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_메시지 성경
바리새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유력한 지도자였다
하루는 그가 밤늦게 예수를 찾아와서 말했다
"랍비님, 우리 모두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관여하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선생님이 하시는 일,
곧 하나님을 가리켜 보이고
하나님을 계시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이 맞다. 내가 하는 말을 믿어라.
사람이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내가 가리키는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
니고데모가 말했다.
"이미 태어나서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여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3장_메시지 성경
현대사회는 내면을 발전시켰다
내면의 깊이가 너무 깊어지는데
반대로 그것을 채우는 내용은
빈곤 속에서 갈 길을 잃어 버린다
안에 채워져야 하는 것들
예를 들면 사랑, 배려, 이해와 같은 것들보다
온통 혼잡한 생각과 해석과 잡음이
어느새 가득 메워버린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미 벌써
자신 안에 일정한 해석의 툴이 만들어 진다
누군가를 경험해보지도 않았는데
그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일반적인 해석의 툴로
이 사람은 이래, 저 사람은 저래라고
이미 한 마디만 들어도 알아차렸다고 우쭐한다
판단의 자유라고 하지만 이미 그 판단은
셋팅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유를 산다고 하는 사람들의
면면에는 소외와 고독과 자리없음에 대한
외로움이 가득가득 넘쳐 흐른다
내면성은 이렇게 되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역사적으로 보면 내면 세계에
초월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또한 그걸 경험한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증언'이라고도 불렀다
중세시대에 초월은 '무한'이었으며
'무한'에 대비한 '유한'한 인간은
언제나 초월과 연결된 유한으로서
무한의 삶을 동경했다
이런 방식이면 인간은 언제나 유한 속에서
무한을 갈망하는 존재로 묘사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과 유한의 유비는
인간과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관계
직접 보고 만지고 듣고 이야기하는
몸의 관계를 간과하기도 했다
무한을 몰아낸 유한의 역사가 계몽주의라면
유한 속에 유한을 만든 것이 현대성이다
내면이 깊어진 유한한 존재들은
내면을 더 세분화하고 복잡하게 연결했다
현대인이라고 하면 결국 초월을 몰아낸
유한의 깊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교차하는
시간과 장소, 이스라엘의 한켠에서는
유한 속에 담겨진 무한을 보는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유한이 더욱 정교할 수록
무한을 볼 수 있는 시력은 더욱 떨어졌다
더 나아가 유한과 유한의 관계에서 배운
비인격적인 방식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지는 이들에게는
무한 속의 유한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무나 어렵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무한이 존재한다면 유한은 언제나
무한 속에서 부활이 가능했다
그 부활은 죽음 이전에 살아있으면서
무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도 남는 풍성한 관계였다
그리스도는 활활 타오르는 '현현'하는 존재였다
니고데모는 알지 못했다
현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인격적인 만남이 어떻게 가능한지
심지어 하나님과.
그래서 당시 헬라인들이 하던 것처럼
의심하고 측정해보고 뒤집어 보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해도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험이 없는 실재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경험이 흘러넘치는 현장의 감각을
절대로 따라잡지 못할 때
우리는 니고데모가 된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삶과 가슴 속에
우리의 정신과 감각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상상력을 회복시키시고
실재적인 관계를 인격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가장 낮은 부분까지, 그러니깐 가장 깊은
심층까지 내려갔고
가장 높은 부분까지, 그러니깐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만든 무한의 공간에서
그리스도는 새로운 관계로 가득가득 채운다
나중에 일이지만 니고데모는 결국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에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무한이 다시 무한으로 부활하는 시간
유한 속에 잠들어 있던 무한을 깨우는 시간을
경험하고서는 자신 안에 무한을
인격적으로 꺼내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꺼낸 말을 '좋은 소식'
'복음'이라고 말하곤 했다
오늘도 그 무한의 언어가 나를 부른다
유한 속에서 꿈틀대는 무한이
말씀에 응답하여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들어갔다가
세례를 받고 다시 부활한다
우리의 삶이 매일 매일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