본가는 결국 자본의 노동자가 된다. 자본은 이렇게 점점 현실을 점령하게 되면서 스스로 인간을 없애버리고는 스스로 몰락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이라는 기생충은 그 대상인 인간이 사라지면서 역시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바라보았던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붕괴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자신의 몸체를 새롭게 변형하거나, 숙주의 범위를 넓혀서 전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것이다. 이것 역시 읽고 있던 마르크스는 '만국의 프로레탈리아들이여 단결하라!'라고 하면서 전세계화되는 자본주의에 대항에서 '인터네셔널'로 뭉쳐서 싸우자고 했던 것이다.
민네이션, 혁명
인지혁명-농업혁명-인터넷혁명-4차산업혁명 등등 혁명을 기존의 구조화된 가치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그래서 우리가 전제하고 있는 것들에 새로운 점을 찍고 이미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새로게 찍은 점들을 완전히 새로운 연결고리로 만들어 버린다. 혁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면 점들의 연결이 만들어내는 면접 외의 이는 '아웃라이어'들은 모두 숙청이나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혁명들의 양상을 보라! 그럼 어김없이 이런 '전제'를 바꾸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티브잡는 창의성이라는 것은 'connecting the dots'라고 말했고, 발명은 바로 이러한 점들을 찍는 행위이며, 이러한 점들을 연결하는 것들이 바로 혁명인 것이다. 선의 연결이 3개 이상이 만들어져야 면적이 된다. 따라서 피터 틸의 '제로투원'에서는 하나의 선을 그을 뿐이다. 이러한 과정이 적어도 3번 이상은 일어나야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3가지의 개념들이 만나야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지혁명은 '인간-상상력-미래'라는 개념이 있어야 확장이 가능하다. 산업혁명은 '농업-인간-축적'이라는 개념이 존재해야 확장이 가능하다.인터넷 혁명은 '인간-기술(인터넷)-사회'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간-기술(a,i)-사회' 인데 여기서 기술에 a.i기술이 추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