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민네이션
#1. 요즘들어 시간이 늦게 간다. 빨리 가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늦게 간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transformation이라는 형질변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변화가 존재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라는 존재가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시간이 느릿해지는 것 같다. 결국 새로운 방향성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겠지? 달리던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걷다가 지금은 거의 정지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일상은 더더욱 가까이에서 나에게 손짓하고,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젊은 시절, 물론 지금도 젊지만 20대 초반에 만난 어떤 박사님이 자신의 60년생을 돌아보면서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하루에 5분만 인생을 돌아봐봐! 그럼 인생이 의미있어 질꺼야"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왜 이리 그 말이 진지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어떤 정점에 이르렀다가 퇴화하는 느낌이 드는 때가 요즘의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호르몬의 공급이 점점 줄어 들고 생각은 점점 많아지고, 인식과 인상은 어느 한계를 뛰어 넘었다. "나는 왜 살지?"라는 고민으로 20대를 보냈다면 이제 40을 바라봐야할 나이에 "이제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산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불안과 우울은 조금은 사라진 듯도 하다. 그래 맞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이런 고민은 참 지혜로운 고민 같기도 하다. 아무튼 시간을 점점 느리게 간다.
#2. 철학적으로 재미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요즘은 정신분석학을 라캉에게서 배우고 정신현상학을 헤겔에서 부터 배우고 있다. 라캉은 현실에서 정신으로 들어가고, 헤겔은 정신에서 현상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만나는 부분이 없을 지도 모르는데 재미있는 것은 금요일에는 폴 리쾨르의 해석학을 통해서 이 둘을 결합하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정신에서 현상으로 현상에서 정신으로 복기하는 작업들은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 무엇인가 일어나는 현상들이 기원된 원리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비밀을 깨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금요일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강의는 심지어 철학의 고수인 할아버지 한 분과 나 밖에 수강신청을 하지 않은 탓에 교수님까지 3명에서 완전 유럽식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궁금하면 물어보고, 서로 토론하고, 30대 40대 60대가 함께하는 세대간 토론이 진행된다. 너무 잼있고 즐거운데, 교수님은 특히 모든 사항을 해석학적으로 다시 분석을 해주시니 이해도 잘된다. 원래 어떤 작가 혹은 철학자의 이론을 설명할 때는 그 철학자가 썼던 방식으로 교수법을 채택하는 것이 명품 강의가 된다. 그래서 였을까 교수님은 그림은 전혀 그리지 않고 모든 것을 글로만 쓰셔서 강의를 하신다. 그래서 강의가 끝나면 칠판에 온통 상징체계의 현현, 글자들이 랑그와 빠롤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철학의 즐거움은 이제 곧 현실을 바꿀 기세였다. 나는 조금만 더 실력을 쌓고 세상에 나갈려고 한다.
#3. 라캉의 이론들에 심취해 있는 중이다. 사실 방통대를 등록하고 교육학과 3학년으로 편입을 했는데 들어야 할 과목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 하다가 상담심리학이다. 나의 공부방법론 중에 하나는 항상 끝을 보고 시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어떤 학문이나 이론이 과연 끝단에서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어떤 영향력이 서로에게 미치는가?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공부를 하니깐 보통 100% 중에 50%는 주제를 이해하는 것과 끝을 이해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라캉도 마찬가지로 상담심리학이 시작이라면 라캉은 이러한 정신분석학의 끝판왕이라고 보면 된다.
#4. 더욱이 신기한 것은 프랑스에서 직접 전공을 하고 오신 백상현 교수님의 수업을 철학아카데미에서 4명이서 모여서 듣고 있다는 것이다. 소수 정예로 듣는 느낌이 참 좋다. '고독의 메뉴얼'을 비롯해서 수 많은 책들을 쓰셨지만 이번에 강의하는 내용은 그 동안 국내에 알려진 라캉세미나 11과 다른 스탠스의 '라캉 세미나 7'이다. 백상현 교수님의 말로는 라캉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 이유는 라캉이 글을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라캉 분석학의 가장 큰 도구는 바로 글과 말인데, 자기 스스로는 아무래도 자신의 무의식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듯도 하다. 아무튼 라캉의 세미나 7을 듣는 동안, 라캉이 추구하는 인간관의 가장 핵심을 맛보고 있다. 라캉이 생각하는 인간관은 두가지*세가지로 구성된다. 처음의 두가지는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측면이고 나중에 세가지는 무의식의 3단계를 떠올리게 한다. 의식은 도덕체계와 욕구체계로 구성되어 있고, 무의식은 상상계, 상징계, 실제계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정신은 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의 변주곡 혹은 변증법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 라캉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로 나오는 순간은 모두 언어를 통해서라고 말한다.
#5.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 떠나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지금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떠날 때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돈을 많이 모아서 무엇인가를 누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닌것 같다. 시간은 지나가고 우리가 누리는 욕구는 충족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고, 또한 욕망은 항상 바뀌니깐. 나는 도덕체계와 욕망체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 가운데 갑짜기 자유의지가 끼여 들어서 이 둘을 조정중이긴 한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계속 자유의지와 대화 중에 있다.
#6. 풀러신학교의 로버트클린턴 교수의 책들을 읽고 있다. 교회에서는 영적지도자 만들기'라는 책으로 유명한 분인데, 이분 책에서 인생의 발달 순서를 리더십의 영역으로 해석하고 있다. 인생은 정지단계-인격발달단계-사역초기단계(도약)-사역중기단계(발전)-사역전성기단계(전문성)- 이양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따라서 사역적기초, 영적기초, 전략적기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정말 잘 정리되어 있어서 여러가지로 고민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사역중기단계에서 발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제 전문성을 길러서 사역전성기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준비를 해야하는 시기이다. 그러다보니 내게 철학적 기초(영적기초)가 부족하다는 사실과 사역적기초(국제개발, 인권, 교육, 정치)가 보와되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들을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인생을 이러한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리더십 개발론을 가지고 '역량관리모델'을 만들고 '메타인지인생그래프'를 완성하는게 전략적인 목표이다. 그러다보니 멘토링메뉴얼부터 시작해서 교육학 기초를 공부하면서 정말 바쁘게 살고 있다. 재미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고, 기대되는 아침이다. 이것을 책에서는 '바운더리'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한다. 인생의 바운더리가 있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새로운 목표, 방향, 기회인데 나는 지금 그 기회를 찾았고 목표설정과 방향설정을 거의 끝낸 상황이다.
#7. 시간과 존재를 고민하던 때, 시간 위에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깨닫고 있다. 시간 개념이 바뀌면 방향이 바뀌고 인간 존재 자체가 변화된다. 예를 들어 내일 내가 죽는다'라는 것만 생각해도 오늘 이렇게 살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나는 과연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어떻게 시간개념을 잡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한다. 위르겐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미래를 바라볼 때 현재의 부활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더 자명한 것은 우리가 부활한다'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매일의 희망을 부활에서 가지고 온다는 개념이다. 부활에 대한 생각이 깊지 않은 이유는 부활을 살아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고, 살고 있으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것 같다. 고작 들어봐야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 정도였을까? 아무튼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다 해도 우리는 부활할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시간을 자유롭게 만든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이 만들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일의 희망이 없다면 오늘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갑짜기 부활한다고 생각하니깐 힘이 난다. 갑짜기 죽어도 다시 산다는 생각을 하니깐 힘이 난다. 사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부활한다'라는 것이 복음이 아니었을까? 죄에 대해서 죽음은 십자가로 상징되고, 죽음에 대해서 죄사함은 부활로 상징되기 때문에 부활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오늘을 희망적으로 살게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8. 나는 천둥벌거숭이처럼 항상 삶이 새롭다. 무엇인가 낯설다라는 표현이 더 적격인듯 하다. 무엇인가 부족한듯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은 항상 아마추어이지 않나? 숙달과 반복,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은 전문가가 되는데, 어떤 사람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사는 삶은 누군가가 살아온 삶이 아니라 매번 나의 선택에 의해서 일어나는 새로운 삶이기에 아마추어가 맞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아마추어이다. 남의 인생에 배놔라 감놔라 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인생에 누가 예견할 수 있는가? 아마추어처럼 살아야 한다. 답을 정하지 말고, 함께 알아보고 고민해보고 추구해보고, 시도해보고 실패해보고. 그래서 어떤 사상가의 말처럼 '더 나은 실패'를 하는 하루가 되면 되지 않을까? 아마추어의 인생,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고 살아가고 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아무것도 모르지만 꾸준히 도전하는 인간말이다.