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미어샤이머, 서베스천 로사토
국제정치학에서 국가는 다양하게 정의된다.
자유주의, 현실주의 혹은 구성주의에 따라서 국가의 정의가 다르지만 현실주의 입장에서는 흔히 '합리적 행위자'로 가정된다. 또한 '단일행위자'로 규정되지만 구체적인 실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분분하다. 공세적 현실주의자라고 알려진 미어샤이머는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책에서 현실주의자로서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어샤이머와 로사토는 이 책을 How States Think: The Rationality of Foreign Policy (2023) 통해 국가의 합리성이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 많은 학자가 국가의 실수를 비합리성으로 치부하지만, 저자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국가가 내리는 최선의 선택에 주목한다. 이들은 전략적 합리성을 정의하며 개인과 집단 차원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신뢰성 있는 이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따라서 본 저술은 국제정치의 혼돈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대한 정교한 로드맵을 제공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국가 행동의 기저에 깔린 논리적 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합리성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깨는 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학술적 목적이다. 저자들은 기대효용 극대화라는 경제학적 모델이나 정치심리학적 접근이 가진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국제정치라는 특수한 환경은 정보가 극도로 제한된 불확실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계산을 넘어선 전략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본 글에서는 책의 구성을 따라 전략적 합리성의 정의와 불확실성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룰 것이다. 또한 실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합리적 국가와 비합리적 국가의 차이를 선명하게 대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최우선 목표인 생존과 목표 합리성의 관계를 정리하며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과정은 현대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지적 여정이 될 것이다. 말그대로 현실 속에서 국가는 진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먼저 알아볼 것은 국가를 생각할 때 합리성의 개념을 확대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의하고 있는 합리성을 국가라는 단일행위자로 확대해서 국가의 정보기관과 최고 리더십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미어샤이머는 공세적, 공격적 현실주의자여서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는 먼저 '선방'을 날려야한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다. 그런 행위를 할려면 당연히 그 밑 바닥에 세계와 국가에 대한 세계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하고, 당연히 그 아래에는 놓여 있는 존재론들이 있어야 한다. 미어샤이머는 증명된 학자라는 것을 알리듯이 이 가장 중요한 '관점'에서부터 시작해서 국가가 어떻게 합리성을 구성하고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그럼 '전략적 합리성'이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과연 무엇인가?
첫째, 전략적 합리성은 개인과 국가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다층적 개념이다. 정책결정자 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일관된 이론적 틀을 가지고 있어야 합리적이라 평가받는다. 반면 국가는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융합되는 집단적 심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리성을 획득한다. 저자들은 개인의 직관이나 감정보다는 체계적인 이론 지향적 사고가 국가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합리적 행위자는 단순히 이익을 쫓는 존재가 아니라, 논리적 개연성을 갖춘 전략을 구사하는 존재다. 이러한 구분은 국가의 행동을 분석할 때 정책 결정 구조의 건전성을 살피는 기준이 된다. 전략적 합리성은 결국 정보의 공백을 이론과 토론으로 메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합리성은 완벽한 결과가 아닌, 최선의 판단을 도출하기 위한 구조적 노력이다.
둘째, 우리가 마주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은 확실성이나 위험이 아닌 극도의 불확실성 상태다. 확실한 세상에서는 모든 정보를 알 수 있고, 위험한 세상에서는 발생 확률이라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세상에서는 정보 자체가 부족하며 미래의 사건을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저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정책이나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을 통해 이러한 불확실성을 증명한다. 정보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는 어둠 속을 걷는 여행자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때 국가는 단순한 데이터에 의존하기보다 세상을 해석하는 '이론'이라는 등불을 필요로 한다. 불확실성은 비합리성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가 시작되어야 하는 출발점이다. 국가는 이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략적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한다.
셋째, 불확실한 환경에서 이론은 정책결정자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인지적 도구가 된다. 이론은 복잡한 현실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부수적인지를 가려내는 필터 역할을 수행한다. 저자들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신뢰성 있는 이론'의 범주에 넣으며 그 논리적 일관성을 높게 평가한다. 반면 문명 충돌 이론이나 편승 이론 등은 국제정치의 역학을 설명하기에 논리적 기반이 취약하다고 비판한다. 신뢰성 있는 이론에 기반한 정책은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는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론 지향적 사고는 정책결정자가 일시적인 감정이나 대중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게 돕는 방파제다. 데이터에만 매몰된 사고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이론은 합리적 국가가 불확실성을 돌파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넷째, 개인의 합리성이 이론적 토대에 있다면, 국가의 합리성은 반드시 '심의'라는 민주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 한 명의 지도자가 내리는 결정은 아무리 천재적이라 해도 개인의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합리적 국가는 다양한 부서와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의 이론을 검증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시스템을 갖춘다. 이러한 관점의 통합 과정은 오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는 핵심 기제다. 심의가 실종된 결정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비합리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저자들은 과정이 합리적이라면 그 결과가 비극적일지라도 그 국가를 비합리적이라 비난할 수 없다고 본다. 합리성은 결과론적인 잣대가 아니라 의사결정 체계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결국 집단적 심의는 국가라는 거대 조직이 지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생명선과 같다.
미어샤이머는 기존의 합리적 선택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기대효용 극대화' 모델을 강하게 비판한다. 경제학에 뿌리를 둔 이 모델은 행위자가 모든 대안의 확률과 보상을 계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불확실성은 이러한 수학적 계산이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이 훨씬 더 넓다. 기대효용 극대화는 정보가 완벽하거나 확률 계산이 가능한 '위험'의 상황에서나 유효한 이론이다. 저자들은 이 이론이 개인과 국가의 합리성을 정의하는 데 있어 현실적인 지침을 주지 못한다고 본다. 또한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복잡한 정치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실질적인 합리성은 계산기 속의 숫자가 아니라 정책가의 머릿속에 있는 이론적 논리에서 나온다. 따라서 경제학적 합리성은 국제정치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기에는 부적절한 나침반이다.
국가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방식 역시 합리적이다
미어샤이머는 정치심리학이 주장하는 '국제의사결정의 비합리성' 가설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정치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와 편향 때문에 국가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개인의 심리적 결함에만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국가는 개인의 집합이며, 잘 설계된 조직적 장치는 개인의 인지적 오류를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 심의 과정을 거친 국가의 결정은 개인의 휴리스틱이나 정신적 지름길을 넘어서는 합리성을 획득한다. 비합리성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정치심리학적 접근은 대다수 국가의 전략적 노력을 과소평가한다. 인간의 심리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것이 합리적 체계를 완전히 압도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치심리학은 국가 행동의 주변적인 요소는 설명할 수 있어도 핵심 동력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미어샤이머는 또한 유추와 휴리스틱을 통한 의사결정이 반드시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정치심리학자들은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대입하는 유추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미어샤이머와 로사토는 적절한 이론적 근거가 뒷받침된 유추는 오히려 합리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고 본다. 문제는 유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유추를 검증할 심의 과정이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다. 편향이라고 부르는 휴리스틱 역시 복잡한 상황에서 신속한 결단을 내리기 위한 인간의 효율적인 사고 방식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직관적 판단이 국가의 공식적인 정책 결정 시스템 내에서 어떻게 걸러지는가이다. 책은 심리학적 도구들이 이론적 엄밀성을 갖춘다면 충분히 합리적 도구로 쓰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합리성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도구를 사용하는 과정의 부실함에서 기인한다.
사실 여기에는 합리성의 정의를 과정 중심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이 모든 비판의 결론이 담겨있다. 기존 이론들은 정책이 실패하면 소급하여 그 과정이 비합리적이었다고 결론 내리는 사후 확신 편향에 빠져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그 전쟁을 결정한 과정이 반드시 비합리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결과와 과정을 철저히 분리하여 국가의 의사결정 구조 그 자체를 해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 선택 이론의 계산기나 정치심리학의 현미경은 국가라는 거대한 실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국가의 사고방식은 더 거시적이고 이론적이며, 동시에 조직적인 상호작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적 고찰은 국가를 단순한 행위자가 아닌 '생각하는 조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결과를 넘어 국가가 내리는 결정의 논리적 뼈대를 바라보아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삼국협상 대응은 전략적 합리성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독일 지도부는 포위망이 좁혀오는 상황에서 현실주의적 세력균형 이론에 근거하여 전략을 짰다. 이들은 적대 세력의 결속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내부 토론과 심의 과정을 거쳤다. 비록 결과적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독일이 패배했지만, 당시의 결정 과정은 이론적으로 매우 탄탄했다. 정책결정자들은 상대국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논리적인 가설을 세웠다. 이 사례는 실패한 정책도 합리적일 수 있다는 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다. 독일의 대전략은 당시의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 도출된 최선의 지적 산물이었다. 이처럼 합리성은 역사적 결과의 비극성에 가려져서는 안 되는 독립적인 가치다.
제 1차 대전에 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일본과 프랑스 역시 불확실성 속에서 합리적인 대전략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소련과의 잠재적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 신뢰성 있는 이론적 토대 위에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프랑스 또한 나치의 위협에 대응하여 영국과의 동맹과 군비 확장을 두고 심도 있는 전략적 고민을 이어갔다. 이들은 각국의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설계했다. 내부적으로는 군부와 외교 라인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오갔으며 이는 심의의 조건을 충족했다. 비록 나치 독일의 전격전이라는 변수가 이들의 계산을 빗나가게 했으나 과정은 합리적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강대국들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전략적으로 사고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가는 결코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논리 싸움을 벌인다.
냉전 이후 미국의 나토 확장과 자유주의 패권 추구는 현대사의 중요한 합리적 결정이었다. 많은 현실주의자가 나토 확장을 비판하지만, 당시 미국 행정부는 자유주의 이론에 근거한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민주주의 확산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이론적 믿음이 정책의 뿌리가 되었다. 또한 행정부 내부와 의회, 전문가 집단 사이의 광범위한 심의를 통해 이 정책이 확정되었다. 이는 미국이 단순히 힘을 과시한 것이 아니라, 특정 이론에 기반해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 한 전략적 행동이다. 자유주의 패권 전략 역시 미국의 장기적 이익과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체계적인 구상이었다. 결과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이론적 일관성은 합리성의 기준을 만족한다. 강대국은 자신의 이념을 전략화하여 이를 현실에 투영하는 합리적 주체로 기능한다.
여기서 이제 고민이 진행된다. 그럼 과연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대전략 결정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합리적 국가는 공통적으로 이론 지향성과 심의성을 공유한다. 이들은 자국이 처한 환경을 분석할 때 반드시 보편적인 국제정치 논리를 활용한다. 또한 지도자 개인의 독단보다는 시스템에 의한 의사결정을 선호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한다. 이러한 대전략은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국가의 영속성과 안보를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역사적 사례들은 합리적 과정이 국가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책임을 증명한다. 반면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국가는 필연적으로 전략적 오류를 범하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대전략은 한 국가의 지적 역량이 총동원되는 분야이며, 합리성은 그 역량의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를 볼 때 승패의 기록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전략적 고뇌를 읽어야 한다.
주요 위기대응 결정의 5가지 사례
1914년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개시 결정 : 흔히 '우연한 충돌'이나 '광기'로 묘사되지만, 저자들은 이를 철저히 계산된 합리적 결정으로 본다. '예방 전쟁(Preventive War)' 논리다. 러시아가 군 현대화를 마치면 독일의 생존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현실주의적 판단이 작용했다. 독일 지도부는 사라예보 사건 이후 러시아, 프랑스와의 전쟁 가능성을 두고 군부와 문관 정부 사이의 긴밀한 협의를 거쳤다. 지금 전쟁을 치르는 것이 미래의 파멸을 막는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심의의 산물이다.
1941년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격 결정 : 승률이 낮은 전쟁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비합리적이라 비판받지만, 당시 일본의 처지에서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미국의 경제 봉쇄(석유 금수 조치)로 인해 가만히 앉아서 고사하느냐, 아니면 기습을 통해 협상력을 얻느냐의 생존 논리다. 수개월간 지속된 어전회의와 연락회의를 통해 육·해군 전문가들이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미국과의 국력 차이를 인지하면서도, 서구 패권에 굴복하지 않고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최후의 합리적 도박이었다.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결정 (바르바로사 작전) : 히틀러의 독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일군 수뇌부의 전략적 합의가 뒷받침된 결정이다. '공세적 현실주의'와 '생활권(Lebensraum)' 이론이다.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유럽 대륙의 유일한 잠재적 위협인 소련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다. 독일 참모본부는 소련군의 역량을 저평가하는 오류를 범했으나, 공격의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방대한 군사적 검토와 부처 간 협의를 거쳤다. 잘못된 정보에 기반했을지언정, 의사결정 체계는 이론과 심의를 충족했다.
1962년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 결정 : 위기관리의 정석으로 불리는 사례로, 국가가 어떻게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핵 억제 이론'과 '제한적 대응' 논리다. 전면전은 피하되 소련의 미사일 배치는 막아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 집행위원회(ExComm)를 설치하여 다양한 전문가들이 공습, 침공, 해상 봉쇄 등 모든 대안을 놓고 끝장 토론을 벌이게 했다. 이 치열한 심의 덕분에 가장 위험이 적은 '해상 격리'라는 합리적 해법이 도출되었다.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결정 (프라하의 봄) :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단행된 군사 행동이다. '브레즈네프 독조(Brezhnev Doctrine)'로 알려진 제한 주권론이다. 사회주의권 한 국가의 이념적 이탈은 전체 진영의 안보 위협이라는 논리다. 브레즈네프를 비롯한 정치국 위원들은 침공이 가져올 국제적 비난과 동구권 안정을 저울질하며 심도 있게 논의했다. 단순한 무력 행사가 아니라, 진영의 붕괴를 막기 위한 이론적 명분과 내부 합의를 거친 전략적 대응이었다.
국가가 맞이하는 가장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합리적 메커니즘은 여전히 작동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개시 결정은 흔히 광기 어린 질주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정교한 전략적 계산의 산물이었다. 독일과 주변국들은 예방 전쟁의 논리와 동맹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각자의 이론적 결론을 내렸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역시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한 고사를 막기 위한 절박한 합리적 선택이었다. 일본 지도부는 승률이 낮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생존을 위한 유일한 통로로 전쟁을 선택했다. 이러한 결정들은 평화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국가 생존의 논리 안에서는 합리적이다. 위기는 국가의 본질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며, 이때의 합리성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며, 그 시작 또한 철저히 계산된 정치적 행위다.
구체적이 사례를 생각해보자.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위기관리에서 심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케네디 대통령은 엑스콤(ExComm)을 구성하여 다양한 옵션을 두고 치열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군사적 공격부터 외교적 봉쇄까지 모든 가능성이 이론적으로 검토되었고, 각 대안의 위험 요소가 분석되었다. 이러한 집단적 심의 과정은 지도자 개인이 빠질 수 있는 감정적 대응을 차단하고 냉철한 해법을 찾게 했다. 결과적으로 핵전쟁의 위기를 넘긴 이 사례는 합리적 국가 시스템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다.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결정 또한 블록 내부의 결속을 유지하려는 이론적 명분 아래 심의를 거쳐 단행되었다. 위기 속에서의 합리성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유일한 도구로 기능한다.
전쟁의 확대나 악화 결정 역시 국가가 이론적 틀 안에서 내리는 전략적 판단의 연속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개입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도미노 이론이라는 자유주의적 안보관에 기초했다. 공산주의의 확산이 미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할 것이라는 확고한 이론적 믿음이 정책을 이끌었다. 이러한 결정 과정에는 국방부, 국무부, 정보기관 사이의 끊임없는 보고와 토론이 수반되었다. 비록 늪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정책 결정 당시에는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한 합리적 명분이 존재했다. 전쟁의 수행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전황에 대한 이론적 재해석과 전략적 수정의 반복이다. 국가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합리적 논리를 생산한다. 결국 전쟁의 전개 과정은 국가 지성이 극한의 시험대에 오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위기관리의 사례들은 합리성이 도덕성이나 평화주의와는 다른 층위의 개념임을 시사한다. 합리적 결정이 반드시 평화로운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스템이 붕괴된 상태에서 내리는 비합리적 결정보다는 이론과 심의에 기반한 결정이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예측 가능성은 국제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 전쟁의 승패보다 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보여주는 합리적 패턴은 다른 행위자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협상의 여지를 만든다. 이처럼 위기관리와 전쟁 수행은 국가의 전략적 합리성이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는 현장이다. 우리는 이 현장을 통해 국가가 생존을 위해 얼마나 정교하게 사고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국가의 대전략 결정의 5가지 사례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삼국협상 대응 (1904~1914) : 독일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포위망(삼국협상)에 대응해 수립한 전략이다. 독일 지도부는 현실주의적 세력균형 이론을 바탕으로 상황을 인식했다. 상대 진영의 결속이 독일의 생존을 위협하는 '포위' 상태라고 규정한 것이다. 재상 베트만 홀베크와 외교 정책 결정자들은 협상국 사이의 균열을 만드는 이간책부터 군비 증강까지 다양한 대안을 검토했다. 비록 이 전략이 전쟁으로 귀결되었으나, 당시 독일 내부에서는 가용 정보를 바탕으로 치열한 논리적 검토와 심의가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대소련 전략 (1936~1941) : 만주 사변 이후 일본이 북쪽의 소련과 남쪽의 영·미 세력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한 과정이다.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해야 한다는 지정학적 현실주의와 동남아시아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자원 안보론 사이에서 갈등했다.이른바 '북진론'과 '남진론'을 두고 육군과 해군, 그리고 외무성 사이에 수많은 연락회의와 어전회의가 개최되었다. 각 진영은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들의 이론적 타당성을 주장했으며, 최종적으로 소-일 중립 조약을 체결하고 남진을 결정하는 과정은 고도의 전략적 심의의 산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프랑스의 나치 독일 대응 (1933~1940) : 히틀러의 재무장과 팽창 정책에 맞서 프랑스가 취한 방어 및 동맹 전략이다. 프랑스는 방어적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마지노선이라는 거대 방어벽을 구축하고, 동시에 영국 및 소련과의 동맹을 통해 독일을 억제하려 했다. 프랑스 정계와 군부는 독일의 위협 수준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했다. 1940년 패배라는 결과 때문에 흔히 비합리적이라 비난받지만, 저자들은 당시 프랑스 지도부가 이론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집단적 의사결정 체계를 가동했기에 이를 합리적 사례로 분류한다.
냉전 이후 미국의 나토(NATO) 확장 결정 (1993~현재) : 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들을 서방 안보 체제인 나토에 편입시킨 결정이다.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는 자유주의 제도주의 이론에 뿌리를 두었다. 민주주의 국가들을 결속시키고 국제 제도를 확장하는 것이 장기적인 평화와 미국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논리다. 이 결정은 미 행정부 내부뿐만 아니라 의회, 학계, 나토 동맹국들 사이에서 10년 넘게 공개적이고 치열한 심의를 거쳐 확정되었다. 현실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대 논거까지 모두 검토된 후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절차적 합리성이 매우 높다.
냉전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 (1990년대~2010년대) : 미국이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서 전 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확산시키려 한 대전략이다. 자유주의 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이 그 핵심이다. 전 세계가 민주화되면 전쟁의 원인이 사라지고 미국의 패권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이론적 믿음이다. 이 전략은 특정 지도자의 독단이 아니라, 국무부, 국방부, 주요 싱크탱크 등 거대 관료 조직과 지식인 집단의 광범위한 합의를 통해 형성되었다. 비록 이라크 전쟁 같은 개별 작전의 비합리성이 지적되기도 하나, '자유주의 패권'이라는 거대 전략 자체는 일관된 이론적 흐름과 국가적 심의를 거친 합리적 설계였다.
5. 비합리적 국가 행동과 목표 합리성의 본질
미어샤이머는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비합리적 국가 행동'의 사례들을 통해 합리성의 경계를 확정한다. 그럴려고 이 책을 썼고, 자신의 이론이나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위험 전략은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고 심의 과정이 왜곡된 비합리적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 전 영국의 무책임 전략 또한 현실을 도피하고 이론적 근거 없이 유화책에만 매달린 결과였다. 미국의 쿠바 침공(피그스만 침공)이나 이라크 침공은 충분한 비판적 심의 없이 도그마에 빠져 내린 결정들이다. 이러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특정 개인의 아집이 지배하거나, 반대 의견이 억압된 폐쇄적 구조에 있다. 비합리성은 국가가 이론을 버리고 감정에 치우치거나, 심의 시스템을 스스로 파괴할 때 나타난다. 이는 합리적 국가 가설이 보편적이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경고등이다.
국가 행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목표 합리성'은 국가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다. 합리적 국가의 최우선 목표는 무엇보다도 '생존'이며, 이는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 된다. 국가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은 그 자체로 강력한 목표 합리성을 지닌다. 하지만 때로 국가는 생존 이외의 목표, 예를 들어 이념의 전파나 지도자의 영광을 우선시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생존이라는 본질적 목표를 무시하는 행위는 가장 심각한 수준의 비합리성으로 간주된다. 목표가 불분명하거나 모순될 때 국가의 전략은 갈지자 행보를 보이게 되며 힘의 낭비를 초래한다. 따라서 합리적 국가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명확히 인지한다. 목표 합리성은 전략적 합리성을 이끄는 북극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목표 합리성의 실천은 생존 위협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국가는 자국의 물리적 영토와 주권이 침해받을 가능성을 상시 감시하며 이에 기민하게 대응한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국가는 불필요한 모험을 피하고 실리적인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생존 위협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포장하는 국가는 비합리적인 전략적 선택을 내리기 쉽다. 저자들은 국가가 목표 합리성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파멸적 결과를 역사를 통해 경고한다. 목표가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 비합리적이면 국가의 생존은 보장될 수 없다. 반대로 수단은 정교하더라도 목표 자체가 생존과 무관하다면 그 합리성은 모래성 위에 지은 집과 같다. 결국 목표와 수단의 조화야말로 합리적 국가가 도달해야 할 최종 단계다.
결론적으로 국가는 생각하는 존재이며, 그 사고의 핵심은 생존을 향한 합리적 투쟁에 있다. 미어샤이머와 로사토가 분석한 비합리적 사례들은 역설적으로 합리성의 소중함을 더욱 부각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역사 속에서 합리적 행위자로 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시스템을 정비한다. 비합리성은 예외적인 현상이며, 국제정치의 거대한 흐름은 합리적 국가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 국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곧 국제사회의 질서와 갈등을 해석하는 열쇠를 쥐는 것과 같다. 우리는 국가를 단순히 힘의 덩어리가 아닌, 지성과 논리를 가진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통찰은 냉혹한 국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국가의 생각은 곧 그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국제정치학의 오랜 가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건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미어샤이머와 로사토는 합리성을 과정과 심의의 관점에서 정의함으로써 분석의 지평을 넓혔다. 이들은 불확실성이라는 숙명적 환경 속에서 이론이 갖는 절대적인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또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강대국들의 행동이 결코 우연이나 광기의 산물이 아님을 입증했다. 비합리적인 사례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국가 정책의 건강성을 평가할 틀을 마련했다. 결국 국가는 생존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장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존재다. 이러한 논의는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학자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이제 국가의 행동 뒤에 숨겨진 치열한 지적 설계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특히 현실주의 이론가 미어샤이머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공세적 현실주의자이지만 이 책에서 그는 단순히 힘의 논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운용하는 국가의 '생각'과 '과정'에 주목한다. 합리적 국가 가설은 국제정치를 예측 가능하고 분석 가능한 영역으로 유지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만약 국가가 진정으로 비합리적이라면 우리는 어떤 안보 전략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의 말처럼 국가가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면, 우리는 대화를 통해 파국을 막을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은 국가들이 서로의 합리성을 신뢰하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래의 국제 관계 역시 생각하는 국가들의 정교한 수싸움 속에서 그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이런 글을 읽다가 웬트의 구성주의를 읽다가 다시 자유주의자들의 글을 읽으면 관점이 왔다가 갔다가 한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은 공세적 현실주의를 밀어 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평화를 만들것인지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