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의 정의와 역사
철학의 근본테제는 나와 세계이다.
세계가 먼저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만들어졌는지를 구분함에 따라서 철학적인 갈래가 달라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무엇으로 나를 규정하는지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본질이다. 세계가 먼저 만들어지고 내가 만들어졌다고 하면 그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가 더 세밀한 구분법이다. 예를 들면 실존주의는 세계와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감각적인 영역에서 부정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실존한다고 느껴진다면 유신론적 실존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부정할 수 없는 결론이 하나 있는데 어찌되었건 '물질'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몸도 물질이고 세계도 물질이다. 그 물질은 정신이나 생각이 있기 전에도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되면 자연스럽게 '유물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철학사에서 유물론의 역사는 현대까지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왔다. 인간의 본질을 규정할 때 '물질'을 중심으로 규정하는 것이 가장 쉽고 가장 빠르다. 유물론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시대부터 있었으며 지금도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부정할 수 없는 자본주의는 그 이름에서 '자본'을 기반으로 실존적인 상품을 기반으로 하는 유물론이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공산주의 역시 '물질'을 기본으로 한다. 이에 대해서 종교는 물질을 아예 떨어 버리거나 물질을 하층에 두는 방식으로 구분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물질을 기반으로 생각하는 다양한 범주는 디지털과 AI의 시대가 되면서 다양한 혼종적인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세계가 이렇게 되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이 순간에도 '물질'의 종류인 뇌세포가 교류하여 투사를 하고 기억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생각하는 것 역시도 유물론의 하나라고 볼 수 있고, 이런 기억의 역사를 모아보면 역사적인 유물론이 된다. 위에서 잠깐 본 것처럼 생각과 기억이 새로운 현상을 만나서 더 나은 물질로 도약한다고 하면 이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된다. 유물론의 역사는 기나길고, 아마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매번 세계의 민낯에 치장한 메이크업이 새로운 유물론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와 대칭하여 관념론도 새로운 얼굴을 하고 등장할 것이다. 오늘은 유물론의 역사를 알아보려고 한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어떻게 물질을 생각해왔고, 또 그것을 기반으로 세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코젤렉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이클폴라니까지 다녀오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요즘은 간단하게 쓴다고 오래걸리고 많이 쓰게 된다. 일단은 써 놓고 보자.
유물론의 시작을 알려면 고대 그리스시대로 가야한다. 원자론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의 근원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와 그것들이 운동하는 공간개념으로써 '허공'으로 규정한다. 원자론이 유물론의 기초이자 시작이다. 추후에 나오는 모든 유물론의 시작은 원자론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의 가장작은 단위 말이다. 현대에 양자역학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 유물론자들은 모든 사물이 원자의 기하학적 형태와 배열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다. 물질을 규정하자마자 철저한 인과론적 세계관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통계학도 하나의 원자들은 허공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결합하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측정하기위한 방법이다. 여기에는 어떤 신적인 목적이나 설계도 개입하지 않는다. 사물은 성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원자의 배치 구조가 바뀜으로써 우리 눈에 다르게 보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 현상을 초자연적 신비주의에서 분리해냈다. 여기서 객관적인 물리 법칙의 영역이 생성된다.
데모크리토스는 감각되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불변하는 물질적 실체를 파악함으로써 초기 과학적 사고의 원형을 제시하였다. 만물은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인간은 이를 인식함으로써 세상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원자론은 보이지 않는 미시적 세계를 통해 거시적 세계를 설명하려 했던 유물론의첫걸음이다.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설명하기 위해 '원자의 편위(Clinamen)'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원자들이 수직으로 낙하하다가 아주 미세하게 경로를 이탈하는 이 우연성이 세상의 변화와 인간의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 것이다. (클리나멘의 개념에서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시작되며, 요즘의 유행하는 신유물론의 원자의 행위성개념도 만들어진다.) 에피쿠로스는 신이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원자의 흩어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했다. 영혼 또한 미세한 원자로 구성된 물질적 존재이기에 육체의 소멸과 함께 영혼도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사라진다는 논리가 형성된다. 죽음은 우리가 존재할 때 오지 않으며 죽음이 왔을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인간을 종교적 억압과 미신으로부터 해방시켜 마음의 평정인 '아타락시아'에 도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은 고통 없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고대 유물론은 이처럼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인간 삶의 질을 높이려는 윤리적 지향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자론의 이해는 근대 과학 혁명 시기에 이르러 가상적인 가설을 넘어 실증적인 물리학의 토대가 된다. 중세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가로막혀 있던 유물론적 사유는 르네상스 이후 자연을 관찰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받았다. 갈릴레이와 뉴턴으로 이어지는 근대 물리학의 발달은 고대 원자론이 제시했던 입자적 세계관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물질의 최소 단위에 대한 탐구는 화학의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만물이 입자의 결합이라는 확신은 앞에서 잼깐 설명한 것처럼 현대 양자역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신기하게도 고대의 유물론자들은 실험 도구는 없었지만 사유의 힘만으로 물질적 실재의 근원을 꿰뚫어 보았다. 그들이 남긴 원자와 공간의 개념은 서구 철학사에서 관념론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적 무기가 되어 왔다. 현대인들에게도 이들의 사상은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종교적 도그마를 경계하는 합리성의 원천이 되었다.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베이컨의 경험론을 계승하여 모든 존재를 '연장(extension)을 가진 물체'로 정의하며 체계적인 유물론을 구축했다. 그는 인간의 정신 활동이나 사회적 현상조차도 물질의 운동 법칙인 역학적 원리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사유는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물질적 자극이 뇌에서 일으키는 미세한 운동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홉스는 국가를 '리바이던'이라는 거대한 인공적 인간으로 묘사하며 사회 계약론 역시 유물론적 인간 이해에 기초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보존을 꾀하는 물질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며 이는 자연 상태에서의 만인의 투쟁을 유발한다. 그는 영혼이나 천사 같은 비물질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물리적 실체만이 존재론적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계론적 관점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신학적 인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근대 정치철학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경로는 복잡한 사회 구조를 단순한 물질적 상호작용으로 환원하여 분석하는 철저한 일원론적 유물론의 길이었다.
프랑스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라 메트리는 홉스의 기계론을 한 단계
더 밀어붙여 '인간 기계론'이라는 파격적인 저서를 발표했다.
그는 데카르트가 동물만을 기계로 보았던 것에서 나아가 인간 또한 복잡하고 정교한 태엽 장치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육체의 상태가 정신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결정하며 배고픔이나 질병이 인간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보았다. 영혼은 신체 내부의 생리적 작용을 가리키는 이름일 뿐이며 육체와 독립된 실체로서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는 인간의 도덕이나 지능 역시 뇌 조직의 구조와 물질적 조성에 따라 결정되는 생물학적 기능으로 해석했다. 인간을 기계로 본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자연의 법칙 안에 통합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정신적 현상의 물질적 근거를 밝혀내고자 했으며 이는 현대 생리학과 심리학의 선구적 시각이 되었다. 라 메트리의 사상은 당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유물론을 생물학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근대 기계적 유물론은 자연과 인간을 수학적 법칙으로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파악함으로써 근대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들은 사물을 고립된 상태로만 관찰하며 사물 내부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변화의 원인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모든 변화를 외부의 충격에 의한 위치 이동으로만 설명하려 했기에 질적인 도약이나 발전의 과정을 놓치는 한계를 보였다. 이 때문에 훗날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형이상학적이고 고정적인 유물론'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변증법적 유물론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적 유물론이 정립한 물질적 인과율은 현대 과학 방법론의 확고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객관적인 법칙을 찾아내려 했던 이들의 경로는 합리주의 정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뇌 과학이나 유전공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 하는 시도 역시 기계적 유물론의 경로와 맞닿아 있다. 근대의 유물론자들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신비 뒤에 숨겨진 육체와 물질의 정교한 매커니즘을 세상 밖으로 드러냈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절대관념론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무너뜨리고 철학의 중심을 하늘(정신)에서 땅(인간)으로 옮겨놓았다. 그는 정신이 물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인 인간이 사유의 주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함으로써 유물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헤겔 철학이 신학을 철학적 용어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인간의 감성적 삶을 철학의 최고 원리로 세웠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을 추상적인 '자아'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고 사랑을 갈구하며 음식을 먹는 '감성적 존재'로 규정했다. "인간은 그가 먹는 바로 그것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문장은 인간의 물질적 기반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관념론적 사유가 인간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고 보았으며 인간 본연의 감각적 현실을 회복할 것을 주장했다. 포이어바흐의 경로는 신비화된 관념의 세계를 인간의 구체적인 생활 세계로 환원시키는 해방의 과정이었다. 그는 유물론을 단순한 물리적 이론이 아닌 인간 중심의 가치관으로 정립하며 인본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부여했다.
포이어바흐 유물론의 핵심은 종교 비판을 통해 인간의 소외된 본질을 되찾는 과정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신이란 인간이 자신의 최고의 속성들을 투사하여 객관화시킨 환상적인 투영물에 불과하다고 통찰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지혜, 사랑, 힘을 극대화하여 신이라는 관념을 만들고는 도리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비밀은 인간학에 있으며 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도덕이라고 강조했다.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종교적 환상을 깨고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주장은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신에게 바쳐졌던 모든 숭고한 가치들을 다시 인간에게 되돌려줌으로써 인간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려 노력했다.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유물론은 억압받던 대중에게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상적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유물론은 인간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 종의 존재로만 보았다는 한계를 지닌다. 인간을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존재로 보기보다 정체된 자연적 본성으로 파악했기에 실질적인 사회 변혁의 원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포이어바흐의 한계를 지적하며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한다는 유명한 비판을 남겼다. 포이어바흐는 유물론의 기초를 닦고 종교의 굴레를 벗겨냈으나 인간이 맺는 복잡한 생산 관계와 계급 구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한 감성적 유물론은 청년 마르크스에게 거대한 충격을 주었으며 변증법적 유물론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경로는 관념론의 감옥에서 유물론의 광장으로 인간을 이끌어낸 혁명적인 사유의 전환점이었다. 오늘날에도 포이어바흐의 사상은 인간의 존엄성과 감각적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인본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뿌리로 남아 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가공의 신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진짜 인간을 철학의 무대 위에 세운 인물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창조적으로 결합하여 유물론의 가장 완성된 형태를 정립했다. 물질이 정신에 우선한다는 유물론적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물질을 정지된 기계가 아닌 스스로 변화하는 역동적 실체로 파악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내부의 모순과 대립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질적으로 도약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헤겔의 변증법이 관념의 자기 운동이었다면 마르크스는 이를 거꾸로 세워 현실 세계의 물질적 운동 법칙으로 전환시켰다. 이들에게 물질은 단순한 고체 덩어리가 아니라 에너지와 운동, 그리고 사회적 실천이 응축된 살아있는 역사적 실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연과 사회의 일반적인 변화 법칙을 규명함으로써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혁명적 결론에 도달한다. 모든 존재는 생성되고 소멸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진통이다. 이들의 경로는 사물을 정적인 상태가 아닌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함으로써 철학에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을 통해 물질세계 자체가 변증법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시도했다.
그는 양적 변화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법칙과 대립물의 통일 및 투쟁의 법칙을 자연 현상에서 찾아냈다.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는 현상이나 생명체의 진화 과정은 물질 내부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전환되는 변증법적 과정의 전형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의 의식을 뇌라는 고도로 조직된 물질의 산물이자 외부 세계의 반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반영은 수동적인 복사가 아니라 인간의 실천적 활동을 통해 외부 세계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창조적 과정이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기계적 유물론과 차별화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노동을 통해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엥겔스의 이러한 작업은 유물론을 자연 과학적 근거 위에 견고하게 세우고 사유의 일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사상은 전 세계 민중의 해방을 위한 강력한 실천 지침으로 작용했다. 세상을 해석하는 데 머물렀던 과거의 철학들과 달리 변증법적 유물론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무기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필연적인 변화의 과정으로 파악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과학적으로 예측하려 했다.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물질적 기반의 변화가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명확히 규명하고자 했다. 비록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여러 논쟁과 오용이 있었으나 그 분석의 날카로움은 여전히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경로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 미래를 설계하려는 인간 의지의 산물이다. 그것은 낡은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우주의 보편적 법칙을 인간 사회에 적용한 거대한 지적 기획이었다. 오늘날에도 모순된 현실을 타파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철학적 도구는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를 인류 역사에 적용하여 역사가 우연이 아닌 법칙에 따라 진보한다는 '역사적 유물론'을 창시했다.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 종교나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인간의 물질적 생존을 위한 '생산'에 있다고 단언했다.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성격이 결정되며 이것이 역사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 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결합인 '생산 양식'은 사회라는 건물의 단단한 '경제적 토대'를 형성한다. 이 토대 위에 법, 정치, 제도, 철학, 종교와 같은 '상층구조'가 세워지며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역사적 유물론의 경로는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대전환을 이루었다. 역사는 위인들의 영웅담이 아니라 생산 수단을 둘러싼 계급들 간의 치열한 투쟁의 기록으로 재해석되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통해 인류사가 원시 공동체부터 자본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필연적 단계를 밟는다고 보았다.
사회 변화의 역동성은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낡은 생산관계(소유 구조)가 이를 수용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충글에서 비롯된다. 낡은 관계는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이를 타파하려는 피억압 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통해 새로운 사회 질서가 탄생한다. 봉건제 사회에서 상공업의 발전(생산력 증대)이 영주 중심의 토대와 충돌하며 시민 혁명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역사의 발전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물질적 기반의 모순이 해결되는 비약적이고 단절적인 과정을 포함한다. 역사적 유물론은 사회적 불평등이나 억압의 근원을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 아닌 물질적 생산 구조의 결함에서 찾는다. 따라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선량한 마음을 갖는 것보다 생산 수단의 소유 구조를 바꾸는 실질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주인공을 왕이나 귀족이 아닌 땀 흘려 노동하는 대중으로 설정하며 역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뒤바꿨다. 그의 사유 경로는 관념의 구름 속에 떠다니던 역사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인 공장과 농토로 끌어내린 과정이었다.
역사적 유물론은 현대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거대 담론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비록 상층구조가 하부구조에 미치는 역영향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물질적 조건의 중요성을 일깨운 공로는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권력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이 이론은 핵심적인 틀로 사용된다. 또한 기후 위기나 기술 혁신이 사회 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예측하는 데 있어서도 유물론적 시각은 유효하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물질적 환경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 환경을 변화시키며 미래를 만들어간다. 역사적 유물론은 우리가 서 있는 발밑의 토대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헛된 이상주의에 빠지지 않게 경계한다. 역사는 물질적 결핍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인간의 끝없는 노동과 투쟁의 과정인 것이다.
현대 유물론의 한 갈래인 소거적 유물론은 신경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적 마음 개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급진적 입장을 취한다. 폴 처칠랜드와 패트리샤 처칠랜드는 우리가 흔히 쓰는 '믿음', '욕구', '고통' 같은 심리학적 용어들이 사실은 실체가 없는 가공의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를 '민간 심리학(Folk Psychology)'이라 부르며 연금술이나 천동설처럼 과학의 발전에 따라 폐기되어야 할 낡은 유산으로 본다. 인간의 정신 현상은 뇌라는 물질적 기관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신경 세포들의 신호 전달과 화학 반응의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 감정은 사실 특정 뉴런의 발화 패턴이나 호르몬의 농도 변화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 소거적 유물론의 경로는 철학적 사유를 넘어서 뇌 과학적 사실로 모든 정신적 수수께끼를 해결하려는 극단적 물리주의의 길이다. 미래에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표현 대신 특정한 신경 전달 물질의 작용을 언급하는 과학적 언어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소거적 유물론은 마음과 몸을 별개의 것으로 보거나 마음이 뇌의 부수적
현상이라고 보는 중도적 입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마음이라는 개념 자체를 '소거'하고 오직 물리적인 뇌의 작용만을 진실로 수용해야 한다는 철저한 일원론을 고수한다. 전통적 철학이 마음의 본질을 탐구할 때 소거적 유물론자들은 뇌의 지도를 그리고 신경망의 연산 방식을 연구한다. 정신적 고통은 신경계의 오작동이며 기쁨은 보상 체계의 활성화라는 식으로 모든 인간적 가치를 생물학적 사실로 환원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을 자율적인 영혼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유기체 컴퓨터로 이해하게 만든다. 인간의 의식이라는 신비는 과학의 등불 아래에서 그 실체가 낱낱이 파헤쳐져야 할 해독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공지능 연구와 신경과학의 협력을 통해 인간의 지능과 의식을 기계적으로 완벽히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대의 유물론은 이처럼 가장 세밀한 미시적 물질 세계인 뇌 신경망 속으로 침투하여 인간의 정의를 다시 쓰고 있다.
하지만 소거적 유물론은 인간의 고유한 주관적 경험과 질적 가치를 지나치게 도구화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사랑이나 희생 같은 숭고한 행위를 단순히 호르몬의 작용으로 치환할 때 인간 삶의 의미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뇌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느낌' 자체를 객관적 수치로 완벽히 포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은 정신질환의 치료나 인공지능 개발 등 실천적인 영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추상적인 담론에 머물던 유물론을 최첨단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인간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의 경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마지막 신비인 '마음'마저 물질의 영역으로 귀속시키려는 거침없는 도전이다. 소거적 유물론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자아의 실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유물론의 가장 현대적인 진화 형태를 보여준다. 결국 인간은 뇌라는 물질이 빚어낸 경이로운 현상이며 그 물질적 토대를 이해하는 것이 곧 인간 자신을 아는 길이라는 신념이다.
물질의 기본단위로 존재론을 규정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유물론의 길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에 다른 존재가 점을 찍게 되면 그 다음부터 세상을 보는 관점 즉 인식론은 완전히 다른 판도로 바뀐다. 어떻게 보면 철학은 '존재'론의 싸움이다. 존재를 무엇을 볼 것인가라는 의미에서는 이미 존재론에 인식론이 우선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 알아본 존재론의 차원에서 물질의 운동이 인간의 뇌와 사회 그리고 국가와 우주까지로 연결되는 자기동일성을 가진 프랙탈구조까지 알아보았다. 유물론의 역산느 매우 길었다. 유물론이 걸어온 길에는 과학이 항상 같이 걸어왔다는 것도 알게 된다. 과학철학의 관점에서 유물론이 해석되기도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시절에 데모크리테스의 원자론은 이미 유물론을 넘어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유물론을 알아본 것은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한국현대철학에서 신남철과 박치우의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 더 나아가 주체사상의 뿌리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이 분들의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강의도 듣기도 했지만 유물론 자체에 대한 설명은 없어서 역사를 정리해보았다. 신남철이 보여준 휴머니즘은 유물론의 존재론으로 보면 '인간의 신체'였고, 박치우에게는 위기 순간에 드러나는 '움직이는 실체'였다. 움직이는 실체들의 역사적인 경향을 종합해 내면 역사적 유물론이 되었다. 한국 현대철학의 관점에서 실학, 동학, 천도교, 홍익인간과 같은 존재들이 등장했고 이제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유물론에 대해서 박치우의 적용점을 알아보자.
https://brunch.co.kr/@minnation/4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